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부터 운송·활용까지 거대한 밸류 체인 필수
3000조 시장 잡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10일 현대자동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에 관한 설명을 듣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사진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10일 현대자동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에 관한 설명을 듣는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철강·화학·모빌리티 등 업종별 대표 주자들이 수소 사업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수소는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화석 연료 대비 효율이 높아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수소는 2050년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18%를 차지하고 4억대의 승용차와 2000만 대의 상용차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약 20%에 해당한다. 수소 시장 규모는 2조5000억 달러(약 2940조원)에 이르고 3000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70조원의 시장 규모와 60만 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연간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의 약 20%가 수소 활용을 통해 감축돼 기후 변화 대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소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수소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탄소 중립 달성과 수소 경제의 글로벌 패권을 잡기 위해 이종 기업 간의 합종연횡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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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밸류 체인 구축에 역량 총결집

기업들은 수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수소가 기존 본업의 경쟁력 강화의 발판이 되는 산업(자동차·철강·정유화학·유틸리티)은 물론 수소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접근하는 그룹(SK·한화·효성·두산)들이 수소 아래 헤쳐 모이고 있다.

올해 9월 현대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 5개 그룹 주도로 수소 경제 활성화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 기업 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발족되며 ‘K수소 어벤저스’가 탄생했다.

이들 기업은 2030년까지 수소 생산·유통·저장·활용 등 수소 경제 전 분야에 43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40%로 상향됨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석유화학 등 중후장대업계는 합종연횡에 더욱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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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롯데케미칼·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외 수소 사업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최근 한국 산업계는 중·장기 탄소 중립 목표 달성과 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해외 청정 수소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련 사업에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3사는 올해 7월 ‘탄소 중립을 위한 그린암모니아 협의체’, 10월 ‘대한민국 수소 경제 성과 보고 대회’ 등 한국의 수소 경제를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해외 청정 수소를 도입하기 위해 협력해 왔다.

또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의 블루·그린 수소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 주정부와 공동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는 등 실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3사는 △해외 블루·그린 수소 도입을 통한 탄소 중립(넷 제로) 실현 △ 국내외 수소 사업의 개발·투자·운영 등에 대해 협력할 예정이다.

SK에너지와 두산퓨얼셀은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 개발을 위해 손을 잡았다. 양 사는 올해 8월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 활용 공동 기술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 사는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와 고순도 수소 제조 시스템 연계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현장에서 생산한 수소를 바로 충전에 활용하는 수소 충전 거점 확대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두산퓨얼셀은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 트라이젠 성능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과 연료전지 생산을 담당하고 SK에너지는 트라이젠에서 발생한 수소를 수소 차량에 주입할 수 있도록 순도 99.97% 이상의 고순도 수소 정제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한국가스공사와 협업해 수소 생산에 집중한다. 양 사는 올해 5월 ‘액화 수소 생산 및 공급 사업의 성공적 론칭 및 전략적 제휴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액화 수소 플랜트 구축, 액화 수소 충전소 구축, 수소 추출 설비 구축, 탄소 포집·활용(CCU) 기술 실증 및 상용화 등 액화 수소 사업 밸류 체인 전반에 걸쳐 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9월 8일 열린 '2021 수소모빌리티+쇼' 개막에 앞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주요 기업 총수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9월 8일 열린 '2021 수소모빌리티+쇼' 개막에 앞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주요 기업 총수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사장. 사진=한국경제신문
미래 에너지 수소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왜 기업들은 ‘나 홀로’가 아닌 ‘동맹 맺기’에 집중할까. 아직 산업 초기 단계인 만큼 합작과 공동 투자 등 협업을 통해 기업들이 수소 사업에 쉽게 진출할 수 있고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 사업에서 윈-윈하고 싶은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져 동맹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소 경제는 기업 혼자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수소 경제는 수소 생산부터 저장·운송·활용에 이르는 전체 가치 사슬(밸류 체인)로 이어져 특정 기업이 전부 독점할 수 없는 구조다. 수소 생태계를 만들고 키우려면 각 사가 보유한 역량과 자원을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 간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현대차·SK·포스코…K수소 어벤저스 탄생

한국 기업들은 수소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40년을 수소 에너지 대중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수소 비전 2040’을 공개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모든 상용차 신모델을 수소전기차 또는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수소 관련 사업에 약 18조원을 투자해 수소 밸류 체인을 구축한다. SK E&S를 중심으로 2023년부터 연간 3만 톤 규모의 액화 수소 생산 설비를 건설해 수도권 지역에 공급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수소 환원 제철에 올인하고 있다. 수소 환원 제철은 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할 때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기술로, 기존 쇳물 생산 방식인 고로(용광로) 공법을 대체하는 신기술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포스코는 수소 환원 제철 공정 상용화, 수소의 생산부터 저장·유통·활용에 이르는 밸류 체인 전반에서 그룹사의 역량을 결집해 2050년까지 연간 수소 생산 500만 톤, 매출 3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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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은 수소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밸류 체인 구축에 속도를 내며 탄소 중립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수전해 기술을 기반으로 한 그린 수소의 공급·압축·운송·충전·발전·활용에 이르는 수소 밸류 체인을 이미 그룹 내에 갖춰 나가고 있고 수소 혼소 기술력을 갖춘 미국 PSM과 네덜란드 토마센에너지를 인수하기도 했다.

효성그룹은 액화 수소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효성그룹은 산업용 가스 전문 세계적 화학 기업 린데그룹과 함께 2023년까지 울산에 연 1만3000톤 규모의 액화 수소 공장을 짓는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