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차 작업부터 포장·운송까지 자동화…다수 로봇 관리하는 관제 시스템 경쟁
[테크 트렌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재택근무·재택수업 등 집을 주요 활동 공간으로 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됐다. 다양한 재택 활동이 가능하게 된 데는 유통·물류업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유통·물류업 발전의 두드러진 특징은 운반 로봇을 주축으로 한 물류 자동화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생산성을 입증한 운반 로봇 시장은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서로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는 AGV와 AMR
모든 일상에 큰 변화를 몰고 온 코로나19 사태의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택배를 비롯한 물류 시장의 양적·질적 변화도 유발했다. 한국의 택배 시장은 2019년 이전 연간 7~13%의 성장세를 기록하다가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에는 21%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이러한 유통·물류 시장의 성장세에 힘입어 물류 자동화 시장도 2026년까지 연간 18%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급증한 물류 수요를 제때 처리하기 위해 인력과 벨트컨베이어 등의 기존 설비를 자동화 설비로 대체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류 자동화 시장은 주문품의 수집에서 배송까지 모든 물류 공정을 자동화하는 설비와 솔루션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류용 로봇이다.
물류용 로봇은 물류 창고에서 수행되는 각종 작업을 하는 다양한 로봇들을 일컫는다. 물류용 로봇에는 상품을 차량에 싣거나 내리는 상하차 작업이나 분류·검수 작업을 하는 고정형 또는 이동형 피킹 로봇(picking robot), 상품을 운반해 저장용 선반에 넣거나 반출하는 작업을 하는 운반 로봇, 상품을 포장하는 패킹 로봇(packing robot), 각 상품을 목적지로 배송하는 자율주행차나 드론, 고객의 집 앞에 상품을 운반하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로봇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물류용 로봇 중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는 것은 이동 기능을 갖추고 상품을 이송하는 운반 로봇이다. 대부분의 운반 로봇은 무인 육상 이동체(UGV)의 하나인 무인 운반차(AGV : Automated Guided Vehicle) 또는 자율주행 로봇(AMR : Autonomous Mobile Robot)을 기반으로 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물류 자동화 분야에서 AGV와 AMR의 비율은 2026년 약 1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AGV와 AMR이 각종 설비와 솔루션으로 구성되는 물류 자동화 시장 내에서 가장 큰 분야가 된다는 것이다.
AGV와 AMR은 둘 다 운반이라는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면이 있다. 두 로봇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스로 주행할 수 있는 능력의 수준이다. 자율주행의 수준 차이는 AGV와 AMR의 확장 방향을 상이하게 만든다.
AGV는 바닥이나 천장 등에 부착된 자기 테이프, QR코드 또는 기차 선로와 유사한 레일 등으로 유도되는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이동 경로가 미리 정해져 있어 경로를 신속하게 변경하기 힘든 한계를 지닌 반면 전용 경로를 설정할 수 있어 고속으로 이동하기에 유리한 면도 있다. 그래서 AGV는 사용자가 로봇의 이동에 필요한 자기 테이프나 레일 등의 인프라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는 대규모 물류 창고를 보유한 기업들이 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 물류 창고라면 취급 상품의 종류도 많고 물동량도 많기 마련이므로 많은 상품을 신속하게 옮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AGV는 많은 물품을 신속하게 옮기는 작업에 적합하도록 가반하중(可搬荷重 : 로봇이 물건을 들어올려 운반·이동시킬 수 있는 무게)이 높은 동시에 고속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AMR은 AGV와 달리 사전에 로봇 전용의 이동 경로를 설정하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다. 탑재된 카메라·라이다·적외선 센서 등으로 수집한 각종 정보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탐지하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MR은 길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AGV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각 물류 공정마다 설치된 다수의 로봇들과 장비들 간의 긴밀한 협동 작업이나 대규모 물동량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빠른 이동 속도와 가반하중 등에서 AGV보다 열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AMR은 정해진 공간 안에서 많은 물동량을 취급해야 하는 대형 물류 업체보다 로봇의 작업 동선이 자주 바뀔 수 있는 작업장이나 AGV 작동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를 갖추기 힘든 소규모 물류 창고나 호텔·병원 등에 더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활동 공간이 너무 넓어 자기 테이프 등 각종 인프라를 충분히 설치하기 힘든 공항이나 백화점 등에도 AMR이 더 적합하다고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최근 식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음식 서빙 로봇은 대부분 AMR이기도 하다.
다변화 추진하는 AGV·AMR 기업들
많은 AGV·AMR 개발 기업들은 로봇의 이동 속도를 높이거나 가반하중을 높이는 등 기본 기능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피킹·검사 등 운반 외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관절 매니퓰레이터를 장착한 AGV·AMR의 개발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기업들은 단순히 로봇의 성능 강화나 확장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엑소텍은 3차원 AGV인 스카이포드 시스템을 통해 로봇의 작업 공간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스카이포드는 물류 창고 내 상품 저장용 선반의 상·하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면서 상품을 옮길 수 있는 AGV다. 그래서 단층 공간에서만 이동할 수 있는 기존 AGV에 비해 물류 창고의 공간 활용도를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일부 선도 기업들은 AGV·AMR의 생산성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적게는 다수의 로봇을 관리하는 차량 관제 시스템(FMS : Fleet Management System) 등 로봇 관제 시스템을 강화하기도 하고 크게는 통합 물류 솔루션을 내재화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선도 기업 중 하나인 Geek+는 다수의 AGV들에 작업 내역을 할당하고 동선을 배분하는 등으로 로봇을 관리하는 관제 솔루션 Geek+ 로봇 관리 서비스(RMS : Robot Management Service)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AGV·AMR을 내재화한 글로벌 유통·물류 기업들은 물류 창고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창고 관리 시스템(WMS : Warehouse Management System) 역량을 차별화된 강점으로 내세운다. 키바 인수를 통해 AGV의 유망성을 시장에 널리 알린 아마존은 자체 물류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GV까지 전개하고 있다. AGV를 잘 활용해 온라인 유통의 신흥 강자로 자리 잡은 오카도는 주력 사업인 온라인 신선 식품 유통을 성장시키는 데 발판이 된 자체 물류 자동화 솔루션 OSP(Ocado Smart Platform)를 해외 사업의 확장 기반으로 삼고 있다. OSP는 사람 대신 주문품의 피킹 작업을 수행하는 수천 대의 AGV에서부터 주문품을 처리하는 풀필먼트센터와 최종 배송 작업을 수행하는 택배 시스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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