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토란막걸리 ‘시향가'는 손맛에서 출발해 끈기와 연구로 완성된 술

[막걸리 열전]
 토란을 싫어해도 마실 수 있는 토란 막걸리[막걸리열전]
토란은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다. 특유의 끈끈한 식감을 꺼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재료로 막걸리를 빚는 이가 있다. 바로 농업회사법인 시향가의 양숙희 대표다.
그는 토란이 가진 단점을 없애고 좋은 성분을 그대로 간직한 향긋한 막걸리를 완성해 냈다. 이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구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양 대표는 일찌감치 손맛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전남과학대에서 대체의학을 전공하고 누룩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직접 빚는 술마다 교수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졸업 무렵이다. 이전부터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평소에도 ‘동의보감’을 들여다보며 각종 한약재로 술을 빚곤 했다. 졸업 작품으로 내놓을 술 또한 이곳에서 힌트를 얻었다. ‘동의보감’에서 최고의 보양주로 꼽은 ‘황주’를 응용한 흑염소주였다.

그의 아이디어에 정성과 시간을 들여 완성된 술은 뜻하지 않게 전국에 소문이 났다. 흑염소를 특산품으로 개발 중이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을 정도다. 이 일화(?)는 양 대표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곡성에도 퍼졌고 마침 토란 축제를 준비 중이던 위원회에서 토란 막걸리를 빚어 달라고 의뢰했다. 곡성은 한국 전체 토란 생산량 중 70%를 차지하는 ‘토란의 도시’다. 제품만 잘 완성하면 지역 농민의 수익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막걸리 개발은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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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토란 공부부터 시작했어요. 토란을 재배한 농민들의 영농 일지부터 고서까지 토란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했죠. 파고들수록 이로운 식재료더군요. 암 예방에도 효능이 있고 식이섬유와 칼륨이 풍부해 고혈압 예방에도 효과가 있죠.”

하지만 문제는 가공법이었다. 토란 특유의 끈끈함을 잡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저도 토란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 같은 사람도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려면 그 걸쭉한 식감을 잡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이 시작됐다. 토란을 삶아 보고, 말려도 보고, 찌고, 튀기고…. 말린 토란을 가루로 넣어 보고 블록 모양으로도 넣어 보고…. 이렇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발견해 낸 특별한 비법은 이렇다. 토란을 수확해 껍질을 벗겨 쌀뜨물에 담근 뒤 얇게 썰어 동결 건조한다. 이를 지에밥에 넣고찐 다음 15일간 숙성한 뒤 조선시대 왕실에서 한복을 만들 때 쓰는 고급 천으로 만든 촘촘한 망에 넣고 술을 담근다. 이렇게 하면 토란의 좋은 성분이 그대로 남으면서도 끈끈함과 아린 맛이 사라진다. 발효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토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마시는 데 문제가 없다. 양 대표가 개발한 가공법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특허 등록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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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될 때까지, 장인의 마음으로
시향가 막걸리에는 토란이 20% 함유돼 있다. 현재 주세법은 술에서 누룩·쌀·물 등을 제외한 부재료의 비율을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데,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재료를 넣은 것이다. 이렇듯 토란 성분을 풍부하게 담고 있으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주는 맛을 완성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술 한 통에 들어가는 토란만 20kg이었지만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없이 개수대에 쏟아버렸다.

“장인이 정성 들여 도자기를 빚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깨버리잖아요. 그 마음을 알 것같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은 술을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어요. 마음이 참 힘들더군요. 하도 고생하고 있으니 누군가는 토란을 좀 적게 넣어 보라고 하는데, 제 성격상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죠.”

그렇게 쏟아버린 술이 10여 통을 훌쩍 넘어가던 어느 날, 마침내 ‘됐다’는 느낌이 나는 술을 만났다. 발효된 술에서 싱그러운 청포도 향이 풍겨온 것. 양 대표는 시향가 막걸리의 맛을 ‘한국 전통의 나물 맛’이라고 표현한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느낄 수있다는 것이다. 목으로 넘긴 다음에도 잔여감 없이 입안에 깔끔함과 청량감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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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시향가의 마지막 완성 단계는 양 대표의 손맛을 벗어나는 것. 매번 재료와 기후의 변화를 반영해 다른 맛을 내는 전통주와 달리 상업 제품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세한 변수를 두고 하루에 70번씩 실험하며 데이터를 축적해 나갔다. 동시에 리서치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예비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거쳤다. “신제품 하나만 들고나온 회사가 아니라 진짜 준비된 브랜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막걸리가 750mL의 플라스틱 병에 담겨 판매되는 것과 달리 시향가는 500mL 아담한 사이즈의 유리병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시장 조사를 하다 보니 여성 소비자는 막걸리의 큰 용량과 투박한 병을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한 여성이 파우치에서 화장품을 꺼내는 것을 봤어요. 우리 막걸리가 저 파우치와 어울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병을 골랐습니다.”

시향가는 곧 곡성의 4000㎡(약 1200평) 부지에 양조장을 새롭게 오픈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친환경 토란을 재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여행객이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보고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단지 시향가 막걸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곡성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바람이 투영된 것이다.

“지역 특산주의 장점은 지역에 이익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술을 한잔 마시면 이동하기가 어려워 지역에서 하루를 묵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지역의 식당에도 들르게 되고 지역 내에서 자연스럽게 소비가 일어나게 되죠. 시향가가 여행객들을 곡성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 토종 막걸리 축제를 열게 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김은아 SRT매거진 기자 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