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 패권 유지 위해 우크라이나 침공...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 공포' 커져
[스페셜 리포트- 금융시장으로 본 우크라이나 전쟁]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냉전 체제 해체 30여 년 만에 ‘신냉전’ 체제가 다시 시작되며 전 세계를 긴장에 몰아넣고 있다. 잇단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 카드’마저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커지는 공포심이 글로벌 금융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신냉전’의 서막, 서방 vs 러시아의 동유럽 패권 다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키예프 공국이라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지만 두 나라는 키예프 공국 멸망 후 서로 다른 역사를 겪으며 얽히고설켜 왔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그동안 켜켜이 쌓여 온 충돌과 갈등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유럽 지역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국가 간 ‘패권 다툼’의 성격이 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냉전’의 서막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자유롭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 우크라이나가 추진해 온 ‘유럽연합(EU)과 NATO 가입’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NATO 진영인 유럽과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게 된다면 NATO의 방위군 전선과 국경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금지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첨예하게 대립해 오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이토록 반대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수송관 노드스트림과 관련된 것이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다양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 강국’이다. 러시아가 생산하는 자원이 전 세계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만 해도 원유 17%, 천연가스 25~30%에 달한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를 비롯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다. 러시아는 현재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등 동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파이프라인이 바로 우크라이나를 관통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어 결국 자원 수출을 넘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갖는 국가가 향후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을 컨트롤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서방과 러시아의 ‘동유럽 패권’ 전쟁은 결국 ‘에너지 패권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러시아,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
전쟁 초반만 하더라도 러시아군이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예상보다 선전 중인 우크라이나군의 활약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경제 제재까지 더해지며 러시아군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우크라이나가 군사적 대응에 나선다는 전제 아래 러시아에 더 이득이 큰 방향은 국지전”이라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는 국지전의 수준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NATO의 개입이 없다는 전제 하에 국지전으로 분류했다.
만약 전면전까지 전쟁이 확대될 경우 러시아는 에너지를 비롯한 실물 교역이 제한되며 경제 충격이 확대된다. 전쟁 불확실성으로 인한 유럽 경기 침체 우려까지 동반된다. 이에 비해 국지전은 일부 경제·금융 제재는 부담이지만 실물 교역이 차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 원자재 수출국인 러시아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군사적 대응으로 나서기보다 경제 제재에 그치는 것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실제 NATO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파병 계획은 없다”며 직접적인 군사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향후 금융 시장의 여파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 수위와 범위다. 특히 지난 3월 1일 EU가 러시아의 7개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금융 시장에도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SWIFT는 달러화로 국제 금융 거래를 할 때 필요한 글로벌 결제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이번 제재는 러시아를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함으로써 러시아를 모든 국제 결제망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가장 가혹한 경제 제재로, 역사적으로 G20 국가의 중앙은행이 SWIFT 제재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향후 러시아와 거래하는 기업이나 금융 회사들에 혼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러시아의 에너지 부문에서 대응이 주목된다”며 “러시아가 이번 제재에 대항해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제한한다면 유럽발 인플레이션 충격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살얼음 글로벌 증시, “지금이 투자 기회?”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요동치는 중이지만 이번 전쟁으로 인한 금융 시장의 영향은 점차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제 과거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반복될 때마다 금융 시장은 출렁거렸지만 시장은 결국 회복되고 우상향 흐름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 주식 시장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투자 기회’라고 믿으며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전쟁 발발 이후 주가를 소폭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분석한 과거 지정학적 리스트 사례에 따르면 1990년 쿠웨이트의 사우디아라비아 침공, 1991년 걸프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11년 시리아 내전과 아랍의 봄, 2014년 러시아 크림반도 병합 등 국지전은 지속적으로 발발해 왔다. 특히 대부분이 주요 산유국 지역에서 충돌이 나타나 에너지 가격 불안이 지속됐다. 그럼에도 실물 경제 회복세가 추세적으로 꺾이거나 금융 시장 조정 폭이 크지는 않았다. 국지적인 충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공급이 유지되면서 유가 급등세가 진정돼 실물 경제에 추가로 충격을 더하지 않은 영향이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상황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 공포’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세계 경제는 경기 침체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였다. 양국 간 전쟁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이 축소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생산 원가 상승이 뒤따랐고 그 결과 생산 차질이 심화된 영향이 컸다. 그 무엇보다 당시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재정 정책 가용 범위가 제한돼 경기 부양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글로벌 증시의 조정 폭이 33%에 달했다. 현재의 상황을 1980년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꽤 높은 시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글로벌 증시의 조정 폭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클 수 있고 반등 속도 또한 과거보다 상당히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은 원유 가격의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원유 가격의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 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이미 원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던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쟁이 발발한 ‘시점’이 가장 큰 약점일 수 있다”며 “이번 전쟁으로 유럽으로의 에너지 공급 불안정이 심화된다면 기타 상품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 같은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거침없이 오르던 유가는 국제 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 이후 지난 3월 2일 기준 배럴당 100달러에 이어 110달러(약 13만2700원) 선에 육박했다. 브렌트유 선물은 3월 2일 기준 배럴당 110.23달러까지 올랐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8.41달러까지 다다랐다.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다.

현재 원유·셰일오일·액화천연가스(LNG)를 합한 석유 관련 광물 생산 비율은 미국이 17%로 가장 높고 러시아가 12.6% 정도다. 천연가스도 미국의 생산 비율이 24%, 러시아가 17%로 미국이 더 높다. 알루미늄은 중국의 생산량이 세계 생산량의 57.4%로 절대적이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옥수수 수출 비율은 15%로 역시 미국 37%, 아르헨티나 20%에 못 미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셈법이 복잡해진 것은 각국의 중앙은행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 정책으로 선회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2년여간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황을 거치며 글로벌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는 시점에서 지정학적 위험까지 확대된다면 금융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재정 정책의 범위와 효과는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유승민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장 단기적으로는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데 조심스러운 행보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각국 통화 정책의 변화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갈등이 장기화됨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 강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는 이중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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