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과금 체계, 게임 장르, IP 등 '확장' 실패…기존 게임들 ‘자기 잠식’ 효과
[화제의 리포트]이번 호 화제의 리포트는 홍성우 씨지에스 씨아이엠비증권 한국지사 애널리스트가 펴낸 ‘엔씨소프트 : 항구에 머무르는 배’를 선정했다. ‘항구에 머무르는 배’는 모험을 찾아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배가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항구에만 머무르고 있을 때 이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홍 애널리스트는 “엔씨소프트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때임에도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전한 길을 추구하고 있다”며 “혁신의 부족은 결국 심각한 자기 잠식을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리니지M과 리니지2M 같은 기존 게임들 또한 하루 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하락하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게임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페이투윈(pay to win)’ 과금 모델을 기반으로 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에 대한 유저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비대면 언택트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게임 산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3N’이라고 일컬어지는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 게임 대장주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 게임업계의 맏형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엔씨소프트는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주가 급락 이후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 대장주로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온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8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엔씨소프트의 신작 게임인 블레이드앤소울2(이하 블소2)의 출시를 앞두고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8월 26일 출시된 블소2는 유저들의 외면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고 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엔씨소프트의 주가 또한 ‘반 토막’이 났다. 지난 2월 8일 장중 104만8000원으로 최고가를 경신했던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이후 80만원대에서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블소2 출시 이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며 9월에는 5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11월 4일 신작 게임 ‘리니지W’의 글로벌 출시 이후 혹평이 쏟아지며 그 날 하루동안에만 9% 이상 주가가 급락해 50만원대까지 내려갔다. 이후 조금씩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지만 여전히 60만원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홍 애널리스트는 지난 8월 이전부터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을 예견하며 업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는 특히 보고서를 통해 꾸준히 엔씨소프트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리니지W 출시 기대감에 단기적 주가 반등, “차익 실현 기회”
홍 애널리스트는 지난 8월 보고서를 통해 블소2 출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블소2의 출시 첫날 매출액은 10억원 정도로, 시장 추정치인 3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리니지W 출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판단이다. 리니지W 모멘텀을 ‘비중 축소’에 적극 활용하라는 권고다. 홍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신작 출시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주가가 반등할 수 있지만 엔씨소프트 비중 축소에 대한 의견은 여전하다”며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단기적인 주가 반등 시기가 ‘차익 실현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의 신작 게임들은 비즈니스 모델과 플랫폼, 게임의 장르 그리고 지식재산권(IP) 등 모든 측면에서 ‘확장’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엔씨소프트의 신작 게임들은 모두 MMORPG 장르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MMORPG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다. 하지만 한 장르에만 국한된 게임은 엔씨소프트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플랫폼 또한 마찬가지다. 엔씨소프트는 2017년 리니지 PC에서 리니지M을 출시하며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확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리니지W는 리니지M과 마찬가지인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흥행 참패로 인해 블소2의 IP는 오히려 축소 구간에 접어들었다. 이는 리니지 IP에 대한 의존도 상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약 엔씨소프트가 수익 증대를 위해 과도한 페이투윈 과금 체계를 지속한다면 이는 블레이드앤소울의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 유저들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페이투윈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혜택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혹은 그런 행위를 유도하는 게임 구조를 뜻한다. 쉽게 말해 ‘돈을 써야만 게임을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일컫는 말로,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형 게임’의 수익 모델로 굳건히 자리 잡아 왔다. 특히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은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페이투윈 방식을 적용하며 단숨에 ‘매출 1조원’ 클럽에 올랐다. 한국 게임업계에 페이투윈 시스템이 굳게 자리 잡게 된 데는 엔씨소프트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
문제는 이로 인한 게임 유저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일종의 랜덤박스로, 확률에 따라 게임 유저들이 지불한 금액보다 가치가 더 높거나 낮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다. 유저들은 일종의 ‘투자’를 통해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게임사는 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과도한 ‘현질(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것)’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인해 게임 유저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실제 블소2의 흥행 참패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를 반영해 엔씨소프트는 향후 출시되는 게임들의 경우 페이투윈 과금 체계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홍 애널리스트는 “리니지M의 성공에는 충성도 높은 게임 유저들의 게임 내 소비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리니지W는 페이투윈 시스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는 수익 모델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페이투윈 방식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의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는 볼 수 있겠지만 기존과 같은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혁신의 부재는 심각한 자기 잠식을 초래할 것
홍 애널리스트는 무엇보다 “혁신이 부재한 상태에서 출시된 신작 게임들은 기존 게임에 대한 자기 잠식 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과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 리니지M 출시 이후 리니지PC 매출액은 60% 정도 감소했다. ‘플랫폼의 확장’이 이뤄졌음에도 상당한 자기 잠식이 일어난 것을 감안할 때 리니지W의 출시는 리니지M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홍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리니지W의 출시로 인해 리니지M의 매출이 73%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미 기존 작들의 매출 하락세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하루 평균 매출액 20억원에 다다르던 리니지M은 현재 하루 평균 매출액 14억원을 유지하고 있다. 리니지2M은 기존 15억원에서 현재 하루 평균 매출액 7억원대로 감소했고 블소2는 출시 초반 8억원에서 현재 5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시장에서 게임을 출시해 ‘글로벌 마켓’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엔씨소프트 기존 게임 작들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홍 애널리스트는 “MMORPG 장르의 경쟁이 심화되는 만큼 향후 게임 유저들을 붙잡기 위한 마케팅비와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어 비용 구조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즈니스 모델, 게임 장르, 플랫폼, IP 중 어느 하나라도 기존과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엔씨소프트는 경쟁이 치열한 게임 시장에서 경쟁 업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리=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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