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성행위 자체를 추행으로 본 기존 판례 뒤집혀…“혐오·처벌 대상 아냐”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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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군인끼리 사적인 공간에서 서로 합의해 한 성관계를 군 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를 뒤집고 동성 간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추행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군 형법은 군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도 함께 보여준 판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 이후 군대 동성애 처벌에 대한 찬반 논쟁에 더욱 불이 붙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군기 침해 아니면 처벌해선 안 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22년 3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를 받은 A 중위와 B 상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2016년 근무 시간이 아닌 때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하고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2017년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수사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과거 행위들이 수사 대상이 돼 A 중위와 B 상사를 포함한 군인 10여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육군에선 이들이 ‘군인 등에 대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 형법 92조의 6항(추행)을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추행으로 판단하고 처벌할 수 있느냐였다. 처벌 근거인 군 형법 92조는 1962년 군 형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졌다. 미국 전시법에 나오는 ‘소도미(sodomi : 수간을 포함한 비자연적인 성행위)’를 처벌한 국방경비법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법조계 안팎에선 오랫동안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는 판단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도 법원의 위헌 법률 심판 제청과 개인들의 헌법 소원이 이어질 정도로 동성 군인의 성행위를 추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보통군사법원이 진행한 1심은 군 형법대로 A 중위와 B 상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성행위 증거가 있고 현행 군 형법이 ‘영외에서 자발적으로 합의해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점을 반영해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A 중위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 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상사는 징역 3개월의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고등군사법원이 맡은 2심에서도 이 같은 판결이 유지됐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 11명이 무죄 의견(동의 3명 포함)을 내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유죄 의견을 낸 대법관은 2명(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이었다.

재판부는 “동성 군인 사이의 항문 성교나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軍 동성애 처벌’ 찬반 대립 첨예해질 듯

법조계와 군 안팎에선 이번 판결을 두고 “사실상 군내 동성애를 허용한 셈”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8명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무죄 판단에 동의한 안철상·이흥구·김선수 대법관도 “합의로 이뤄진 성적 행위에 대해 ‘군기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현행 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동성 군인의 자발적 성관계라도 군기를 침해했을 때는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장소와 시간, 상하 관계 등을 따졌을 때 군기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가 처벌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 판례가 나오면서 군 동성애 처벌에 대한 찬반 의견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기독교 단체와 성 소수자 단체는 군 형법 92조 6항의 존폐를 두고 오랫동안 상반된 주장을 펼쳐 왔다.

이번 판결 이후에도 대조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인 김영길 목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등 진보 대법관이 법리적 판단보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윤리적 가치관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는 “동성 간 성행위 자체로는 어떠한 처벌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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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헌법재판소는 세 차례 합헌 결정

군 형법 92조의 6항은 오랜 기간 위헌 논란에도 헌법재판소에서 계속 합법으로 인정받았다. 헌재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이 법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위헌 여부를 두고 논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는 2016년이었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합헌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해당 법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들은 당시 “이 조항은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위한 것으로 동성 간에 폐쇄적으로 단체 생활을 하는 군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그 밖의 추행’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평등 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로 군기를 침해하는 것만을 처벌하는 것은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들은 “남성 간의 추행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여성 또는 이성 간 추행도 그 대상으로 하는지 모호하다”며 “이 조항에 해당하는 추행은 ‘군영 안에서 동성 군인 간 이뤄진 음란 행위’로 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헌재는 합헌 결정 과정에서도 군대 동성애에 대한 형사 처분의 위헌성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군 형법 92조 6항이 군대 안에서 동성애에 따른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적 근거로 작용해 왔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군 형법과 달리 일반 형법엔 사적 영역에서 이뤄진 동성애를 처벌하는 내용이 없다. 이런 이유로 군 형법 92조 6항을 둘러싼 위헌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원조차 헌재에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2017년 2월 인천지방법원에 이어 2020년 2월 수원지방법원이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했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당시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차이는 인정돼야 하나,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결코 용인돼선 안 된다”며 위헌 제청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강제에 의하지 않고 상호 간에 은밀하게 행해진 행위가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보호 법익에 어떤 위해를 가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형벌이라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제한하고 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개인들의 헌법 소원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이 법 조항을 둘러싼 위헌성 논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이 동성 군인끼리 합의해 한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헌재가 위헌 결정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