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 달라도 캐릭터 특징이나 속성 동일하면 저작권으로 인정

[지식재산권 산책]
‘배트맨’의 ‘배트모빌’을 지킨 저작권 이야기[문진구의 지식재산권 산책]
최근에는 다소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까지 현실 세계에서의 ‘부캐’가 열풍이었다. 부캐는 ‘부캐릭터’의 준말이다. 평소의 자기 모습이나 성격과 다른 새로운 모습이나 성격의 캐릭터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부캐는 자신이 직접 모습이나 성격을 바꿔야 하는 것이지만 ‘메타버스’ 안에서는 실재(實在)하는 자신과 구분되는 ‘가상의 나’가 만들어진다. 메타버스가 일반화될수록 그 가상의 자신은 현실 세계의 자기만큼이나 중요해질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가상의 자신은 메타버스 안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여러 변화를 꾀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유한 이야기와 특징들을 축적해 가게 될 것이다. 현실 세계의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가상의 자신은 저작권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허락 없이 이런 캐릭터를 사용해 상품을 만든다거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저작권 침해일까.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살펴본다.DC코믹스 승리로 돌아간 소송전DC코믹스(DC Comic’s)는 1939년 ‘배트맨’ 코믹북(comic book)을 첫 출간했다. 이 코믹북 시리즈에는 1941년부터 ‘배트모빌(Batmobile)’이 등장한다. 배트모빌은 이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관이 계속 변화했지만 ‘배트모빌’이라는 명칭과 배트맨의 개인용 이동수단으로서 갖는 주요 특징들은 변하지 않았다.

배트모빌은 박쥐를 닮은 형상을 하고 있고 배트맨이 고담시의 악당과 싸울 때 언제든 등장해 그를 도울 채비를 하고 있으며 보통의 차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첨단 무기와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

그런데 마크 톨(Mark Towle)이 DC코믹스의 허락없이 배트모빌의 외관을 복제한 차량(replica)을 제작해 판매한 사례가 있다.

톨이 복제한 배트모빌은 1966년 방영된 ‘배트맨’ 텔레비전 시리즈(아담 웨스트 주연)와 1989년 개봉된 ‘배트맨’ 영화(마이클 키튼 주연)에 등장하는 배트모빌이었다. DC코믹스는 저작권 침해, 상표권 침해, 부정 경쟁 행위를 이유로 톨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외관이 변화하는 배트모빌이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캐릭터에 해당할까. 미국 법원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

첫째, 캐릭터가 개념적 특성들(conceptual qualities)뿐만 아니라 물리적 형상(physical)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언제 등장하더라도 그 캐릭터임을 알 수 있도록 충분히 묘사돼야(sufficiently delineated) 한다.

셋째, 특이성과 독특한 표현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법원은 배트모빌이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설령 외관에 변화가 있더라도 동일한 캐릭터로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봤다.

톨은 1966년 텔레비전 시리즈와 1989년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모빌에 대해서는 DC코믹스에 저작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DC코믹스가 텔레비전 시리즈 제작사와 영화 제작사에 배트모빌 캐릭터를 이용해 2차적 저작물인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허락했을 뿐 그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톨은 1966년 텔레비전 시리즈와 1989년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모빌과 원래 코믹북에 등장하는 배트모빌은 외관이 다르다는 점도 피력했다. 하지만 법원은 외관이 다르더라도 캐릭터의 독특한 특징과 속성은 동일하므로 톨이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의 배트모빌을 이용한다면 필연적으로 코믹북의 배트모빌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에서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됐다.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모빌을 저작권이 지킨 셈이다.

문진구 법무법인(유) 세종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