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다크호스로 떠오른 루시드·리비안…세계 각국 규제로 전기차 대중화 속도 낼 듯

[글로벌 현장]
11월 1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1200달러를 돌파했다.(사진=연합뉴스)
11월 1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1200달러를 돌파했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일단 증시 얘기다. 전기차란 이름으로 상장된 기업의 주가는 거의 예외없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기차 주가에 강력한 뒷바람을 일으킨 것은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다. 테슬라가 10월 말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뒤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대접이 확 달라졌다. 작년 말부터 예약만 받아 왔던 고급형 전기차 생산 업체 루시드모터스는 본격적으로 차량 인도를 시작했다.

시장에선 전체 시장에서 2.6%에 불과한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이 10년 내 10배 넘게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가 주류로 바뀌는 전기차 시장의 원년이란 평가도 나온다.
주류로 바뀌는 전기차 시장…테슬라 독주 끝나고 다자 경쟁 체제로 [글로벌 현장]
주류로 바뀌는 전기차 시장…테슬라 독주 끝나고 다자 경쟁 체제로 [글로벌 현장]
◆생산 혁신 성공한 테슬라, 가격 주도권까지

테슬라가 지난 3분기에 고객에게 인도한 차량은 총 24만1300대다. 테슬라는 작년 한 해 동안 50만 대를 인도했는데 불과 3개월 동안 작년 판매량의 절반을 출고한 것이다. 올해 90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반도체 부족 사태로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완성차 업체들이 고전했지만 전통 차량보다 반도체를 훨씬 많이 사용하는 테슬라가 오히려 역대 최대 생산·인도량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반도체 부품 수급망을 수직적으로 잘 통합한 게 커다란 도움을 줬다는 설명이다. 테슬라는 올해 초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질 조짐을 보이자 기존 칩 대신 대체품을 대량 납품 받았고 소프트웨어를 수정했다. 내연기관 기반의 완성차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유연성이다.

재무 실적도 역대급이었다. 테슬라의 3분기 순이익은 16억2000만 달러(약 1조9142억원)로, 작년 동기(3억3100만 달러) 대비 약 5배 급증했다. 분기 순이익이 2분기에 이어 둘째로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긴 것 역시 괄목할 만하다. 3분기 매출은 137억6000만 달러(약 16조2550억원)로, 1년 전(87억7000만 달러)보다 57% 늘었다.

테슬라는 가격 인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모델S 모델X 등의 가격을 2000~5000달러씩 일괄 인상했다. 가격을 높여도 수요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렌터카 업체인 허츠가 모델3 차량 10만 대를 일괄 주문했지만 가격을 할인해 주지 않아 잡음이 발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트위터에 “허츠는 일반 소비자와 똑같은 가격에 차량을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테슬라는 차량 생산 기지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 프리몬트와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 중인데, 조만간 텍사스 오스틴과 독일 베를린 공장도 가동할 계획이다. 연내 총 4개의 글로벌 공장에서 신차를 만드는 게 목표다.

테슬라 주가는 작년 3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10배 넘게 뛰었다. 대주주인 머스크 CEO의 개인 자산이 세계 최대 석유 업체로 꼽히는 엑슨모빌의 시가 총액을 제쳤을 정도다.
미국에서 전기차 대량 생산에 성공한 기업은 사실상 테슬라가 유일하다. 전기차 시장의 약 80%를 테슬라가 독차지하고 있는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는 처음부터 고급화로 방향을 잡았다.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지난 10월 30일엔 자사의 최초 모델 ‘에어 드림’을 고객에 인도하기 시작했다. 옵션이 포함되지 않은 시작 가격은 16만9000달러(약 2억원)다. 테슬라가 아니라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인 타이칸과 경쟁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루시드모터스의 최대 강점은 주행 거리다. 한 번 충전으로 520마일(837km)을 달릴 수 있다. 테슬라의 최장 주행 거리보다 28.4% 더 갈 수 있다. 이 회사는 에어 퓨어, 에어 투어링, 에어 그랜드 투어링 등 신모델을 잇따라 출시할 계획이다.

루시드모터스 측은 “미국에서 공식 주행 거리 인증을 받은 전기차 중 최상위 6개 모델이 모두 우리 차량”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설립된 루시드모터스는 지난 7월 기업 인수 목적 회사(SPAC)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원래 이름은 아티에바였는데, 2016년 사명을 바꿨다. 피터 롤린슨 루시드모터스 CEO는 테슬라의 수석엔지니어 출신으로 모델S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다. 루시드모터스의 임원 중 절반 이상이 테슬라 출신이다.

주요 주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꼽힌다. 2018년 10억 달러 이상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시드모터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전기차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또 다른 전기차 업체인 리비안도 전기차 시장의 다크호스다. 무엇보다 아마존이 최대 주주여서다. 아마존은 전기 배송 트럭을 생산하는 리비안 지분 20%를 확보하고 있다.

아마존이 리비안에 최초 투자한 것은 2019년으로, 초기 투자액은 7억 달러(약 8269억원)였다. 지금까지 총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입했다. 아마존은 리비안에 물품 배송용 전기차 10만 대를 사전 주문해 놓은 상태다. 내년까지 1만 대를 인도 받을 계획이다. 별도로 포드자동차가 리비안 지분 12%를 갖고 있다.

리비안 창업자는 RJ 스카린지 CEO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으로 2009년 설립해 올해 9월 전기 픽업트럭 ‘ R1T’를 선보였다. 테슬라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사이버트럭’보다 출시 시점이 앞서게 됐다. 사이버트럭은 일러야 내년 하반기에나 고객 인도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주류로 바뀌는 전기차 시장…테슬라 독주 끝나고 다자 경쟁 체제로 [글로벌 현장]
완성차 업체들도 “100% 전기차 회사로 변신”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업체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기차 시장이 갑자기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GM·폭스바겐·볼보 등은 이미 100% 전기차가 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GM은 2025년까지 최소 30종의 전기차를 출시해 테슬라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폭스바겐은 2030년 순수 전기차의 판매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GM은 이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 최대 4만 개의 충전소를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시 외곽에 집중 설치하기로 했다. 자사뿐만 아니라 타사 모델도 이용할 수 있다. GM은 2025년까지 전기차 및 관련 인프라에 총 35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는 구상이다.

볼보의 기세도 무섭다. 지난 10월 유럽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마치고 스웨덴 주식 시장에 입성한 볼보는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자사 전기차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OS)를 구동하는 게 특징이다.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 업체 노스볼트와 협력해 현행 제품보다 50% 이상 밀도가 높은 배터리 셀을 장착하기로 했다.

볼보 자회사인 폴스타에도 관심이 쏠린다. 2015년 볼보에 인수된 폴스타는 당초 역점을 뒀던 튜닝 사업에서 벗어나 전기차 개발·양산에 올인하고 있다.

도요타는 내년 중반부터 첫 양산형 전기차인 ‘bZ4X’ 시리즈를 세계 각지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외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력을 재충전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중국에선 기존 강자인 비야디(BYD) 외에 니오와 샤오펑 등이 선두권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각국 규제는 전기차의 글로벌 대중화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 프리미엄급 완성차 시장으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완전히 금지하기로 했다.

시장 조사 기관인 LMC 오토모티브는 2030년 미 전기차 시장 비율이 전체의 34.2%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IHS마킷은 같은 시기 전기차 비율이 40%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신차 10대 중 4대 정도가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현재 20여 종에 불과한 전기차 모델은 4년 후 수백 종이 될 것이란 게 이들 기관의 예상이다. 전기차가 머지않아 확실한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란 얘기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