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쇼트 폼 콘텐츠로 시작해 입소문 타고 칸 진출까지

[비즈니스 포커스]
“‘미생’이 판타지면 이 드라마는 다큐다”…날것 그대로의 중소기업 보여준 ‘좋좋소’
중소벤처기업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99%다. 종사자 수로 따지면 전체의 83%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직원 수는 무려 1700만 명을 넘어선다. 대한민국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멋들어지게 슈트를 빼입은 대기업이나 전문직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화 콘텐츠는 드물었다. 몇 년 전 수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던 tvN 드라마 ‘미생’조차 그 배경은 대기업이었다.

유튜브 채널로 시작해 왓챠에서 방영 중인 ‘좋좋소’가 더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미생’이 판타지라면 ‘좋좋소’는 다큐다”라는 왓챠의 시청자 감상평 한 줄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덤덤하면서도 신랄하게 중소기업의 현실을 표현하며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좋소 좋소 좋소기업’의 준말인 ‘좋좋소’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비꼬는 ‘X소’와도 발음이 같다.

최근에는 칸에도 진출했다. ‘2020년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웹 드라마로는 한국에서 처음이다. 저예산 쇼트 폼 드라마에서 출발해 K-콘텐츠의 대표 주자가 된 것이다. 공감의 힘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 이유를 있는 그대로 그저 보여준다.

“과장이라고? 현실 고증 100%”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좋좋소’의 탄생을 얘기하자면 유튜버 이과장과 빠니보틀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여행을 다니며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인기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행을 할 수 없게 됐다.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자신의 실제 경험을 담은 ‘좋좋소’를 기획했고 당시 실제 중소기업의 생활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로 인기를 얻던 이과장과 의기투합했다. 당시 이 과장은 직장 생활의 어려움과 가족들과의 소소한 생활 모습 등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던 대표적인 유튜버였다. 유튜브 콘텐츠를 찍어 올렸던 게 직장에서 발각돼 사표를 내기로 결정하는 모습이나 퇴직 후 받은 퇴직금이 얼마인지까지 가감없이 공개했다. 특히 ‘천하제일 중소까기 대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어려움을 담은 콘텐츠는 많은 공감대를 샀다.

‘좋좋소’의 첫 화가 올라온 유튜브 채널 역시 바로 이 ‘이과장’이었다. 빠니보틀이 극본과 연출을 맡고 이과장은 ‘좋좋소’의 이길 과장(이 과장) 역할을 맡아 직접 출연했다.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빠니보틀과 인연이 있었던 디테일스튜디오의 이태동 대표가 제작을 맡아 합류했다. 각자의 지인들을 통해 배우들을 모아 촬영을 시작했고 2021년 1월 첫 화인 ‘좋소기업 면적 특’이 공개됐다. 10분 정도의 이 짧은 드라마가 100만 뷰를 돌파하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좋좋소’는 빠니보틀과 친분이 있는 여행 유튜버 곽튜브의 실제 중소기업 재직 경험담을 기초로 스토리를 만들었다. 실제 첫 화에는 ‘유명 유튜버 곽튜브 님의 실제 사연을 각색한 내용입니다’라는 소개글이 달려 있다. 주인공은 29세의 조충범, 영문과를 나왔지만 토익 점수 500점인 그는 취업 전쟁에서 밀리고 밀려 ‘정승네트워크’라는 무역회사에 취직한다.

이 회사는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인 ‘삼전’ 출신인 정필돈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꼰대 중의 꼰대인 그는 ‘삼전 출신’이라는 과거의 인맥 덕에 사업을 유지 중이다. 특히 종종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정부 지원금이 필요할 때면 ‘삼전 출신’이라는 경력이 빛을 발하곤 한다. 정 사장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정 이사는 회사를 PC방 출근하듯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회사 결근을 밥먹듯이 하는 인물이다. 정 사장과 함께 7년간 손발을 맞춰 온 회사의 핵심 인물로 일감은 잘 물어오지만 인성은 개차반인 백진상 차장,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이길 과장, 매사 무심하지만 일을 잘하는 이미나 대리, 코딩학원 출신으로 웹 개발자로 합류했지만 유튜브 촬영에 더 관심이 많은 이예영 사원 등이 등장한다. 실제 직장 생활을 하며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쳤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어딘지 익숙한 등장인물들을 더욱 현실감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데는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한다. ‘좋좋소’는 드라마라기보다는 마치 페이크 다큐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실제 중소기업에 재직했던 감독과 배우가 자신들의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만큼 ‘좋좋소’에서 보여주는 중소기업의 현실은 어디에서부터가 진짜이고 연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체계도 없고 열악하기만 한 중소기업의 현실은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중소기업의 부정적인 면만 담은 것은 아니다. 좌충우돌하는 충범 씨를 다독이고 가르쳐 주는 것은 늘 이 과장의 몫이다. 이렇듯 힘든 와중에도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 주는 동료들 간의 끈끈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

칸으로 간 웹드라마, 공감의 힘
'2022년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 돼 레드카펫을 밟은 '좋좋소'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 사진=왓챠
'2022년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 돼 레드카펫을 밟은 '좋좋소'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 사진=왓챠
유튜브 댓글만 보더라도 이 드라마가 얼마나 ‘날것 그대로’인지를 말해 준다. “실제 중소기업 재직 중인데 이 드라마가 과장인 것 같지만 진짜 현실 고증 100%”라거나 “과거 중소기업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STD)를 일으킨다”는 반응이 넘친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내가 이 과장인지, 백 차장인지 돌아보게 된다”는 댓글은 물론 한 중소기업 사장은 “드라마를 보면서 혹시 우리 회사도 저런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되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좋좋소’는 시즌 5까지 제작됐다. 시즌1~3은 유튜브 이과장 채널에 공개돼 있고 시즌 4~5는 동영상 온라인 서비스(OTT) 왓챠에서 투자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로 서비스 중이다. 시즌4부터는 여행 콘텐츠 제작으로 바빠진 빠니보틀 대신 서주완 PD가 연출을 맡았다.

최근에는 ‘2022년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웹 드라마가 칸에 초청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콘텐츠라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최근 이과장의 유튜브 채널에는 감독인 빠니보틀과 이과장을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지난 4월 1일부터 시작된 칸 방문기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좋좋소’가 단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서만 끝나는 건 아니다. ‘좋좋소’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니보틀 감독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의 열악함을 보여주지만 ‘중소기업에 가지 마라’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다”며 “왜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지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공감을 끌어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좋좋소’의 중소기업 직장 생활 공감 모멘트 톱5
사진=왓챠
사진=왓챠
1, 면접장에서 노래 한 곡조, 당일 합격 통보

대기업 면접을 망친 조충범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지금 당장 면접을 볼 수 있느냐는 전화 한 통에 찾아간 회사는 ‘정승네트워크’.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자 직원 한 명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오늘 면접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사무실 한쪽에 굴러다니던 의자에 앉아 면접이 시작되고 사장은 조충범 씨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삼전 출신’인 자신의 과거 자랑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노래 잘하느냐는 사장의 질문에 갑자기 사무실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조충범 씨.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합격’ 통보를 받는다.

2. “근로계약서? 그런 건 믿음으로 가는 거지”

다음날 첫 출근한 조충범 씨를 맞은 이 과장이 말한다. “어, 출근하셨네요.” 그리고 그가 충범 씨에게 알려준 첫 업무는 빗자루로 사무실 쓸기. ‘근로계약서는 언제 쓰느냐’는 충범 씨의 질문에 이 과장을 비롯한 직원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사장의 한마디. “근로계약서? 그런 건 믿음으로 가는 거지.” 사장은 사무실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 이사에게 인터넷을 뒤져 적당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정 이사는 사장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가족 사이로, 자신의 기분에 따라 결근을 밥 먹듯 하는 인물이다. 출근한 날에도 도통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근로계약서 같은 것 써 본 적 없다’고 툴툴대는 정 이사가 충범 씨에게 ‘연봉은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채용 공고에 2500만원으로 나와 있다”는 충범 씨의 대답에 정 이사는 답한다. “인턴 3개월 2300만원 받고 이후엔 사장님이랑 다시 얘기하세요.”

3. 모든 결정은 사장 마음대로, 사내 복지는 컵라면!

중소기업에서 모든 결정은 ‘사장 마음’이다. 승진도 정 사장의 말 한마디에 이뤄지고 심지어 직원들의 휴가조차 정 사장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된다. 조충범 씨 역시 입사 후 얼마 안돼 ‘주임’으로 승진했다. 충범 씨가 ‘조 주임’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이미나 주임 역시 ‘대리’로 승진했다. 친구들과 휴가를 가고 싶은 조 주임은 사장의 눈치를 살피지만 쉽지 않다. 휴가를 요구하는 조 주임에게 돌아온 사장의 답변. “우리 같은 회사에서 한 명 빠지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알잖아. 휴가는 무슨, 주말에 푹 쉬어.” 그러니 복지도 따로 기대하기 힘들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믹스커피와 컵라면이 복지의 전부다. 그마저도 컵라면은 하루 1개로 제한돼 있다.

4. 추노 그리고 재입사

밤새워 일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비아냥과 욕설뿐이다. 서러워진 충범 씨는 사장에게 1만원을 받아 담배 심부름을 가던 길에 그대로 줄행랑치고 만다. 도망간 충범 씨를 쫓아온 이 과장에게 결국 붙잡히고 이 과장이 건넨 한마디. “왜 그러는지 알아요. 도망갈 때 가더라도 돈은 주고 가야지.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드릴테니, 그 돈 꼭 돌려줘요. 네? ” 그렇게 도망에 성공했지만 결국 달리 갈 곳이 없어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사장에게 싹싹 빈 뒤 재입사하게 된다. 이후 시즌 3 마지막에 다시 한 번 퇴사를 선택한 충범 씨는 시즌 4 시작과 함께 정승네트워크에 재재입사한다.

5. 연봉 협상은 비밀리에

직원들의 연봉 협상 요구에 고민에 빠진 정 사장. 직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뒤 한 명씩 연봉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한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직원들에게는 “연봉 협상 결과는 절대로 서로 이야기하지 말라”며 거듭 당부하고 막내인 이예영 사원에게 직원들이 서로 연봉 얘기를 하는지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직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성과를 얘기하며 원하는 연봉을 제시하지만 그보다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 든다. 그래도 이들은 적은 금액이지만 연봉 인상에 성공하긴 했다. 그리고 돌아온 이 과장의 차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가장 열심히 일하는 이 과장에게 사장은 말한다.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뚜렷한 성과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도 다 동결이야. 너도 동결해.”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