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와 변호인 블록체인 원리에 어두워…결정적 증인의 거짓말도 재판 어렵게 해

[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 창시자가 곧 밝혀진다고?[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이 다시 전고점을 돌파하자 주류 미디어들이 진화에 나섰다. 공포스러운 뉴스 헤드라인으로 신규 투자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주류 미디어가 꺼내든 회의론은 ‘새것’, 즉 뉴스(news)가 아닌 것이 진짜 뉴스보다 훨씬 많다.

조만간 0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적대적 논리를 딛고 비트코인이 13년이나 버티다 보니 어쩌면 이 현상도 자연스럽게 쌓인 공력의 하나라고 말할 만하다.

나카모토 정체 공개?…가능성 희박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 곧 밝혀질 것이라고 주류 미디어가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의 원전은 월스트리트저널이었다. 이 신문은 경제지로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기사만 보면 대학생 인턴 기자의 습작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많이 인용된 것은 콘텐츠 때문이 아니다. 주류 미디어는 비트코인을 찍어 누를 뉴스거리가 필요했던 차에 월스리트저널의 권위가 필요했을 뿐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자임하는 크레이그 라이트 박사와 그의 동업자로 알려졌지만 이미 고인이 된 클레이만의 유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민사 소송은 라이트 박사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인지를 밝히는 재판도 아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두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전제하고 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클레이만의 유족들은 클레이만이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이고 라이트 박사는 보조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정도다.

이 재판은 이미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 재판 중 간혹 튀어 나오는 뉴스들이 암호 화폐업계를 여러 차례 헤집어 놓은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재판에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를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호기롭게 썼지만 합당한 근거는 단 한 줄도 제시하지 못했다. 뉴스가 아니고 배경 설명에 가까운데 ‘옛것’들을 정리한 언론사 캐비닛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그 질적 수준도 위키피디아를 넘지 못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트코인 현상에 대한 주류 미디어들의 꼬인 마음은 최소한의 직업 윤리 혹은 업무적 기본기마저 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만 앞서게 하는 기사였다.

이 재판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재판부와 변호인들이 블록체인 원리에 어둡다. 둘째, 클레이만이 사망한 상황에서 유일한 결정적 증인인 라이트 박사가 계속해 말을 바꾸고 있다. 따라서 진지한 비트코이너들은 이 민사 소송이 뭔가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6년간 라이트 박사의 언행을 정리해 보면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은 사실상 반박됐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이런 숨겨진 맥락을 무시하고 사토시 나카모토가 밝혀질 수 있다고 언급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권위를 빌려 근거 없는 추측을 뉴스인 양 포장한 국내외 주류 미디어들은 결정적인 국면에서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라고 주장하는 라이트 박사는 자신의 코딩 실력을 입증한 적이 없다. 자신이 짰다고 공개한 짧은 코드마저 컴파일 오류가 났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말을 번복했다. 튤립트러스트로부터의 권한 인계와 그 시한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라이트 박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비트코인의 상당량을 튤립트러스트에 신탁했기 때문에 당장 소유권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2019년 특정 날짜를 확정하면서 99.9% 자신에게 소유권이 넘어 온다고 확언했다. 이 뉴스에 그가 주도하고 있는 비트코인SV(BSV) 가격이 치솟았다. 하지만 기한이 다가오자 그는 말을 바꿨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면허를 받은 한 변호사의 서신을 이용해 변호사 비밀 보호 의무 때문에 법원의 요청에 응답할 수 없다고 했다.

여러 차례 말을 바꾸고 있는 자신들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라이트 박사의 변호사들이 꺼내든 카드는 그가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일반인과 사용하는 언어의 정의가 다르다는 주장이다.

최근 재판에서는 자폐증 전문가가 증언했는데 라이트 박사는 99%의 사람들과 사회적 행동에서 차이가 나며 언어의 문자적 해석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클레이만이 자신의 파트너였다고 말했을 때 사용한 파트너라는 단어의 개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언어의 사용 방식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되삼킬 수 없었던 결정적인 거짓말이 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스스로 창안했다고 하는 블록체인 때문에 영원히 박제됐다.

그는 초창기에 컴퓨터 60~70대를 가지고 혼자 비트코인을 채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초창기 1년 동안 한 대나 두 대만으로 채굴됐다. 비트코인은 평균 10분마다 채굴되도록 설계돼 있지만 반드시 10분마다 채굴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늘어나면 우연히 찾는 해시 값을 빨리 찾을 수 있어 채굴 속도도 빨라진다. 블록타임을 10분으로 했을 때 대략 2주에 한 번씩 난이도가 조절되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수십 대의 컴퓨터를 활용해 채굴했더라면 블록타임은 수십 초, 난이도 조절은 하루 이틀 안에 이뤄졌어야 했고 이런 행적은 블록체인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첫째 블록을 채굴하는 데 6일이나 소모할 정도로 초창기에는 난이도에 비해 채굴 파워가 낮았다. 그가 내놓은 대답은 향후 그와의 진지한 논쟁이 의미가 없다는 현타(현실 인식의 타격)만을 선사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버전업을 하느라 오랫동안 여러 대의 컴퓨터가 불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명이 말이 되려면 60대의 컴퓨터 중 50대 이상이 계속해 버전업 중이어야 한다. 그것도 1년 동안 말이다. 이 주장마저 박살 내고 싶었던 전문가들은 기록을 뒤져 비트코인 제너시스 블록이 채굴된 2009년 1월 3일과 9일 사이에는 윈도 버전업이 없었다는 사실도 찾았다. 야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하니 거짓말이라기보다 오해를 유발하는 착각이나 무지였다고 본다면 어떨까. 천재 중의 천재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토시 나카모토가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 이 정도로 무지하다는 말인데, 전문가들로서는 거짓말보다 납득하기 훨씬 어렵다.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추종자들은 가짜인 그가 설치는 데도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 재판이 재산권에 대한 다툼이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 즉 자신이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증명하는 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옹호하곤 한다.

따라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소망대로 이 재판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발명품의 원작자를 밝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재판부가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밖에 없도록 당사자들을 몰아붙여야 한다. 또한 클레이만의 유족들도 라이트 박사의 e메일과 증언에만 의지하지 말고 도대체 클레이만과 라이트 박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재판부, 어려운 증거 제시해야

하지만 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전개다. 재판부는 이 재판이 그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인지를 가리는 것과 무관하다고 선언했다. 사법 소극주의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클레이만 가족들은 라이트 박사가 작성한 e메일 외에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가능성도 없다. 컴퓨터를 비롯한 고인의 비품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가족과 교류하던 사람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고 그가 자기 입으로 자신의 가족을 언급했으며 라이트 박사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간주하고 조사한 호주 국세청에서도 클레이만과 관련해 언급했던 기록이 나오자 막대한 재산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시작한 것이 이 재판이 알려 줄 수 있는 실체적 진실의 대부분일 수 있다. 혹은 채권자나 채무자가 모두 라이트 박사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 보자면 이 재판 자체가 하나의 허구를 완성하기 위한 거대한 그림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이 재판이 지속되는 한 라이트 박사가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남은 것처럼 보이고 모호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연되는 편이 진실 자체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음모론에 가까운 이 가설도 완전히 허무맹랑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 재판에서 결정적인 것이 나올 것이라고 보도한 언론들의 호들갑도 황당한 재판의 의미 있는 사용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재판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이 재판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보다 이 시대 주류 미디어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 앞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독자들을 기만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해주고 있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