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롯손보‧교보라이프플래닛, IT 인력이 절반…수년째 적자
신규 플레이어 참여 예고에 오프라인 강자도 긴장

[비즈니스 포커스]
퍼마일자동차보험 신규 광고캠페인 ‘1만 킬로’ 편 이미지. 사진=캐롯손해보험 제공
퍼마일자동차보험 신규 광고캠페인 ‘1만 킬로’ 편 이미지. 사진=캐롯손해보험 제공
디지털 보험 시장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화손해보험·SK텔레콤·현대자동차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손해보험사(손보사) ‘캐롯손해보험’을 설립한 데 이어 하나금융그룹도 더케이손해보험을 인수해 하나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올해는 신한금융그룹이 BNP파리바카디프 손해보험을 인수하며 디지털 보험 시장 진출을 예고했고 내년엔 카카오도 카카오페이 손해보험사를 설립해 디지털 보험사 경쟁에 합류할 예정이다. 오프라인 위주로 영업해 온 기존 보험사도 디지털화 작업을 서두르며 온라인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디지털 보험시장에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면서 온라인과 정보기술(IT)를 접목한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경쟁이 확대될 전망이다.
캐롯손보, 다양한 주주구성 활용
그렇다면 디지털 보험사는 뭘까. 우선 디지털 보험사는 보험 상품을 직접 개발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온라인에서 판매한다는 점에서 보험사 상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인슈어테크와 다르다. 또 지점이나 설계사를 별도로 두지 않는다.

현행 보험업법상 디지털 보험사라는 명문화된 정의는 없다. 현재 ‘통신 판매 전문 보험회사’를 디지털 보험사라고 정의할 뿐이다. 통신 판매 전문 보험사는 총 보험 계약 건수 및 수입 보험료의 90% 이상을 전화·우편·온라인 등 통신 수단을 이용해 모집해야 한다. 비대면 채널로 영업하는 업체란 의미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간판을 내건 캐롯손해보험(캐롯손보)도 통신 판매 전문 보험회사로 인가를 받았다.

캐롯손보는 기존 보험사와 비교해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우선 주주 구성이다. 캐롯손보는 2019년 한화손해보험(한화손보)·SK텔레콤·현대자동차·알토스벤처스·스틱인베스트먼트 등이 합작해 출범했다. 한화그룹의 보험업 역량에 SK텔레콤의 통신 기술, 현대차그룹의 커넥티드카 연계 등을 통해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캐롯손보는 SK텔레콤 대리점에서 QR코드로 퍼마일자동차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이거나 SK네트웍스와 손잡고 출동 보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한화저축은행과 연계해 퍼마일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최대 연 7%의 적금 금리를 제공하고 현대차와는 디지털 키 전용 자동차보험을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엔 티맵모빌리티와 본인 차량 인증 이벤트, 코로나19 백신 보험 이벤트 등을 진행했다.
캐롯플러그 이미지. 사진=캐롯손해보험 제공
캐롯플러그 이미지. 사진=캐롯손해보험 제공
특히 대표 상품인 퍼마일자동차보험은 주주들과 협력해 만들어졌다. 퍼마일자동차보험은 IT 기기로 주행 거리를 측정해 매월 탄 만큼만 보험료를 결제해 기존 자동차 보험료에 비해 저렴하다. 캐롯손보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합쳐 개발한 기기인 캐롯플러그를 통해 주행 거리를 측정한다. 제네시스와 전기차 EV6 등 현대자동차그룹 차량은 기기가 없어도 주행 거리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보험은 출시 1년 반 만에 가입 30만 건을 돌파했다. 퍼마일자동차보험의 시초라고 하는 미국 메트로마일이나 루츠가 5년 동안 10만~15만 건 정도를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현재 지분율 구조는 한화손보 56.6%, SK텔레콤 10%, 현대자동차 3.5%, 알토스벤처스 9.9%, 스틱인베스트먼트 15%, 티맵모빌리티 5%다.

인력 구성도 기존 보험사와 다르다. 일반적인 보험사 IT 인력 비율이 5~10%인 반면 캐롯손보는 200여 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IT 인력으로 채워졌다. 최근엔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 IT 커머스 출신들을 속속 영입하고 있다. 캐롯손보는 IT 인력을 활용해 직관적인 온라인 채널을 디자인하고 IT를 적용한 보험 상품을 개발한다. 앞서 언급한 퍼마일자동차보험이 해당되며, 폰케어 액정안심보험도 캐롯손보의 디지털 기술력이 적용됐다. 폰케어 액정안심보험은 오프라인 방문 없이 고객이 가입하고자 하는 휴대전화의 시리얼 넘버와 외관을 동영상으로 업로드하면 AI가 자동으로 영상을 스캐닝하고 파손 여부를 확인해 보험 가입 프로세스를 진행한다.
교보라이프플래닛, MZ세대 겨냥
바른보장서비스 이미지. 사진=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 제공
바른보장서비스 이미지. 사진=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 제공
‘디지털’은 캐롯손보가 제일 처음 표방했지만 온라인 시장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곳은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교보라이프플래닛)이다. 이 보험사는 2013년 교보생명과 일본 라이프넷생명의 합작으로 설립, 통신 판매 전문 보험회사로 인가를 받았다. 현재는 교보생명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교보라이프플래닛도 전체 직원의 60% 정도가 IT 인력이다. 출범 당시 소비자가 직접 가입부터 유지·보장까지 모든 절차를 온라인을 통해 처리하는 방식으로 기존 보험사 채널과 차별화를 꾀했다.

최근엔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공략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 ‘정기 보험’이 있다. 정기 보험은 종신보험과 동일하게 사망을 보장하지만 보험 기간을 선택할 수 있어 자녀 독립 시기나 경제 활동 기간 등 고객이 직접 보장 기간을 설계할 수 있어 종신보험 대비 약 20% 수준으로 보험료가 굉장히 저렴하다. 특히 ‘(무)라이프플래닛e정기보험Ⅱ’는 건강할수록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 가입 시 건강 상태에 따라 건강체 고객을 ‘비흡연체’, ‘건강체’, ‘슈퍼 건강체’로 세분해 등급별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또 다른 주력 상품은 ‘바른보장서비스’다. 2018년 처음 나온 이 서비스는 보험 보장 분석 상품이다. 고객은 바른보장서비스를 통해 여러 보험사에 흩어져 있는 보험 가입 내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도 받을 수 있다.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보험을 조정하는 리모델링에 도움을 주는 셈이다. 올해 8월 기준 이용자 수는 200만 명, 이용 건수는 400만 건으로 집계됐다.

교보라이프플래닛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바른보장서비스 이용 고객을 보면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쇼핑, 인터넷 뱅킹 등 비대면 채널 사용에 익숙한 2030세대가 전체 이용자의 약 60%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융사‧빅테크도 진출 예고
최근 금융사와 빅테크(대형 IT기업)가 뛰어들면서 디지털 보험의 판이 커지고 있다.

금융지주 중에선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이 디지털 보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올해 10월 프랑스 BNP파리바그룹과 BNP파리바카디프 손해보험(카디프손보)의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해 그동안 전략적 제휴 관계였던 카디프손보의 지분 94.54%를 인수했다. 신한금융은 카디프손보의 인수를 완료하면 혁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손보사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생명보험 자회사인 신한라이프가 미니 보험사(소액 단기 보험업) 설립을 검토 중이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2월 교직원공제회가 보유했던 더케이손해보험의 지분 70%를 770억원에 인수, 6월 하나손해보험(하나손보)을 출범시켰다. 자동차보험 중심이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고 디지털 손보사로 변신을 선언한 바 있다. 올 상반기부터 자사 앱인 원큐와 원데이를 통해 생활 보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 10월엔 인슈어테크 플랫폼 ‘굿리치’를 성공적으로 경영한 남상우 하나금융파인드 대표를 새로운 디지털 전략본부장에 선임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다만 IT 인력은 아직 전체 직원 대비 5.4%에 그친다.

카카오페이는 내년 디지털 손보사 출범과 함께 대리 운전사 보험, 커머스 반송 보험 등 생활 밀착형 미니 보험으로 시장에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최근엔 상품 개발과 판매 전략을 담당할 인력 채용을 진행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보험 자회사를 설립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우선 카카오페이 소속으로 인력을 채용한 후 신설 법인이 세워지면 고용 인력의 소속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강자들도 ‘디지털’에 힘주며 디지털 보험사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올해 10월 말 온라인 보험 상품과 채널에 대한 리뉴얼 계획을 발표했다. 보험사의 온라인 사이트를 단순히 보험을 가입하는 곳이 아니라 보험을 매개로 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변화시킬 방침이다. 삼성화재 다이렉트는 데이터 분석 및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초개인화 상품을 제공할 계획이다. 예컨대 운전 빈도가 작은 가입자에게 다른 혜택을 제공하는 운전자보험 등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상품을 준비 중이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한국 보험사들은 빅테크나 스타트업 기업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거나 확장하며 디지털 채널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다만 채널 외에도 활용 가능한 사업 영역은 더 많다”고 분석했다.

한편 교보라이프플래닛은 8년째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 첫해 50억원의 적자를 시작으로 2014년 167억원, 2015년 212억원, 2016년 175억원, 2017년 187억원, 2018년 168억원, 2019년 151억원, 2020년 132억원 등 손실만 1200억원을 넘었다. 타개책으로 카카오페이 등 대중적인 플랫폼과 손잡으며 판매 채널을 확장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올해 9월 금융 당국이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주로 휴대전화 분실, 귀가 보험 등 비교적 보험료가 저렴한 미니 보험(소액 보험)과 자동차보험을 팔았던 캐롯손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캐롯손보는 최근 장기·일반보험 경력자 채용을 진행하는 등 건강보험 같은 장기 보험에 관심을 두며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돋보기
보험업계 첫 회동한 고승범 위원장 “1사 1라이선스 유연화”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1월 3일 진행한 보험업계와의 첫 간담회에서 1사 1라이선스 원칙을 완화하기 위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1사 1라이선스는 1개의 금융그룹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각각 1개만 운영할 수 있게 한 제도다. 1사 1라이선스 제도가 완화되면 이미 보험사가 있는 금융그룹이 미니 보험사(소액 단기 보험사) 등 다른 성격의 보험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1사 1라이선스 규제가 완화되면 보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많아질 것”이라며 “보험사가 다양한 전략(상품‧서비스‧채널‧고객층)을 펼치게 되면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져 보험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