제4대 나카지마 노리오 사장 단독 인터뷰…전고체 배터리 시장 진출로 성장 동력 마련

[글로벌 현장]
지난 10월 7일 나카지마 무라타제작소 사장이 교토의 무라타제작소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지난 10월 7일 나카지마 무라타제작소 사장이 교토의 무라타제작소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전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세계 1위 무라타제작소는 작년 3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나카지마 노리오 전무를 제4대 사장에 임명한 것이다.

1950년 창업한 무라타는 창업자인 무라타 아키라와 장남 무라타 야스타카, 3남 무라타 쓰네오 등 부자가 초대부터 3대째 사장을 이어 받았다. 창업 70년 만에 처음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가족 경영 접고 엔지니어 사장 선임

무라타가 왜 경영 체제를 전면 개편했는지, 무라타 집안은 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세계 최강 부품 기업의 경영권을 맡긴 것인지는 나카지마 사장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나카지마 사장은 오사카 출신으로 교토의 사립대학인 도시샤대 공대를 졸업했다. 전임 회장인 무라타 쓰네오의 도시샤대 후배다.

1985년 무라타에 입사한 이후 줄곧 기술직에서 한 우물만 팠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업무는 무라타의 주력 상품인 MLCC의 원료를 개량하는 일이었다. MLCC의 재료로 값이 싼 니켈을 써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나카지마 사장은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 개발에 몰두한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본사 도서관의 전문서는 전부 읽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공부한 시기”라고 밝힐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이거다’ 하는 성과가 거의 없었다”는 게 나카지마 사장의 회고다.

나카지마 사장은 1991년 프랑스 전자 부품 회사에 파견을 갔다. 여기에서 무라타의 주특기인 MLCC 기술을 고주파 통신 부품에 적용할 수 있는지 2년에 걸쳐 연구한다. 이번에도 생각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유럽 법인 사장이었던 무라타 쓰네오 회장이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건가’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지마 사장의 잠재력을 알아본 무라타는 계속해 중책을 맡긴다.

1990년대 후반 마침내 나카지마 사장의 잠재력이 꽃을 피운다. 휴대전화의 송수신 전파를 바꾸는 데 ‘스위치 플렉서’라는 부품이 사용된다. 스위치 플렉서의 개발 덕분에 ‘벽돌 폰’으로 불리던 휴대전화의 사이즈가 손바닥 안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될 수 있었다. 스위치 플렉서를 개발한 인물이 나카지마 사장이다.

1996년 당시 세계 최강의 휴대전화 메이커인 스웨덴 에릭손의 기술 책임자가 무라타를 방문한다. 야키도리집 회식에서 에릭손 책임자는 신기술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통신 부품을 훨씬 작게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이를 뜯어보던 나카지마 사장은 그 자리에서 리포트 용지에 새 회로도를 그리며 “이렇게 바꾸면 더 작게 만들 수 있다”고 응수한다. 벽돌 폰이 손안의 작은 세상이 된 순간이다. 현재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스위치 플렉서는 훨씬 진화했지만 여전히 나카지마 사장이 야키도리집에서 그린 회로도의 기본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지난해 1조6302억 엔에 달했던 무라타의 매출 가운데 49.5%인 8049억 엔이 통신에서 나왔다. 사내에서 나카지마 사장을 “무라타를 스마트폰 부품 메이커의 대표 격으로 키운 인물”로 평가하는 이유다.

나카지마 사장을 또 한 번 유명하게 한 에피소드가 있다. 2000년대 한 고객 회사가 휴대용 MP3 플레이어에 들어갈 만큼 작은 통신 기기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MP3 플레이어에 통신 기기를 달아서 뭘 해”라고 의아해하면서도 고객의 요청에 응했다. 애플이 무라타의 고객이 된 계기다. 이런 에피소드들 덕분에 작년 3월 무라타가 전문 경영인 체제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사내외에서는 누구나 나카지마 사장을 예상했다고 한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결정”
지난해 미국의 수출 규제로 휴대전화 세계 1~2위를 다투던 화웨이의 시장점유율이 5위권 밖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몰락을 무라타의 위기로 진단했다. 통신 부품이 무라타 전체 매출의 49.5%를 차지하는 한편 매출의 58.4%가 중국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통신 업체인 화웨이가 떨어져 나갔으니 무라타의 매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나카지마 사장은 올해 초 기자 회견에서 “스마트폰 메이커의 점유율이 바뀌어도 부품 업체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과 삼성전자 등 기존 고객에 화웨이의 점유율을 빼앗으며 새롭게 떠오르는 업체에 납품하면 무라타의 매출에는 타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라타가 5세대 이동통신(5G) 등 고급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초소형·고용량 제품을 사실상 독점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업 한 곳 한 곳과 거래하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 시장 전체와 거래하는 회사가 되다 보니 화웨이 같은 개별 기업의 몰락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사장의 장담대로 무라타의 통신부문 매출은 2분기에 소폭 줄었다가 3분기에는 5% 증가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10월 7일 교토의 무라타제작소 본사에서 열린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전자 산업에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변화가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속도와 투명성을 중시하려는 결정으로 이해한다.”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장점은 “내년이나 3년 후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만 10~20년 뒤의 기술 혁신 조류는 예상할 수 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은 ‘A 기술은 개발에만 10년이 걸리니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식으로 기술 이해도 부분에서 좀 더 능숙하다”고 말했다.

‘니지미다시(스며듦이라는 뜻)’로 불리는 무라타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무라타가 매년 안정적으로 실적을 늘려 가는 비결 가운데 하나로 독특한 M&A 전략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니지미다시 전략은 매년 이익을 내면서 쌓은 풍부한 사내 유보금을 바탕으로 무라타가 벌이는 사업과 관련이 있는 영역에서 조금씩 사세를 확대하는 전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M&A를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해 전세를 단숨에 뒤집거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데 활용한다.

반면 무라타의 M&A는 큰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깜짝 딜 대신 조그마한 회사에 조금씩 지분 투자하는 방식의 M&A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해당 분야의 점유율이 높거나 기술력이 있는 기업과 먼저 제휴하고 무라타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확인한 후 경영권을 인수한다.

무라타는 최근 이어폰 등 웨어러블 단말기용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내년 3월부터 월 10만 개씩 양산할 계획이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이 없던 무라타가 웨어러블 단말기용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 니지미다시 전략이 잘 나타난다.

무라타는 2017년 소니의 배터리사업부를 인수했다. 소니의 배터리사업부는 1991년 세계 최초로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한 전통의 강자다. 주도권을 한국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중국의 CATL 등에 빼앗겼지만 무라타에 인수된 이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무라타가 배터리 사업에 진출한 것은 주력 사업인 MLCC를 통해 쌓은 적층 기술을 배터리에 접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특기인 소형화와 대용량화를 살려 소형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덕분에 웨어러블 단말기에 납품할 수 있게 됐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