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레버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의 교훈

[스페셜 리포트-새로운 시대 새로운 전략,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성장은 기업의 숙명이다. 성장을 멈추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에 맞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이유다. 현재 전 세계 기업들이 주목하는 키워드는 디지털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공간을 열어 줄 이 두 개의 키워드가 만나는 지점에 ‘미래의 시장’이 싹트고 있다. 선진 기업들은 이미 시동을 걸었다. 한국 기업들은 서서히 디지털 전환이 숙명이고 ESG가 경영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투하고 있는 한국 대표 기업들의 신성장 코드, 디지털과 ESG의 융합을 뜻하는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팜유와 관련한 환경단체의 압박에 대응해 디지털을 활용한 AI 지리분석 시스템으로 친환경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사진=유니레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팜유와 관련한 환경단체의 압박에 대응해 디지털을 활용한 AI 지리분석 시스템으로 친환경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사진=유니레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몇 해 전 그린피스 등 환경 단체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이 단체들은 유니레버가 팜유를 공급받는 과정을 문제 삼았다. 유니레버에 팜유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이곳에서 기름 야자를 재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림을 파괴하지 않고 팜유를 생산하는 업체에서만 팜유를 구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니레버는 사업적 위기와 평판의 위기 두 가지 중첩된 문제에 부닥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니레버는 2020년 ‘디지털 전환’을 솔루션으로 들고나왔다. 그해 8월 인공위성과 위성항법장치(GPS) 기술을 활용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했다. AI를 통한 지리 분석 시스템을 통해 인도네시아 팜유 생산지의 산림 파괴 여부를 확인하고 공급망의 실시간 물류량을 모니터링했다.

유니레버의 이런 시도는 디지털 전환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결합한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디지털과 ESG를 결합해 미래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은 최근 1~2년 사이 유럽에서 대두된 개념이지만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전문 업체인 엑센츄어는 2021년 ‘경쟁력을 키우는 트윈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과 ESG 전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트윈 트랜스포머’들은 미래 글로벌 시장의 리더로 자리 잡을 확률이 2.5배 높다고 밝혔다.
디지털과 ESG가 만나는 곳에 새로운 기회가 싹튼다
팬데믹과 함께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한국 기업들 역시 디지털 전환에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은행·보험과 같은 금융 산업에서부터 유통·정보기술(IT)까지 ‘디지털 혁신’의 열정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고 우리의 일상이 편해질수록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어마어마한 디지털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하는 전력 에너지다.

대표적으로 구글·아마존·네이버와 같은 테크 기업들은 24시간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여기에 더해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의 열을 식히기 위한 냉방 설비도 추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전력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이 어마어마한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 테크 기업이 아무리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신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ESG 이슈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전환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것이다. ESG와 디지털 전환을 ‘따로’가 아닌 ‘같이’ 추진하는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들의 미래 전략에서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희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이미 한국 기업들의 상당수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ESG와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실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 운영 전반에 이 두 가지 과제를 연계해 반영하는 사례는 아직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 양 연구원의 지적이다.

디지털과 ESG 전환을 연계할 때 얻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ESG 전환의 핵심은 결국 ‘경영 방식’의 개선이다. 양 연구원은 “ESG와 디지털을 각각 추진하기 위해 전사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작업(BPR)을 중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은 이와 같은 중복 비용을 줄이고 디지털과 ESG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율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와 원료를 최적화해 환경을 보전하거나 내부 통제를 통해 산업 재해를 방지하는 것은 환경(E)뿐만 아니라 사회(S) 요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쿠팡과 같은 대규모 유통 기업의 물류센터에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화재 사고를 예방한다면 이는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셈이다. 또 내부 회계 관리 시스템을 디지털화해 지배구조(G) 요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좋은 사례다.

이처럼 디지털과 ESG 융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제 유럽연합(EU)은 지난해 3월 ‘친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28개국 명의의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양 연구원은 “EU의 사례처럼 기업의 ESG 경영 활동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그 과정에서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축적된다”며 “데이터가 쌓일수록 ESG 발전을 위한 피드백으로 활용되는 등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 경쟁력 높이는 ‘트윈 전략’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구글은 ESG와 관련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구글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 구글은 ESG와 관련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구글
구글은 디지털을 활용한 ESG 트랜스포메이션 시장을 새롭게 발굴하는 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기업 중 하나다.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의 딥마인드 범용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클린 에너지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글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잠재적인 당뇨병 환자와 암 환자를 사전에 파악해 진단하고 치료하는 헬스케어 사업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지속 가능성),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직접 창출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스페인의 다국적 금융 그룹인 빌바오 비스카야 아르헨타리아 은행(BBVA)은 2016년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뱅킹 시스템을 개발해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했다. 멕시코와 페루 등 중남미 지역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BBVA는 중남미 지역에서 은행 시스템을 사용하는 인구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페루는 2016년 기준 은행 시스템을 사용 중인 인구가 33%에 불과했다. 그만큼 은행의 장벽이 높고 수수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BBVA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루은행협회(ASBANC)와 결제업인 페루디지털결제(PDP : Peruvian Digital Payment)와 협력해 피처폰에서 입출금이 가능한 빌테라모빌디지털(BIM : Billetera Movil Digital) 서비스를 도입했다.

효과는 상당했다. BIM 도입 이후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금융 서비스를 활용하게 됐고 1200만 건의 거래가 디지털 채널을 통해 이뤄지는 등 활용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페루 내 BBVA의 고객 수는 2017년 90만 명에서 2020년 기준 190만 명 정도로 2배 이상 늘었다. ESG와 디지털을 결합함으로써 ‘중남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엑센츄어는 지난해 디지털과 ESG 결합에 성공한 기업들이 ‘미래 시장의 리더’로 자리 잡을 확률이 2.5배 높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0년 11월 온라인을 통해 13개 국가 19개 산업 분야의 글로벌 기업 임원 4051명을 대상으로 ‘미래 시장의 리더가 될 잠재력’에 대한 설문을 받은 결과다. ‘디지털 전환 선구자’들과 ‘ESG 전환 선구자’들은 각각 일반 기업과 비교해 리더가 될 가능성이 1.5배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디지털과 ESG를 결합한 트윈 트랜스포머들은 그 가능성이 2.5배 정도 높다고 응답했다. 글로벌 기업을 이끌고 있는 핵심 임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적어도 ‘트윈 트랜스포머들이 미래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엑센츄어는 트윈 트랜스포머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회복력’과 ‘유연성’을 꼽는다. 팬데믹은 글로벌 시장의 대부분 기업들에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위기의 시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이 더 높은 회복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해석이다. 시장의 변화에 맞춰 ESG와 디지털 전환에 각각 대응하는 것을 넘어 유연한 결합을 이뤄 낸 기업들이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 기업들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또 있다. 유럽은 ESG 경영에서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역이다. 그만큼 유럽은 대부분의 산업에서 ESG와 디지털의 결합이 진행 중인 곳이 많다. 이와 비교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금융·제약·부품 산업 등 특정 몇 개의 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업이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에서 뒤처진 것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박스> How to - 엑센츄어가 제시하는 5가지 이행 전략

디지털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결합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엑센츄어 보고서는 ‘명확하고 목표가 분명한 실행 전략이 트윈 트랜스포머로의 전환의 핵심’이라고 짚고 있다. 이와 함께 트윈 트랜스포머의 진행 단계에 따라 구체적으로 5가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목표를 수립하는 단계다. 서로 다른 산업 혹은 같은 산업 내의 다양한 기업들과 교류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생태계의 확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2016년 ‘신에너지 기회 네트워크(NEO : New Energy Opportunities Network)를 설립하고 지원 중인 에너지 업체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이에 해당한다. 전 세계 150여 개의 기업들과 지속 가능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솔루션을 지원하는 등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들까지 탄소 배출 감축과 같은 ESG 경영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는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세계적으로 탄탄한 밸류 체인을 구축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목표를 설정했다면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디지털과 ESG 전환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디지털과 ESG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열린 사고다. 엑센츄어 보고서는 연구·개발(R&D) 단계에서부터 담당 부서를 별도로 배치하는 것보다 통합 부서를 고려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소개한다. 덴마크의 생명공학 회사인 크리스티안한센의 ‘비즈니스센터’는 지속 가능한 농업과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건강한 유제품의 개발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업체는 2020년 기준 전체 수익의 82%를 이와 관련한 R&D에 투자했다. 대표적으로 이 기업은 2019년 설탕을 줄인 요구르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 글로벌 낙농 협회에서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의 영향력을 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디지털과 ESG 전환을 실행하는 이들은 결국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전환은 요원한 일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재무적인 요소와 비재무적인 요소를 함께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기업 경영진의 ‘균형 잡힌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구찌·발렌시아가 등의 명품 브랜드를 운영 중인 프랑스의 다국적 럭셔리 패션 그룹 케어링은 환경 손익(EP&L) 회계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급망의 각 단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던 환경적 영향’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환산해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파트너들과의 제휴 관계를 통해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효과를 한 기업 내에만 국한하기보다 다음 단계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공급망과 관련한 ESG 규제가 확대되는 분위기에서 더 많은 파트너들과의 협력 확대는 공급망을 포함한 제품 생산과 서비스 과정의 전반에서 환경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추적할 수 있다. 글로벌 특송 업체인 DHL은 인터넷을 통한 우편 발송 추적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고객들은 ‘탄소 배출 대시보드’를 통해 자신들의 우편물이 운송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등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개인 고객들뿐만 아니라 DHL을 이용하는 기업들도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제품이 운송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와 같은 트윈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적합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나 정부 정책에 의한 전환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트윈 트랜스포메이션이 기업들의 경영 전반에 체화될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뿌리 내리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근본적인 전략인 셈이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옥스포드 메디컬 시뮬레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의료 실무진에게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가상 훈련을 통해 환자가 발생했을 때의 디지털 의료 기기 활용법과 대처법 등을 실제처럼 훈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은퇴한 의사를 비롯해 다른 의료 기관들에 디지털 의료 기기를 사용하기 위한 무료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ESG 경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