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안에서 탄생한 술

[막걸리 열전]

경북 문경 희양산 자락에 자리 잡은 두술도가. 이곳의 주인장 김두수·이재희 부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살다가 15년 전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 부부는 지금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마음과 뜻을 나누며 농사짓고 술을 빚고 있다. 두술도가 라벨에 그려진 동화처럼 어여쁜 두술도가의 이야기 첫 장을 열었다.
두술도가를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두술도가를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살이를 동경하던 200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김두수·이재희 씨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렇게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정작 부부는 좀 달랐다. 이들은 남들의 기준과 다른 삶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왜 선진 사회, 이상적인 노동 환경 같은 미국에서의 보장된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선택했을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부부는 미국 생활이 모두의 예상처럼 평안하지만은 않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미국에서 우연히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읽으며 생태주의, 지속 가능한 삶 등 자연에서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미국의 상황은 정반대였죠.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나라 안팎으로 떠들썩했고 집집마다 커다란 성조기를 내걸고…. 그야말로 어수선했죠. 경제적인 측면에선 분명 우리의 삶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두술도가 대표 김두수·이재희 부부.
두술도가 대표 김두수·이재희 부부.
결국 부부는 미국 영주권도 포기한 채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1년여간의 고민 끝에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부부가 연고 하나 없는 이곳을 택한 데는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귀농하기 위해 2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른 이곳의 정취에 반해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정취와 달리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부부가 문경에 정착한 2005년 무렵에는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해 이들을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이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내려가면 괴상한 종교에 빠졌거나 인생과 사업이 크게 망했거나 하는 기막힌 사연을 가진 것으로 봤어요. 마을 어르신들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 놈들인지 꽤 의문스러워하셨죠.”

두술도가의 시작
부부는 더디지만 꾸준히 복숭아 농사를 꾸려 나갔고 이후 함께 농사를 지을 동료 농부들도 차츰 늘었다. 그렇게 부부는 문경의 희양산 자락 부락에 동네 어르신, 젊은 농부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공동체의 쌀이 팔리지 않아 걱정하는 동료들을 보고 술을 빚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두술도가의 시작이다.
희양산 공동체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희양산 우렁쌀.
희양산 공동체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희양산 우렁쌀.
“쌀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눈으로 보고 도정도 직접 하니 저도 열심히 했죠. 책으로, 몸으로 공부하고 익히며 술을 빚었어요. 제가 술 농사를 지으면 벼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이번 술은 부드럽다’, ‘더 달큼하면 좋겠다’ 등등 의견을 제시하고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2년 전에 주류 제조 자격을 얻어 이곳에 양조장을 열었죠.”

두술도가는 그렇게 ‘희양산 막걸리 15’를 시작으로 ‘희양산 막걸리 9’, 문경의 특산물 오미자를 넣은 ‘오! 미자씨’ 등 3종의 탁주를 시장에 선보이게 됐다. 두술도가의 술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우며 마시기 좋고, 달고, 시고, 쓰고, 떫은 다양한 맛의 밸런스가 좋다. 김 대표 역시 본인과 친구들이 맛있게 마시기 위해 만든 것이 희양산 막걸리의 시작이기에 맛이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또한 전통주에서도 와인처럼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맛을 잘 구현하고 싶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 전미주 씨의 그림이 그려진 두술도가의 탁주.
그림책 작가 전미주 씨의 그림이 그려진 두술도가의 탁주.
하나부터 열까지 공동체
쌀과 술의 생산과 소비가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듯이 막걸리의 라벨링도 공동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바로 공동체의 일원인 그림책 작가 전미주 씨의 작품이 두술도가 술병에 그려진 것. 그 덕분에 두술도가의 양조장·안내서·술병에는 귀엽고 친근한 두술도가만의 동화가 가득하다.

“쌀이 있었고 술을 만들면 마셔 줄 친구들이 있어 이 일을 시작했어요. 이제는 즐거운 제 일이 됐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즐겁게 술과 인생을 완성해 가고 싶어요. 언제나 완전한 만족은 없겠지만 말이에요.” 웃음꽃이 활짝 핀 부부의 얼굴에서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했습니다’라는 동화의 결말을 떠올렸다.

손유미 객원기자 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