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대 보증 기관, 지난해 보증 규모 18.5조 증가
‘상환 청구권 없는 매출채권 팩토링’ 사업 뛰어들어
기보 ‘탄소 가치 평가’ 신보 ‘매출채권 보험 확대’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중소기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경기가 침체되면서 중소기업계의 돈줄이 꽉 막혔다. 정부는 위기가 전 시장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둘러 돈을 풀었다. 중소기업 지원의 중책을 맡은 곳은 기술보증기금(기보)과 신용보증기금(신보) 등 정책 금융 회사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돈맥경화’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들에 자금을 융통하는 ‘금융 지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공공 기관 경영 정보 공시 시스템인 알리오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보와 신보가 제공한 보증 규모는 총 92조8575억원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18조5292억원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대 중소기업의 ‘인공 호흡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기보와 신보는 어떤 곳일까.
기보, ‘기술금융의 종가’로 우뚝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 수는 663만9000개(2018년 기준)로 전체 기업 중 99.9%를 차지한다. 전체 종사자는 1710만4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3.1%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와 부가 가치를 창출하면서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이따금씩 자금줄이 막힐 때가 있다. 한국의 양대 보증 기관인 기보와 신보는 담보 능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의 채무를 보증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기보와 신보의 보증을 받으면 더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이들은 정부 출연금과 각 시중 은행에서 공급받은 법정 의무 출연금을 재원으로 활용한다. 다만 기보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평가해 보증하고 신보는 기업의 매출과 신용 담보 보증에 주력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최근 기보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의 불씨를 잡기 위해 앞장서는 한편 특허청과 손잡고 직접 대출을 시작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탄소 가치 평가 등 기술평가를 도입하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기보는 2019년 8월 특허청과 함께 한국 최초로 ‘지식재산공제’ 제도를 도입하며 직접 대출에 나섰다. 공제 가입 기업은 매달 납부하는 부금을 기반으로 ‘지식재산비용대출’ 또는 ‘경영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다.

특허 공제는 일종의 보험 제도다. 중소기업이 해외 특허 출원이나 국내외 특허 관련 소송·분쟁 등에 휘말릴 경우에 대비해 관련 비용을 지원한다. 가입자는 공제 계약이 해지되면 납부금을 일시 지급 받는다. 기보는 국내외 시장에서 특허 분쟁 등으로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한국 중소기업에 대해 금융 안전장치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특허 공제에 가입한 기업은 3개월 만에 1000곳이 넘었고 2020년 말 5206곳, 2021년 상반기 7315곳으로 집계됐다.

기보는 ESG 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의 기술 평가 시스템 외에 2017년 기후 기술 평가 모형과 올해 상반기 탄소 가치 평가 모형을 별도로 개발, 친환경 중소기업에 대한 자체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탄소 가치 평가 모형은 기업이 기후 환경 기술과 프로젝트의 사업화를 통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화폐 단위로 평가하는 방식이고 기후 기술 평가 모형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한 제반 기술과 매출 성장, 고용 창출, 부실화 위험 등 미래 경제적 가치를 기술 사업 평가 등급으로 평가한다.

또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업화하는 중소기업과 신재생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보증료를 낮추고 보증 비율을 확대하는 등 우대 혜택을 제공하며 ESG 경영을 유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와 함께 내재화 작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예컨대 모든 업무용 차량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실 그간 기보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본사 건물 확보는 수난사 그 자체였다. 1989년 설립 당시 정부의 창립 추진이 다급했고 부산엔 마땅한 건물이 부족해 본사 건물을 구할 수 없었다. 창립식을 며칠 앞두고 가까스로 얻은 사무실을 청소하고 단장하기 위해 직원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했다. 이후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에 본사 건물 부지를 계약했지만 폐유 소송, 유동성 위기 등으로 둥지를 틀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2005년엔 벤처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무리하게 확대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보증이 막대한 부실로 돌아와 퇴출 위기를 겪기도 했고 2008년엔 중복보증‧출혈경쟁 심화 등 문제로 신보와 합병이 논의돼 기보 자체가 공중 분해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2011년 4월 뼈아픈 구조 조정과 체질 개선으로 위기를 극복한 기보는 문현금융단지 내 본점 입점에 성공, 뿌리를 내린 지 올해로 10년째다.

여기에 2016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기금의 명칭이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지금의 ‘기술보증기금’으로 바뀌었다. ‘기술보증기금’을 기관 명칭으로 사용한 지 10년 만에 법률적으로 ‘신용’ 이란 두 글자를 떼어내는 데 성공해 ‘기술금융의 종가’라는 기보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게 됐다. 기보는 신보의 기술 보증 업무를 떼어내 새로 만든 조직이다. 이 때문에 과거엔 신보의 자회사라는 오해부터 어차피 비슷한 보증 업무를 하니 다시 합치자는 논의가 심심치 않게 나왔던 것이다.

현재 기보와 신보는 주무 기관이 다르다. 기보는 종래 금융위원회(금융위) 산하 기관이었지만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로 승격되면서 2017년 주무 기관이 바뀌었다.
신보, 中企 지킴이 앞장
신보는 한국 최초의 신용 보증 기관이다. 대구 동구에 본사가 있고 주무 기관은 금융위다. 중소기업은 금융 조달 면에서 높은 거래 비용과 정보 부족에 따른 정보의 비대칭성, 취약한 신용력, 담보 위주의 금융 관행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소기업 금융 문제를 시장 원리에 맡기기보다 정책적으로 중소기업 금융의 제약 요인을 보완해 줄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신용보증제도가 정책 수단으로 도입됐고 1974년 신용보증기금법이 제정된 데 이어 1976년 전담 기관인 신보가 설립됐다. 특히 대한금융단·신용조사소·한국감정원 등이 전담했던 신용 조사 업무를 신보가 이어 받으면서 전문적인 조사 요원에 의한 객관적인 신용 조사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보는 코로나19발 경기 위축으로 중소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중소기업 상거래 안전망인 ‘매출채권보험’ 사업에 가속 폐달을 밟고 있다. 매출채권보험 모집 채널을 확대해 시중 은행에서도 보험 상담이 가능하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지역 내 중소기업의 매출채권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보험 가입 독려에도 나섰다.

매출채권보험은 판매 기업(보험 계약자)이 거래처에 물품이나 용역 판매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때 떠안는 손실금의 최대 80%를 보전하는 제도다. 신보가 중기부의 위탁을 받아 1997년부터 중소기업에 지원하고 있는 공적 보험 제도다. 받을 어음만 보장해 주는 어음보험과 달리, 외상 매출금도 떼이면 보상해 줘 보장 범위가 더 넓다. 이 제도로 중소기업은 영세 기업과 거래 시에도 매출 채권을 떼일 염려를 덜고 기업 신용도 상승으로 대출 금리 우대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경영 활동 도우미 역할은 물론 중소기업을 연쇄 도산 위기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신보가 하고 있는 셈이다.

매출채권보험은 중소기업·중견기업·협동조합이 대상이고 중견기업은 평균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이어야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보험료율은 신청 기업(보험 계약자)의 매출 채권 관리 능력, 보험 가입 대상, 구매 기업의 신용도, 거래 비율, 결제 기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또 신보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대면 수요 증가로 온라인 매출채권보험을 강화하면서 디지털 업무 혁신에도 힘주고 있다. 온라인 매출채권보험의 보험료율은 기존 오프라인 매출채권보험보다 낮은 1.0~1.7% 수준이다. 올해 1~8월 중소기업의 온라인 매출채권보험 가입금액은 1911억원, 가입 건수는 1438건으로 1년 전보다 32% 증가했다.

올 초엔 공공 기관 최초로 상환 청구권 없는 팩토링(factoring) 시범 사업을 개시했다. 신보는 지난해 4월 금융 규제 샌드박스 대상 혁신 금융 사업자에 선정됐고 올해 상반기 시장 수요 반영과 제도 개선 작업을 거쳐 하반기 본격 영업에 돌입했다. 연내 400억원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신보 업무에 팩토링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신용보증기금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팩토링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 중 하나다. 납품 등의 대가로 받은 외상 매출 채권을 금융회사(팩터) 등이 할인해 사들인 후 기업에 현금을 빠르게 지급하는 관계 금융이다. 해외와 달리 한국의 팩터들은 상환 청구권을 넣는 조건으로만 채권을 매입하고 있어 중소기업을 연쇄 부도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기보도 올해 7월 금융위로부터 ‘상환 청구권 없는 매출채권 팩토링’을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았다. 현재 매출채권 팩토링 추진단을 구성하고 세부 운영 방안을 마련 중이다. 내년 상반기 비대면·디지털 기반 팩토링 플랫폼 구축을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시범 사업을 실시해 이를 토대로 사업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기보는 신용도가 낮지만 기술·사업성이 우수한 신기술사업자를 지원하며 신보는 중견기업과 일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