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전쟁에 흔들리는 원·달러 환율…양국의 ‘자국 통화 강세 용인’ 적극 활용해야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설치된 지난 6일환율 전광판, 2개월 만에 1200원 선을 넘어섰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설치된 지난 6일환율 전광판, 2개월 만에 1200원 선을 넘어섰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새해부터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첫해에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일부에서는 1500원) 이상으로 급등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2021년 초까지는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제와 통화 정책에 큰 변화가 발생해서다.

단, 코로나19 상황이 백신 보급을 계기로 봉쇄 체제가 풀리며 원·달러 환율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추세다. 지난해 초 1080원대 초반까지 떨어진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1200원대에 진입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율 예측을 잘했던 기업과 투자자에는 커다란 기회, 실패한 기업은 손실이 나타나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1200원대 진입한 원·달러 환율, 미·중 움직임에 달렸다[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국 출구 전략에 달린 원·달러 환율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떻게 출구 전략을 추진할지 판단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처럼 위기 국면일 때는 돈을 많이 풀고 최근처럼 극복되기 시작하면 돈의 공급을 줄이는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을 추진해서다.

지난해 4월 인플레이션 쇼크 이후 말이 많았던 테이퍼링은 같은 해 11월 Fed 회의에서 가닥이 잡혔다. 금융 위기 당시 5년 만에 추진됐던 테이퍼링이 코로나19 사태에는 2년 만에 추진되고 있다.

모든 금융 위기는 유동성·시스템·실물경기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 ‘위기 극복 3단계 이론’으로 보면 금융 위기는 시스템에서 비롯돼 사전 예측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초기 충격이 적었지만 시스템 위기를 극복해야 실물 경기 회복이 가능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금융 위기 당시에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 대비 돈이 적게 풀렸음에도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19 사태는 초기 충격이 큰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였고 세계 주가가 한 달 만에 반 토막이 날 정도로 순식간에 폭락한 것은 하이먼 민스키 리스크 이론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아무도 모르는 위험’에 해당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Fed는 2020년 3월 임시 회의 이후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사태가 끝날 때까지 매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달러화를 무제한 공급하겠다는 방침도 선언했다.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스템 문제에서 비롯된 종전의 위기와 달리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빠르게 이행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풀린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성장률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거진다.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테이퍼링이 금융 위기 때보다 앞당겨 추진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1200원대 진입한 원·달러 환율, 미·중 움직임에 달렸다[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중 패권 경쟁에 흔들리는 원·달러 환율
올해 원‧달러 환율을 전망할 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변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미국과 중국 간의 마찰이다. 3차 대전(헨리 키신저)과 2차 냉전(니얼 퍼거슨)이란 경고가 나올 정도로 양국의 패권 경쟁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가장 격렬한 것으로 예상된 환율 분야는 ‘통화 절상’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외형상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안화 절하 문제를 두고 환율 전쟁을 피해 왔던 과거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국 모두 인플레이션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해서다.

생산 기지인 중국은 생산자 물가 상승률(PPI)을, 소비 시장인 미국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CPI)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판단한다. 그런데 이 지수들이 모두 고공 행진하고 있다.

양국의 인플레이션은 경기 과열과 같은 총수요 요인보다 세계 가치 사슬(GVC)과 공급망(GSC) 붕괴로 인한 공급 요인이 크다. 공급 측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세금 감면과 생산성 증대, 사회적 연대 등을 통한 임금 상승 억제 등이 있지만 최근처럼 외부 충격으로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자국의 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위안화와 달러화 가치 상승은 양국의 경제 정책과 맞물려 의외로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내수 위주의 ‘쌍순환 전략’과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 중이다. 공식 인구 14억 명에 1인당 소득마저 1만 달러를 넘어가면 내수 시장의 구매력도 충분하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미국과의 충돌을 막으면서 내수 시장을 키워 경제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도 해외에 있는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과 반도체 등 주요 핵심 부품과 원자재의 ‘굴기 정책’, 내년부터 본격화될 ‘사회적 인프라 정책’ 등을 추진하는 데 강달러가 유리하다. 중국보다 유리한 것은 투자 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점이다.

Fed의 출구 전략과 함께 중국과 미국이 위안화와 달러화 강세를 동시에 용인한다면 원‧달러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수입 물가 안정과 날로 높아지는 중하위 계층의 경제고통지수를 낮추기 위해 달러 강세를 용인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

수출 주도로 압축 성장한 한국으로선 양대 경제 대국의 자국 통화 강세 용인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원화가 약해지면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증가로 이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내수 시장이 작아진 상황에서 수출이 받쳐 줘야 성장률 급락을 막을 수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외환 위기 가능성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한국처럼 신흥국(MSCI 기준)들의 외자 이탈에 따른 방지책은 금리 인상보다 외화를 충분히 쌓는 일이다.

한국이 직접적으로 보유한 제1선 외화와 통화 스와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2선 외화를 합하면 5500억 달러가 넘는다. 적정 수준보다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어 당분간 안정된 상황이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플레이션 부담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내수 육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가진다. 지금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 선 이상으로 올라도 제2의 외환 위기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