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금융 계열사도 세대교체
생명·카드·증권은 유임, 화재·자산운용은 교체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 성적 좋지만 과제 산적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 출입문의 삼성 로고.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 출입문의 삼성 로고. 사진=연합뉴스
삼성 금융 계열사인 삼성화재와 삼성자산운용의 사령탑이 전격 교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New) 삼성’ 기조를 토대로 금융 계열사도 젊은 인재를 전면에 적극 배치해 새로운 성장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삼성화재‧자산운용, ‘젊은 리더’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 내정자(왼쪽)와 서봉균 삼성자산운용 대표 내정자.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 내정자(왼쪽)와 서봉균 삼성자산운용 대표 내정자.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는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 등 5곳이다. 이번 인사로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게 된 곳은 삼성화재와 삼성자산운용이다. 삼성화재 신임 대표이사에는 홍원학 부사장, 삼성자산운용 신임 대표이사에는 서봉균 삼성증권 부문장이 각각 내정됐다. 이들 내정자는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선임된다.

삼성화재를 이끌 홍 내정자는 잔뼈가 굵은 보험맨이다. 그는 1964년생으로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생명에서 인사팀장, 전략영업본부장, 설계사(FC) 영업1본부장에 이어 삼성화재 자동차보험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보험사 요직을 두루 지냈다.

1967년생인 서 내정자는 금융 투자 업계에서 약 30년을 근무한 운용 전문가다. 그는 1990년 한양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후 모간스탠리,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을 거쳐 올해부터 삼성증권 운용부문장을 맡았다.

1962년생으로 삼성 금융 계열사 수장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심종극 삼성자산운용 대표는 1년의 임기가 남았지만 ‘젊은 리더십’을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무 삼성화재 사장도 올해 사상최대 실적을 달성해 당초 유임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그룹내 ‘세대교체’ 바람에 따라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1963년생이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삼성사회공헌업무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전영묵·장석훈 유임, 김대환 승진
반면, 최 사장과 동갑내기인 김대환 삼성카드 대표와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은 유임된다. 특히 김 대표는 부사장 직급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후 1986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경영혁신그룹장, 경영지원실장(CFO) 등을 지낸 재무통이다. 지난해부터 핸들을 쥐고 삼성카드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디지털 경영 역량을 강화해 올해 최대 실적을 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도 자리를 지킨다. 이번 인사로 삼성 금융 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해야 할 전 사장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지난해 초 선임된 전 사장의 임기 만료는 2023년 3월이다. 그는 1964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다. 원주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자산운용본부장을 거쳤고 삼성증권 부사장과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 그룹 내 자산 운용 전문가로 통한다.

전 사장이 이끄는 삼성생명은 지난해 연결 기준 순익이 전년 대비 30.3% 늘어난 1조3705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누적 3분기 순익도 전년과 비교해 30% 불어난 1조2938억원으로 나타났다.

재무 건전성 관리에서도 확실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336조원에 달하고 자본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급 여력 비율은 311%로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문제는 전 사장이 자산 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특명을 받고 수장직에 올랐다는 점이다. 삼성생명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월 전 사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제안하면서 추천 사유에 대해 “자산 운용 부문에서 높은 전문성과 경험을 보유해 삼성생명 성장과 주주 가치 제고의 적임자”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의 보험 시장은 포화 상태로 해외 사업과 자산 운용 부문을 강화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보험사는 보험 본연의 영업과 함께 소비자와 맺은 보험 계약으로 받은 보험료를 주식·채권·대출 등으로 운영해 수익을 낸다. 운용 자산 이익률은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해 얻는 이익이다.

하지만 올해 삼성생명은 자산 운용 부문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운용 자산 이익률은 2019년 3.41%에서 2020년 2.75%로 떨어졌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3%를 넘지 못했다. 3분기만 따져봤을 때도 삼성생명의 운용 자산 이익률은 2.79%로 생명보험사 빅3(삼성‧교보‧한화생명) 중 가장 낮았다. 같은 기간 교보생명은 3.33%, 한화생명은 3.49%로 집계됐다.

소송·제재 리스크도 전 사장이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삼성생명은 4300억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소송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즉시연금은 보험 가입 시 보험료 전액을 한 번에 내면 다음 달부터 연금처럼 보험금이 매달 지급되는 상품이다. 즉시연금 문제는 2017년 6월 한 가입자가 연금 액수가 상품 가입 당시 설명을 들었던 최저 보장 이율에 못 미친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금융위원회의 삼성생명 제재안 최종 판단이 어떻게 결론날지도 미궁 속이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은 500여 건의 암 입원 보험금 부당 지급 거절과 관련해 삼성생명에 ‘기관 경고’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아들이면 삼성생명은 향후 1년간 감독 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금융권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시범사업이 이달부터 시작됐지만 삼성생명을 비롯해 자회사인 삼성카드, 삼성증권은 중징계 의결에 막혀 마이데이터 사업과 관련해선 공전 상태다. 금융위원회의 징계 결정은 통상 한 달을 넘기지 않지만 당국은 충분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확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경영 부담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특혜 의혹 비난 등으로 삼성생명 안팎의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다.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왼쪽부터), 김대환 삼성카드 사장,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왼쪽부터), 김대환 삼성카드 사장,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돋보기
이재용의 뉴 삼성…60세 룰 일부 복원

‘60세 룰’은 정기 인사에서 만 60세가 넘는 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들을 교체하고 세대교체를 꾀하는 관행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삼성 주요 인사 원칙 중 하나였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 중요한 원칙으로 비교적 잘 지켜졌다가 2014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이 공식은 다소 흐려졌다. 특히 이 부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2017년 삼성이 총수 대행 체제에 돌입하면서 베테랑 고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하지만 ‘뉴 삼성’의 가치를 내건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서 60세 룰이 일부 복원된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던 김기남(만 63세)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종합기술원장으로 옮겼고 만 60세인 김현석(소비자가전)·고동진(모바일) 사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년 3월 김기남·김현석·고동진 대표이사로 구성된 삼두(三頭) 체제가 가동된 지 3년여 만이다. 이들의 자리는 사장에서 승진한 한종희(만 59세) 부회장과 경계현(만 58세) 사장이 맡는다.

앞서 삼성전자는 11월 29일 기존 부사장과 전무의 임원 직급을 모두 ‘부사장’으로 통일하고 임직원 승진 시 직급별 체류 기간을 폐지하는 내용의 인사 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은 30대 임원과 40대 최고경영자(CEO) 발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젊은 경영진을 조기 육성하고 전면 배치하겠다는 복안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