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넥슨 키웠지만···사회와 제대로 된 소통 못하고 무대 뒤로

[스페셜 리포트]
산업 판도 바꾼 86학번 황금세대의 씁쓸한 퇴장
서울대 법대는 1980년대 초까지 하나의 상징이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 보면 시골이나 도시에서나 “서울 법대 가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의 목표였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는 있지만 1984년까지 학력고사 점수를 기준으로 하면 커트라인은 서울대 법대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1985년을 기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대와 이과대 일부 과의 커트라인이 법대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1986년 그 차이는 뚜렷해졌다. 당시 전자공학과를 포함한 서울대 공대의 입학 커트라인은 311점으로 법학과(304점)와 의예과(308)보다 높았다.

카카오의 김범수, 네이버의 이해진, 다음의 이재웅, 고인이 된 넥슨의 김정주 등은 스타트업을 창업한 후 한국 인터넷과 게임 산업의 역사를 쓴 ‘벤처 1세대’ 전설들이다.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86학번이다. 황금 세대로 불리는 86학번은 전설을 쓰고 이제 무대에서 하나둘 퇴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성장과 퇴장이 한국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86학번 ‘황금 세대’의 탄생, 전설의 시작
86학번 황금 세대의 대표 주자들은 대학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인연은 한국 정보기술(IT)업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고 벤처 붐이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창업에 나선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동료’이자 때로는 그 누구보다 치열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86학번의 대표 주자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서울공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SDS에 입사했다. 거기에서 검색 엔진 관련 사내벤처팀을 이끌다가 1999년 분사했다. 한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의 시작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이해진 창업자보다 한 살 위다. 재수해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입학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공부를 마친 뒤 1992년 삼성SDS에서 입사 동기로 이해진 창업자와 만났다. 이해진 창업자보다 1년 앞선 1998년 한게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고스톱과 포커 같은 쉬운 게임을 온라인화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2000년 한게임은 네이버와 합병한다. 법인명은 NHN. 두 사람은 공동 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김범수 창업자는 2007년 네이버를 떠나 새로운 창업의 길에 나섰다. 그리고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성공시키며 단숨에 네이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했다.

한국 최초 그래픽 기반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의 주역인 넥슨의 김정주 창업자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서 공부할 때 이해진 창업자와 같은 기숙사 방을 사용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인연으로 네이버 창업 당시 투자도 했다. 당시 카이스트에서 같이 공부하던 이들 가운데 넥슨의 공동 창업자로 ‘메이플 스토리’ 개발에 참여한 전산학과 86학번 김상범 전 이사와 한국 최초의 성인 대상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인 ‘리니지’를 개발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출신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중반까지 네이버와 포털 1위 경쟁을 벌였던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이재웅 창업자는 이해진 창업자와 인연이 깊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동네 친구로 함께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키워 온 사이다.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 후 무료 메일 서비스인 한메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후발 주자인 네이버에 밀려 고전하다가 2014년 카카오와 합병했다.
왜 86학번일까, 시대와 인재의 만남
그렇다면 왜 유독 ‘86학번’일까.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미래 산업인 컴퓨터·전자공학·산업공학에 몰렸다는 점 외에도 이들은 시대를 제대로 만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들이 군대에 다녀와 복학하거나 대학교 3~4학년 때인 198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개인용 컴퓨터를 접하기 힘들던 시절이었지만 카이스트를 비롯한 대학들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PC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었던 ‘최초의 세대’였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쥔 이들은 마치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한 것처럼 인터넷에 몰두했다. 인터넷을 처음 경험한 세대였기 때문에 이들의 시도는 모두 최초가 됐고 이후 사업을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1990년 초반 한국의 기업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산업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로 상징되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한 시기와도 맞물린다. 86학번들의 최초 직장이 삼성SDS가 많은 이유다. 이들은 대기업에 근무하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맞물리며 새로운 세상은 이들에게 기업가의 길을 열어 줬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는 인터넷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1가정 1PC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에 대한 호기심이 이들의 성장에 ‘씨앗’이 됐다면 그 씨앗이 발아할 수 있도록 물을 뿌려 준 것은 1999~2000년대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이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벤처 붐이 일기 시작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DJ 정부는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대기업 직원들과 대학원생은 물론 대학 교수들까지 벤처 창업에 뛰어들었다. IT 기업이 급증했다. 86학번 황금 세대의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벤처 1세대’의 성공을 운으로만 말할 수는 없다. 벤처 붐 당시 수많은 IT 기업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네이버·카카오·넥슨은 이와 같은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살아남아 나머지 영토를 다 차지하며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4월 5일 기준 네이버의 시가 총액은 56조원1868억원, 카카오는 47조9582억원으로 각각 한국의 시가 총액 순위 5위와 10위권 수준이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넥슨의 시가 총액은 26조4578억원에 달한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탁월한 감각과 혁신에 대한 열의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 정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성공이다.
산업 판도 바꾼 86학번 황금세대의 씁쓸한 퇴장
‘혁신 기업가’들에게 찾아온 시련
2000년대와 2010년대 이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10여 년 전 “한국은 구글의 유일한 경쟁자를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네이버가 있어 구글이 한국에서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다.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가 됐고 이를 기반으로 온갖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한 자산 운용사 대표는 “카카오는 뭐든 할 수 있는 회사다. 유일한 리스크라면 전쟁 등의 상황에 국가가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국유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런 기업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의 캐릭터 라이언이다. 곰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사자인 ‘라이언’은 카카오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창업자의 영어 이름 ‘브라이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특유의 귀여움으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내 행사에 라이언 캐릭터 상품은 인기 품목 1위였다. 하지만 요즘 그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국민 기업 카카오의 이미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전 국민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으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논란이 불거지며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카카오 측은 카카오페이 대표 등 경영진을 교체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카카오에 대한 반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김범수 창업자 또한 8000억원대 탈세 의혹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위기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카카오의 팬덤을 형성한 젊은층에서 이미 파열음이 나고 있었다. 카카오택시가 그 예다. 젊은이들은 초기 카카오택시에 열광했지만 이후 다양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택시 운전사들조차 카카오를 비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가 미용실까지 진출한다는 얘기는 사회적 반감을 키웠다. 카카오 경영진은 이런 위기의 징후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위기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카카오뿐만이 아니다. 86학번 ‘황금 세대’가 이끄는 한국의 대표적인 IT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새 잇달아 논란에 휘말렸다. 네이버는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불거지며 홍역을 치렀다. 네이버 직원들의 절반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할 만큼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성공한 벤처가 시간이 흘러 관료화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갖는 대기업이 됐다”는 평가가 내외에서 나왔다.

일각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게임·음악·쇼핑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골목 상권 침해 논란 또한 거세지는 분위기다.

네이버가 먼저 어려움을 겪었다. 이해진 창업자는 2017년 네이버 의장직을 내려놓고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 직함을 바꿔 달았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김범수 창업자 또한 최근 잇단 논란에 지난 3월 15년 동안 지켜 온 의장직에서 사임했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역할은 유지하며 향후 글로벌 확장에 전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김범수 창업자는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뜻을 잃어 사임했다는 게 카카오 주변의 해석이다.

최근 넥슨은 창업자를 잃었다. 6년 전 정치적인 갈등에 휘말리며 큰 타격을 받았다. 김정주 창업자가 20년지기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비상장 주식 매입을 위한 종잣돈을 대준 것으로 알려지며 비판 받았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이후 김정주 창업자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은둔의 경영자’ 생활을 이어 왔다. 지난 3월 갑작스럽게 별세 소식이 들려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진경준 사건이 그의 삶에 큰 타격이 됐다.

이재웅 창업자 역시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로 기존 택시 업체들과 갈등을 겪으며 순탄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2018년 쏘카 대표로 10년 만에 벤처 경영자로 복귀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고 호소했고 재판 끝에 ‘타다’ 서비스는 무죄로 결론이 났음에도 결국 2020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창업자는 결국 경영 복귀 2년 만에 쏘카 대표에서 사퇴했다.

대표적인 ‘혁신 기업’으로 기존과는 다른 성공 방정식의 모델을 보여줬던 이들 86학번 벤처 1세대들은 어쩌다가 ‘기존 재벌들의 구태를 답습하는 신흥 재벌’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영인으로서 이들의 ‘꿈’과 이들이 만들어 낸 독특한 기업 문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제 이해진 창업자와 김범수 창업자는 ‘재벌 총수’로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직접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해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존 재벌 기업 총수들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86학번을 대표하는 다른 벤처 1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기업인으로서 이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해진 창업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돈만 버는 기업인은 사양하겠다”며 “500년 뒤에도 후손들이 ‘네이버가 있어 다행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혀 왔다. 김정주 창업자는 “넥슨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디즈니로 만들겠다”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이 꿈을 좇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고 그들은 엔지니어식 사고를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왔다.
이해진(왼쪽)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이해진(왼쪽)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연합뉴스
독이 된 ‘벤처기업 마인드’, 쌓이는 오해
더 나은 서비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꿈은 변하지 않는 메시지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와의 갈등은 짚어 볼 몇 가지 측면이 있다. 조직이 성장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해야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만의 소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세상과의 오해가 점점 깊어져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IT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업계 관계자는 “이해진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네이버는 ‘국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일무이한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며 “그만큼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많다”고 말한다. 이는 물론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통해 실제 많은 이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카카오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둘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택시 서비스를 더 이용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삼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가정하자. 네이버는 ‘네이버’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 택시 서비스를 론칭하는 반면 카카오는 이를 따로 떼어내 ‘택시 서비스’를 운영할 자회사를 하나 만드는 식이다.

네이버처럼 모든 서비스를 ‘네이버’라는 하나의 지붕 아래 끌고 가면 성과를 내는 서비스를 이끄는 경영진에게 더 많은 인정과 보상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몇몇의 성과가 좋은 임원들에게 힘이 쏠리고 결국 상위 경영진 몇 명이 의사 결정을 독식하게 된다. 특정 경영진에게 과도한 힘이 몰리는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파악한 김범수 창업자가 ‘100인 최고경영자(CEO)’ 체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계열사마다 성과 등에 편차가 생기기 시작하고 더 높은 성과를 위해 노력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원하게 된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니 이를 ‘먹튀’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업계 관계자는 “IT 기업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스스로가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과 자부심”이라며 “이 때문에 자신들이 만드는 서비스를 이용자들이 좋아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카오와 네이버의 사례에서 보듯이 혁신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와 같은 ‘시선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세상과 불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일 때는 CEO 한 명을 중심으로 한 조직 문화가 통할 수 있다”며 “하지만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커지게 되면 그에 따라 조직 문화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미 ‘벤처기업’의 규모를 넘어섰음에도 여전히 ‘벤처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고 이것이 기업의 위계 구조와 조직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기대 한국의 페이팔 마피아
이들의 퇴장이 안타까운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사회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기대했던 ‘사회적 역할’ 또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벤처 1세대’들에게 실리콘밸리의 ‘페이팔 마피아’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페이팔 마피아는 2003년 전자 상거래 업체인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한 자금으로 실리콘밸리의 벤처업체에 투자하거나 벤치기업을 설립하며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를 형성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던 이들을 지칭한다. 페이팔의 공동 대표였던 피터 틸과 엘론 머스크는 물론 링크트인의 레이드 호프먼, 유튜브를 개발한 엔지니어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 등이 대표적인 페이팔 마피아들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도록 마중물을 붓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마피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서로 밀어 주고 당겨 주면서 창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벤처 1세대’ 전설들 역시 이와 같은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이해진·김범수·이재웅·김정주 창업자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 등 5인이 공동 출자해 벤처 자선 회사인 C프로그램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벤처기업이나 혁신 단체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성공한 벤처 1세대들이 의기 투합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이들 벤처 1세대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지금까지 벤처 투자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결국 7년 만인 지난해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카카오와 네이버 등도 각각 벤처캐피털(VC)을 운영하며 스타트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각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향후 각자 회사들의 미래 사업을 위한 일종의 성장 전략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현재로서는 이들 벤처 1세대 가운데 이재웅 창업자가 2008년 소셜 벤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소풍과 2016년 자본금 200억원을 전액 출자해 임팩트 투자 전문 VC인 옐로독(현 인비저닝파트너스)을 설립하는 등 투자 생태계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