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장기화에도 재무여력 탄탄…2015년부터 ‘사실상 최고 신용 등급’ AA+ 유지

[마켓 인사이트]
삼성물산 리조트 사업부문이 운영 중인 경기 용인 에버랜드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 리조트 사업부문이 운영 중인 경기 용인 에버랜드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도 오히려 현금성 자산을 쌓으며 재무 구조를 다잡고 있다. 주춤해진 건설 부문의 실적을 상사·패션·바이오 등 비건설 부문이 보완하면서 외형과 이익 창출 능력을 동시에 키운 덕분이다.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적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신용도 역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순차입금 마이너스 전환

삼성물산의 유동성 여력은 빠르게 늘고 있다. 비건설 부문의 선전으로 영업 현금 흐름이 확대되면서 순차입금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말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8274억원이다. 순차입금은 총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것이다. 순차입금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빌린 돈보다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이 더 많다는 뜻이다. 재무 여력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재무 여력이 든든하면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신사업이나 신규 투자를 선제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재무 여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다. 인상기에 접어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내외 금융 환경이 불확실해진 점 역시 재무 여력 확보에 집중하는 이유다.

삼성물산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4조4602억원이다. 2019~2020년 3조원대 중·후반이었지만 지난해 4조원대 중반으로 올라섰다. 2016년 순차입금은 3조3710억원이었지만 2018년 5000억원 아래로 줄였다. 2020년 587억원으로 줄어든 후 지난해 들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비건설 부문의 이익 증가로 영업 현금 흐름이 2조5000억원까지 확대된 영향이 컸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액 기준 1위를 기록했다. 원전과 초고층 빌딩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으로 주택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높다.

상사 부문에선 43개국에 70개의 해외 거점을 두고 있다. 패션 부문은 갤럭시와 빈폴 브랜드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리조트 부문은 한국 최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를 운영 중이다. 바이오 부문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동물 세포 생산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수익 구조를 보면 건설 부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단, 건설 경기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높아 상사·패션·리조트·FC 등 비건설 부문이 보완해 주는 구조다. 건설 부문의 채산성이 악화된 2015~2016년 상사와 FC 부문의 이익이 수익성 저하 폭을 완화했다.

2019년 하반기부터 바이오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높게 나타났다. 바이오 부문이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1.1%에 달했다. 2020년 28.9% 대비 1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비건설 부문도 외형 성장을 이끌었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34조4552억원이다. 전년 대비 14% 늘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별적 수주로 건설 부문의 매출은 줄었지만 상사 부문의 매출이 글로벌 원자재 시황 호조와 영업 경쟁력 강화로 31% 증가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매출이 줄었던 패션과 리조트 부문 역시 소비 심리 회복으로 실적이 증가했다. FC 부문은 식자재 유통의 성장으로 안정적 매출을 기록했다.
비건설 부문의 선전으로 재무 구조 다잡는 삼성물산
견고한 ‘AA+’ 신용등급

삼성물산의 장기 신용 등급은 현재 ‘AA+’다. 2015년 이후 단 한 번의 조정 없이 ‘AA+’ 신용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AA+’는 최고 신용 등급인 ‘AAA’의 바로 아래다. 공기업과 은행 등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최고 신용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등의 지분이 견고한 신용도를 뒷받침해 주는 요인이다. 지난해 기준 약 4조5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 28조3000억원의 삼성 계열사 상장 주식과 2116억원의 비상장 주식도 갖고 있다.

관계 기업과 공동 기업 투자 주식의 장부가액도 3조원 정도다. 이자 수익과 보유 지분에서 유입되는 배당금 수익도 지급 이자 규모를 크게 웃돌고 있다. 영업 현금 흐름이 원활한 가운데 지난해 한화종합화학의 잔여 지분 매각으로 8210억원을 얻기도 했다.

기업 분석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의 올해 이후 평균 매출이 지난해 수준인 34조원을 소폭 웃돌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 마진은 건설 부문의 수익성 회복과 바이오 부문의 우수한 수익성을 고려할 때 3%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9년과 2020년 2.8%였던 EBIT 마진은 지난해 3.5%로 오른 상태다.

김웅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건설 관련 공정률 증가와 재배당 정책에 따른 배당 지급 규모 증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취득으로 예전보다 자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하지만 우수한 상각 전 영업이익( EBITDA) 창출 능력과 한화종합화학 지분 매각 대금의 단계적 유입으로 자금 수요에 원활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의 금융비용 대비 EBITDA는 EBIT 적자의 영향으로 2015~2016년 상반기까지 1배 미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각 사업 부문에서 영업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차입금을 감축하면서 2018년 7.4배, 2019년 9.0배로 개선했다. 2020년 11.3배로 확대된 후 지난해 15.1배를 기록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 보통주 기준으로 계열 내 최대 주력사인 삼성전자 지분 5.0%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보험 지분 19.3%로 삼성전자 지분 8.7%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지는 않지만 그룹의 지배 구조상 중요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내 삼성물산의 지배 구조적 중요성은 향후 신용도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 체계가 유지되면서 지분 구조상의 핵심적 역할 수행은 계속될 것”이라며 “보험업법 개정 추진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정리의 필요성이 증대될 수 있고 그룹 지배 구조의 효율화 과정에서 추가적인 지분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