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다운 사이클 우려에도 ‘사상 최대 매출’ 예고…중국 승인으로 ‘인텔 낸드’ 인수 작업 박차

[비즈니스 포커스]
SK하이닉스, 반도체의 ‘겨울’을 비웃다
최근 경기도 이천시 주요 상가 골목 입구에 SK하이닉스의 2021년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축하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플래카드의 발신지는 이천 상인연합회다. 기업의 매출 지표에 지역 상인들이 축하를 건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역 상권 내 매출에서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번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이 지역 상인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사상 최대’ 경신에 경신

SK하이닉스의 2021년 매출은 경신에 경신이었다. 그중에서도 2021년 3분기에는 창사 이후 분기 단위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세계를 휩쓴 공급망 대란 속에서 이뤄낸 고무적인 성과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1년 3분기 매출은 11조8053억원, 영업이익은 4조1718억원(영업이익률 35%)이다. 매출 신기록에 이어 영업이익은 2018년 4분기 이후 2년 반 만에 4조원대 분기 영업이익을 올렸다. 2018년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최고 정점을 기록한 때다.

이번 매출 상승의 주요인은 서버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와 제품 가격 상승에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와 원격 수업 등이 늘면서 서버 수요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여기에 내부 혁신도 이뤘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3세대(1z) D램과 128단 4D 낸드 등 주력 제품의 수율을 높이고 동시에 생산 비중을 확대해 원가 경쟁력을 개선하면서 4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또 그동안 적자가 지속돼 온 낸드 사업이 흑자로 돌아선 것도 실적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이번 호실적을 설명했다.
SK하이닉스, 반도체의 ‘겨울’을 비웃다
반도체 시장에선 ‘겨울’로 통하는 2021년 4분기에도 SK하이닉스의 전망은 밝다. 업계에선 3분기에 이은 사상 최대 매출을 예고하고 있다. 어규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4분기 비수기 진입으로 D램과 낸드 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서버발 수요 증가와 신규 모바일 출시의 영향으로 기대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3분기 흑자 전환된 낸드는 수율 개선과 단수 증가 효과가 지속되며 수익성이 지속 개선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 조사 기관 IC인사이츠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1년 예상 매출액은 전년 대비 38% 증가해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전자는 34%, 인텔은 마이너스 1%로 예측됐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2021년보다 2022년 성장을 더 기대하고 있다. 2021년 한 해 기술 개발에 앞장서면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D램 사업에서 업계 최초로 고부가 가치·고품목 제품인 HBM3 개발에 성공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첨단 포토 공정을 구현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도입해 10나노급 4세대 D램(1a)을 양산하고 있다.

지난 12월 15일에는 단일 반도체칩으로는 최대 용량인 24Gb(기가비트) DDR5 제품의 샘플을 출하했다. 현재 DDR D램은 8Gb, 16Gb 용량이 주로 통용되고 있으며 최대 용량은 16Gb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업계 최초로 DDR5를 출시한 데 이어 1년 2개월 만에 최대 용량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DDR5 분야 기술 주도권을 확고히 하고 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도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24기가비트 DDR5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낸드 사업은 2021년 3분기 흑자 전환에 이어 세계 시장 선점을 공고히 할 전망이다. 이미 미국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3위에서 업계 2위로의 위치 변화가 확실시된다.

앞서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 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발표 이후 해당 사업장이 있는 한국·미국 등 8개 국가의 경쟁 당국으로부터 차례대로 관련 허가를 받아 왔다. 2021년 7월 싱가포르 정부 승인 이후 중국 당국의 허가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일각에선 인텔이 미국 기업이라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의 영향으로 중국 당국의 인수 승인이 늦어지거나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2021년 12월 22일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독점 심사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으로부터 인텔 낸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 인수에 대한 합병을 허가받았다고 발표했다. 인수 발표 후 14개월 만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의 ‘겨울’을 비웃다
인텔 업고 D램·낸드 ‘양 날개’

연내 허가를 받으면서 인수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몇 가지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면 인수 작업은 모두 완료될 예정이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3위였던 SK하이닉스가 일본 기옥시아(구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문)를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집계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1년 3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34.5%로 1위, 일본 기옥시아가 19.3%로 2위다. SK하이닉스는 13.5%로 3위였지만 6위인 인텔(5.9%)의 점유율을 가져오면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19.4%로 뛰어오르게 된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2위다. 이제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 추격만이 남았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까지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양 날개를 얻게 됐다. 노 사장은 “인수 이후 SK하이닉스는 양 사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상호 보완적인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규모의 경제도 갖춰 갈 것”이라며 “기술 개발 기반을 확대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리더로 진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세를 몰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확장에도 나선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10월 키파운드리 인수 계약을 맺고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기엔 파운드리 확장을 통해 비메모리 진출 기반을 다지는 한편 한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생태계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는 최고경영자의 뜻도 담겼다.

이를 위해 2021년 12월 초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2022년 조직 개편을 통해 세계 최대 미국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인사이드 아메리카(Inside America)’ 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전략을 실행해나갈 미주 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미주 조직의 장은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맡았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현지에서 사업 경쟁력을 다지는 동시에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강자들과 협업을 모색한다는 박 부회장의 전략이 이 조직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