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인수가에 현재 신용 등급 낮아질 것이란 우려 급증
[마켓 인사이트] 폐기물 처리 시장이 건설사들의 새로운 격전지가 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에 좌우되는 실적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폐기물 처리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돼 일회용품 사용과 의료 폐기물이 크게 늘면서 높은 성장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다만, 폐기물 처리를 중심으로 한 환경 사업 강화가 건설사들의 사업 구조를 안정시키고 있지만 과도한 투자가 진행 중이어서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 현금 창출 능력을 넘어서는 투자가 이어지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서도 안정적으로 이어져 온 건설업계의 신용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 경쟁에 몸값 치솟는 폐기물 처리 기업
폐기물 처리 기업의 인수·합병(M&A) 전쟁에 불을 붙인 곳은 SK에코플랜트다. 환경시설관리(구 EMC홀딩스)를 지난해 말 약 1조원에 인수하면서 폐기물 처리 시장에 진입한 후 클렌코·새한환경·대원그린에너지·디디에스 등 관련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SK에코플랜트가 폐기물 처리 분야에 쓴 돈은 1년간 1조8000억원에 달한다. SK에코플랜트는 2023년까지 이미 투자한 금액을 포함해 총 3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SK에코플랜트의 올해 6월 기준 총차입금은 1조9359억원이다. 2018년만 해도 7945억원이었는데 2019년 9504억원, 지난해 1조4465억원으로 늘어났고 현재도 증가 추세다. 6월 기준 부채 비율은 338.4%에 달한다.
또한 해외 공사와 관련해 대규모 손실을 경험한 후 보수적으로 해외 수주 정책을 유지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해외 수주 실적이 계속 부진한 상태다. 2019년 이후 공사 매출 규모 대비 수주 규모가 낮은 수준을 보이면서 향후 성장성에 대한 시장 안팎의 우려가 많다.
이 가운데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ESG)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SK에코플랜트는 최근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과감하게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올해 10월 분할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주력 사업 중 플랜트 부문을 물적 분할한 후 분할 승계 기업인 비엘에이치엔지니어링이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다. 또한 자회사이자 분할 승계 기업인 비엘에이치엔지니어링의 지분 매각 계획도 밝혔다. 분할 합병 과정에서 발행된 신주를 포함해 SK에코플랜트가 갖고 있는 우선주 전체를 4500억원에 외부에 매각하는 게 골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SK에코플랜트의 결정이 외형 감소와 이익 창출 능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SK에코플랜트의 총매출 3조4433억원 중 분할 이전되는 사업 부문의 비율은 약 20%다.
SK에코플랜트의 장기 신용 등급은 ‘A-’다. ‘A’급 신용도의 최하단이다. 한 단계만 신용 등급이 떨어져도 ‘BBB’급으로 주저앉는다. 그룹의 지원 가능성으로 자체 신용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신용 등급을 받고 있다. 그룹 배경을 배제하면 사실상 SK에코플랜트의 신용 등급은 ‘BBB’급이다. 선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환경을 비롯한 신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구조가 크게 바뀌고 재무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사업·재무 구조 전반에 중요한 변동 요인”이라며 “환경 사업의 중·장기적인 투자 성과와 현금 창출 능력의 주요 원천인 건설 사업의 안정적인 실적 유지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IS동서는 지난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이앤에프프라이빗에쿼티(E&F PE)와 손잡고 ‘코엔텍’과 ‘세한환경’을 5000억원에 인수했다. IS동서는 지난해 환경 사업에만 총 3건의 투자를 진행했다. 투자 규모만 2400억원이다. 현재 장기 신용 등급은 ‘BBB’다.
IS동서에 회계 기준 변경에 따른 높은 실적 변동성은 항상 고민거리였다. 인허가 등으로 착공·분양 시기가 가변적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많아서다. 또 분양률 제고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지식산업센터 사업이 수주 잔액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실적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순차입금도 계속 증가세다. 2018년까지만 해도 5000억원대 중반을 나타냈지만 지난해부터 1조원을 웃돌고 있다.
배영찬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코로나19 장기화의 여파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폐기물 처리 단가가 오르고 있다”며 “폐기물 사업의 신규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선 기존에 가동 중인 기업을 인수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 인해 인수 거래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커지고 있다”며 “중기적으로 폐기물 수집·운반·재생업으로 수직 통합될 수도 있어 투자 부담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도한 투자에 발목 잡힐 수 있다”
폐기물 처리 산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대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폐기물 처리 시설 증설은 느린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폐기물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배달 음식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일회용품 사용 역시 증가했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격리 의료 폐기물까지 더해져 의료 폐기물도 빠르게 늘고 있다.
확진자 숫자를 줄이는 대신 위중증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 전환되고 재택 치료가 많아지며 재활용이 쉽지 않은 의료 폐기물 배출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폐기물 소각과 매립 수요가 증가하면서 폐기물 처리 기업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폐기물이 지속적으로 배출돼 다른 업종에 비해 폐기물 사업과 시너지 효과도 크다.
하지만 일각에선 폐기물 처리 기업의 ‘M&A 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투자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건설사들의 신용도 하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폐기물 처리 사업에서 창출되는 현금 흐름에 비해 투자 규모가 과하면 결국 건설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입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별도 방안 없이 투자 규모만 늘리면 결국 재무 부담이라는 부메랑에 신용도가 하락할 것이란 의견이다.
성태경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수요가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다 채산성도 높은 폐기물 처리 사업이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되는 것은 건설사의 사업 안정성 측면에선 긍정적”이라면서도 “건설업 사업 환경이 비우호적인 상황에 과도한 투자로 재무 대응 능력이 약화되면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