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진화의 원동력은 친화력

[서평]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의 답은 진화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윌리엄 폰 히펠 지음 | 김정아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8000원



우리 몸은 지난 600만~700만 년 동안 약간 바뀌었을 뿐이지만 심리는 큰 변화를 겪었다. 우리가 보인 가장 중요한 심리 변화는 사회관계 기능, 그중에서도 특히 협동 능력과 관련한다. 흔히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 협력에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서로 어울려 활동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영양과 얼룩말은 안전을 얻기 위해 많은 수가 모여 살지만 협동을 나타내는 신호는 사실 보이지 않는다. 침팬지는 영양이나 얼룩말과 비교해 서로 훨씬 더 의존해 생활하는 데도 혼자 움직이기를 선호한다.

이와 달리 인간은 나무를 떠난 뒤로 존재 자체를 협동 능력에 의지해 살아왔다. 이처럼 인류는 서로 협동하도록 진화한 때문에 속임수를 알아채는 방법과 무임 승차자를 향한 강한 감정 반응을 발달시켰다.

우리는 이전에 베푼 도움에 보답할 목적으로만 협력하거나 협력한 대가를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협력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상냥하고 다정하고 너그러운 사람, 협력 자체를 즐겨 협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순수하게 협력을 즐겼던 조상들은 진화에 따른 이익을 꽤 많이 얻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도움을 되돌려 주지 못할 낯선 사람과도 종종 자원을 나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낯선 이와 자원을 나누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놀라움은 진화의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낯선 사람과 자원을 나누는 행동이 어찌 보면 속아 넘어갈 빌미를 제공하는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너그러운 사람이 실제로 이용당할지라도 길게 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우리는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도움을 베풀어 협력하도록 진화했다. 달리 말해 남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무의식적으로 협력한다. 남과 협력하거나 무리를 배신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배신이 합리적인 선택일 때마저도 배신보다 협력을 더 빨리 선택했다.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같은 효과가 작용해 협력을 고를 확률이 훨씬 높았다. 이처럼 협력 본성을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

잔인한 진화 속, 서로 돕는 인류

조상들이 살아남아 후손을 퍼뜨리는 데는 무엇보다도 사회관계가 중요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회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결과 우리는 집단과 연결을 유지할 여러 방법을 진화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구성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생각을 알면 그들과 어울리거나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또 집단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알기를 바란다.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자기 생각을 주입하면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집단이 움직이도록 유도할 더없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집단에서 자신의 위치가 탄탄하다는 입증이므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교롭게도 본질적으로는 제 잇속을 챙기는 이 두 가지 목적이 성공하는 기업의 비결과 일치한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때 사회관계를 조율하고 분업을 끌어 내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감정 반응도 남과 공유하려고 한다. 집단이 위협이나 기회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구성원 전체가 위협이나 기회를 같은 방식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일치를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자기 감정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상반되는 감정을 보이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손꼽히는 좌절과 불만을 느끼는 경험이다.

무례하게 행동한 동료 때문에 화가 치솟았다고 해 보자. 배우자가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더 나아가 재미있거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면 동료보다 배우자에게 화가 더 치밀기 마련이다. 동료의 무례한 행동에 남들이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상황을 전달할 때 동료를 더 무례한 사람으로 설명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인류는 사회관계를 위해 친화력을 바탕으로 타인과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거짓말 또한 생겨났고 끊임없이 감정을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뇌의 용량도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친화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연적으로 진화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고 도태돼 후손을 남기기 어려웠다.

이 책은 진화 과학을 인류학·생물학·역사학·심리학과 함께 다양한 예시를 곁들여 살펴본다.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멋진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고 과거의 이해를 통해 더 나은 미래의 행복을 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친화력을 지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류의 진화 과정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사회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노민정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