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석 야놀자 CIO “지속 가능 여행 스타트업 발굴해 투자할 것”
[인터뷰]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하늘길과 바닷길을 끊어 놓았다. 여행업계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흑자를 낸 기업이 있다. 모텔 예약 서비스로 시작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넘어 데카콘 기업(기업 가치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우뚝 선 ‘야놀자’다.야놀자는 자사 애플리케이션(앱)에 교통‧맛집‧레저 등 여행 서비스를 추가해 ‘슈퍼 앱’으로 변신을 꾀하며 여행 시장의 왕좌를 거머쥐고 있다. 자회사 야놀자 클라우드는 호텔 자산 관리 시스템(PMS)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공략 중이다.
올해 들어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으로부터 2조원의 투자를 받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여행 티켓 예약 강자인 인터파크까지 품에 안으며 외연을 확장했다.
이제 야놀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관광 벤처기업의 생태계를 키우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기업공개와(IPO) 글로벌 본격 진출을 준비 중인 야놀자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여행업계도 탄소 중립이 불가피하다. 비행기를 타고 호텔 체크인을 하고 관광지를 방문하는 등 모든 여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탄소가 배출된다. 여행의 모든 과정을 디지털로 연결하고 흩어진 데이터들을 모아 인공지능(AI)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해 불필요한 이동과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야놀자가 데이터‧AI‧친환경 등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다.”
두 빅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최찬석 야놀자 투자책임자(CIO)를 서울 삼성동 야놀자 본사에서 11월 9일 만났다.
지속 가능 관광, 디지털 전환이 필수
-여행과 ESG는 무슨 관계가 있나.
“여행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낭비를 하러 간다는 생각이 강하다. 실제 미국 국제환경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여행업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8~12%를 배출하고 있다. 야놀자는 여행업계에서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디지털 전환’을 꼽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예로 든다면.
“호텔 체크인을 할 때 여권과 신용카드를 복사하고 플라스틱으로 된 도어키를 받고 다양한 안내문을 종이로 받는다. 종이 생산과 플라스틱 이용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를 스마트폰과 블록체인 기반의 신원 인증 등 디지털 전환으로 해결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가 감소한다.
또 대부분의 호텔 침구류나 카펫은 사용률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교체되고 있다. 그런데 유저 빅데이터와 호텔 내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빅데이터가 있다면 이와 연계해 호텔에서 배출하는 소비재를 줄일 수 있다. 야놀자 클라우드는 IT 기술을 기반으로 이를 구현하고자 한다.”
-데이터는 왜 중요한가.
“항공-호텔-관광지 등 여행 순서에 따라 생각해 보자. 여행업과 이산화탄소 배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항공과 이동이다. 특히 항공은 탄소 배출량이 엄청나게 크다. 항공 대신 육상 경로 등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탄소를 절감할 수 있다. 이 같은 경로 추천엔 ‘데이터’가 필요하다.
또 비행기를 타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담요·음료·헤드폰·칫솔 등 물품을 받는다. 이들을 개별 서비스로 구분한 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탄소가 획기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고도화엔 ‘사용자 데이터’가 필요하다.
호텔의 경우 객실에 진열돼 있는 생활 편의 용품들을 펑펑 쓰고 집에 가져와 버리기도 한다. 조식 뷔페에선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남긴다. 그런데 개인별로 생활 용품이나 식음료(F&B)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낭비 없는 착한 행동들’에 대해 인센티브를 준다면 탄소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역시 데이터가 핵심이다.
여행지 선택 시에도 각 지역별 ‘데이터’가 공유되면 유명하지만 과도하게 훼손되는 곳보다 비슷한 여행지나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 발전이 필요한 곳을 중심으로 추천하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는 엄청난 관광객이 몰리면서 아름다운 해변이 쓰레기장으로 변했던 보라카이(필리핀 휴양지)와 같은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호텔 PMS, 로봇·IoT 등 스타트업 눈독
-야놀자는 ESG 경영을 위해 뭘 하고 있나.
“머지않아 여행·호스피탤러티(T&H) 산업도 탄소 중립을 요구 받을 가능성이 높다.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야놀자는 장·단기로 나눠 관광 벤처 생태계 투자를 계획 중이다. 우선 관광 부문 투자에 특화돼 있는 SJ파트너스와 함께 65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다. 유한투자책임자(LP)로 참여해 130억원을 투자한다. ESG 중에서 E(환경)와 S(소셜)의 목적을 가지고 펀드를 결성했다. E는 탄소 배출량이 과도한 여행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에 투자하겠다는 의미이고 S는 여행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자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최근 별도로 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330억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관광·여행 산업의 ESG에 특화된 기업형 벤처 캐피털(CVC) 펀드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글로벌 관점에서 운영되는 ESG 펀드들은 대부분 상장사 대상의 펀드들이다. ESG와 여행업의 변화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밴처캐피털(VC)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질 것으로 본다.”
-국내외 투자 타깃은 어느 곳인가.
“우선 아날로그 운영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호텔과 여행업계의 디지털화와 연결을 주도하는 기업들이다. 특히 호텔의 전사적자원관리(ERP)인 PMS가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라고 판단한다. 현재 야놀자는 동남아 호텔 PMS 사업자에 대한 투자 및 인수를 검토 중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반의 클라우드 솔루션 수용도가 동남아 같은 이머징 마켓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대형 체인 호텔을 중심으로 온프레미스(자체 시스템)가 이미 잘 구축돼 있어 시장을 공략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대신 미국과 유럽은 다른 분야의 기업들을 살펴보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연결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
한국에선 키오스크로 고객과의 접점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자와 로봇·IoT 등을 활용해 호텔 운영 자동화를 추진 중인 회사, 글로벌 PMS 및 온라인 채널(CM) 사업자들을 고려하고 있다."
-또 다른 투자 관심 기업은 있나.
“제로 웨이스트(폐기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일컫는 말) 호텔을 주도하는 기업들이다. 예를 들어 미국 W호텔 창립자인 배리 스턴릭트가 전개 중인 친환경 고급 호텔 체인인 원호텔이 있다. 이들은 건설 시 재생 자재를 사용하고 친환경 디자인을 추구하며 모든 체인에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밖에 호텔 음식료 쓰레기를 재활용해 호텔 에너지로 활용하는 호텔들도 있다.
여행업에 대한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AI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예컨대 야놀자에 쌓여 있는 다양한 고객 정보를 AI와 머신러닝(기계 학습)을 활용해 고객별로 현재 진행 중인 여행 계획이나 앞으로의 여행 계획을 큐레이션할 수 있다. 여행 예약 시 근처의 맛집이나 관광 명소를 추천해 준다거나 렌터카 업체를 추천하는 방식일 것이다.” 인터파크 품고 인바운드 정조준
-손정의 펀드 투자 유치 등 성공 비법은 뭔가.
“기업에서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일해 본 경험도 있고 VC에서 투자 심사역 경험과 애널리스트로서 기업을 분석한 경험도 있다. 이 같은 경험으로 투자자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조율해 설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프트뱅크 투자 유치는 코로나19 가운데 유일하게 성장한 호스피탤러티 기업이라는 점과 이 같은 성장을 SaaS와 AI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
-인터파크를 인수한 이유는.
“답변에 앞서 가장 기억에 남는 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야놀자 전에 넷마블에 있었다. 넷마블에서 투자뿐만 아니라 기업설명(IR)도 총괄했는데 2018년 빅히트의 가치가 9000억원 정도로 성장할 것으로 판단하고 200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유튜브, 구글 트렌드를 보고 투자에 확신이 섰다. 하지만 당시 넷마블 주주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주가도 빠졌다. 현재 빅히트의 시가 총액은 15조원이다.
야놀자의 인터파크 인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접근했다. 인터파크는 야놀자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웃바운드(내국인의 국외 여행)의 퍼즐을 맞춰 줄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였다. 여행은 당연히 시너지가 클 것이고 공연 부문도 K컬처를 선호하는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여행) 관광객들과 연계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2의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야놀자 성장성을 어떻게 보나.
“개인적으로 기술력을 바탕으로 거대 시장을 타기팅하는 회사를 선호한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2014년 신설된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뱅크가 기존 시장을 잠식하고 얼마나 성장할지 분석하는 인뎁스 리포트를 증권업계 최초로 쓴 적이 있다. 당시 업계에선 두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현재 두 회사는 내 예상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
야놀자가 영위하는 호스피탤러티 산업은 시장 규모가 3000조원에 달하지만 디지털화율은 20%인 변화가 아주 느린 시장이다. 또 밸류 체인은 조각조각 나 있다. 이를 장악하겠다고 덤비는 회사들은 아직 다 영세하다. 야놀자 정도의 비전과 전략, 기술력이 있다면 이 시장을 리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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