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후 최대 실적에 회사채 흥행…‘AA+’ 회복은 지켜봐야

[마켓 인사이트]
에쓰오일의 정유 석유화학 복합 시설 사진=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의 정유 석유화학 복합 시설 사진=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이 최근 얼어붙고 있는 공개 모집 회사채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실적 악화로 신용 등급이 떨어진 후 1년반 만에 재개된 회사채 발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 지난해 창사 이후 최대 흑자를 달성해 기관투자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떨어진 신용 등급이 회복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모집액의 3배 달한 투자 수요

에쓰오일이 냉각기에 접어든 회사채 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뭉칫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조기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동시에 한국은행이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며 올해 초부터 시장 금리가 빠르게 상승했다. 이에 따라 투자 손실을 우려한 기관투자가가 ‘지갑’을 닫으면서 회사채 시장의 분위기가 암울해졌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달랐다. 2월 중순 2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실시한 수요 예측에 보험·자산운용사·공제회 등이 대거 몰렸다. 3배에 달하는 6200억원의 투자 희망 자금이 쏠렸다. 5년 만기 1400억원 회사채에 4500억원, 7년 만기 300억원에 700억원, 10년 만기 600억원에 1000억원 등이 모였다.

시장 안팎에선 기관투자가들이 장기 회사채를 꺼리고 있는 상황에서 에쓰오일이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고 평가한다. 많은 수요에 에쓰오일은 결국 2800억원으로 회사채 증액 발행을 결정했다. 조달 금리도 나쁘지 않다. 신용도에 비해 낮은 수준에 회사채 발행 금리를 설정했다.

이번 회사채 발행의 흥행 성공은 에쓰오일에 큰 의미를 가진다. ‘‘AA+’에서 ‘AA’로 신용 등급이 떨어진 후 진행된 첫 회사채 발행이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은 2020년 하반기까지 ‘AA+’의 신용 등급을 유지해 왔다. ‘AA+’는 최고 신용 등급인 ‘AAA’의 바로 아래 단계다. 공기업과 은행 등을 제외한 일반 기업 중에선 사실상 최고 신용도를 갖췄던 셈이다.

하지만 대규모 영업 적자를 기록한 이후 신용 평가사들은 에쓰오일이 실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했다. 현금 창출 능력도 약화된 상태여서 재무 구조 개선 역시 지연될 것이라고 내다봤고 신용 평가사들은 에쓰오일의 신용 등급을 일제히 ‘AA’로 낮췄다. 신용 등급이 낮아진 후 에쓰오일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에쓰오일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조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냈다.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으로 석유 제품의 수요가 크게 위축된 탓이다. 원유 공급 과잉까지 맞물려 국제 유가는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

재고 시차 효과와 기말 재고 자산 평가와 관련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휘발유·항공유 등 석유 제품 등에서 손익분기점 이하의 마진이 계속되면서 연결 기준 약 1조1000억원의 영업 적자가 발생했다.

이 상황이 달라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이다.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에쓰오일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27조4639억원, 영업이익은 2조3064억원이다. 사업부문별로 정유 부문의 영업이익이 1조277억원으로 기여도가 가장 컸다. 윤활기유 1조17억원, 석유화학 2770억원 등이다.

지난해 들어 큰 폭의 유가 상승과 윤활기유·주요 화학 제품의 스프레드(원료와 제품가 차이) 개선이 나타난 덕분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적 회복에 따라 에쓰오일의 신용 등급이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일부 회사채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으로 구성돼 기관투자가들의 선호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겨낸 에쓰오일, 신용도 회복할까
신용도 회복 전망엔 ‘갑론을박’

에쓰오일은 1976년 설립된 정유사다. 정유 부문 이외에도 석유화학과 윤활 부문 등으로 다각화된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과점적 정유 시장에서 3위의 정제 능력을 갖췄다. 한국 정유업계는 에쓰오일·SK에너지·SK인천석유화학·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등 5곳이 과점 구조를 보이고 있다.

김문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주요 정유사들의 수출 비율이 높아지면서 해외 시장의 영업 여건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 시장에서의 견고한 사업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은 글로벌 경기 변동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에쓰오일의 신용 등급 상향 조정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기상조란 평가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투자 과정에서 나타난 재무 부담 때문이다. 에쓰오일은 2015~2018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2018년 영업실적 저하에 따른 부족 자금이 발생해 연결 기준 순차입금 규모가 2016년 5083억원에서 2019년 6조137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9월 연결 기준 부채 비율은 172.3%다. 2020~2021년 잉여 현금 창출을 바탕으로 순차입금을 지난해 9월 기준 5조942억원까지 줄였지만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석유화학 2단계 투자가 확정되면 차입금이 재차 증가할 수 있다.

운전 자본 부담 때문에 잉여 현금 흐름도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연결 기준 에쓰오일의 잉여 현금 흐름은 756억원 적자다. 잉여 현금 흐름상 부족분을 웃도는 유형 자산 처분에도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 차입금 환산 증액 효과가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앞으로의 사업 전망에 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지난해 실적 회복의 배경이 된 유가 급등과 자연재해에 따른 정유·화학 설비 공급 문제 등이 일시적인 호재여서다. 정제 마진이나 파라자일렌(PX) 스프레드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점을 보면 본격적인 실적 개선 여부에 대해선 좀 더 관망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정유 부문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와 완만한 글로벌 석유 수요 회복세, 제한적인 정제 마진 회복 전망 등을 감안할 때 본격적인 영업 실적 개선은 중·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며 “올해 유가는 상고하저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정제 마진 안정화를 위해선 항공유 수요 회복을 포함한 글로벌 석유 제품 수요의 완연한 증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석유화학 부문은 중국 중심의 증설 부담으로 올해 마진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윤활기유 부문 역시 정유사의 가동률 상승에 따른 공급 확대로 올해 수익성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