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키 스틱처럼 갑자기 상승한 1분기 기업 실적…CEO들 “지금은 좋지만 하반기가 두렵다”

[글로벌 현장]
4월 2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월 2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의 스콧 커비 최고경영자(CEO)는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출장과 여행 수요가 하키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권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하키 스틱처럼 갑자기 가팔라졌다는 얘기다. 그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발생 후 처음으로 올해 이익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커비 CEO는 “수십년간 항공업계에 종사해 왔는데 지금처럼 여행 수요가 폭발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여행 부문에서 먼저 나타난 미국의 ‘하키 곡선’ [글로벌 현장]

“2년간 못했던 여행, 이번엔 반드시 떠난다”

유나이티드항공이 올해 이익 전환을 자신하고 있는 것은 항공권 예약률이 급증해서만은 아니다. 가격을 계속 올리는 데도 수요가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유와 인건비가 뛰고 있지만 이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출장과 여행에 대한 ‘보상 소비’ 수요가 많다는 방증이다.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도 마찬가지다. 로버트 아이솜 CEO는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다”며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올 2분기 매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회사의 지난 3월 매출은 팬데믹 이전이던 2019년 같은 달 수준을 이미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인력 부족 문제로 3년 전 대비 운항 횟수를 6~8% 줄였는데도 매출이 8% 넘게 뛰고 있다는 게 아메리칸항공의 설명이다.

미 교통안전청(TSA)에 따르면 올해 4월 24일 기준 미국 내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여행자 수는 229만 명으로, 2019년 같은 날(250만 명) 대비 92%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 수치는 팬데믹 직후였던 2020년 같은 날 5%, 작년 63%에 불과했다. 항공 여행객 수가 조만간 2019년 수준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델타항공 역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2분기부터 본격적인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가이던스를 내놓았다. 1분기 운항 매출은 2019년 대비 이미 83% 수준까지 회복했다. 2분기 매출은 3년 전과 비교해 93~97% 정도 될 것이란 기대다.

수익성이 가장 좋은 기업의 출장 수요 회복세는 더 빠르다. 4월 들어 미국~유럽 노선이 국내선보다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항공사들은 방역 규제 해제의 수혜도 얻고 있다. 플로리다 주 연방법원이 여객기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한 행정 지침을 불법으로 판단해서다. 항공사들은 마스크 착용 여부를 승객 자율에 맡기는 지침을 일제히 새로 내놓았다.

경제 재개와 함께 소매 판매도 늘어날 조짐이다. 소비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분야다.

미국의 대표 신용카드 업체 중 하나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스티븐 스쿼리 CEO는 “밀레니얼 세대와 중소기업 등에서 소비가 갑자기 늘고 있다”며 “경제 재개의 효과”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1분기 매출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작년 동기 대비 29% 급증했다.

소비재 업체인 킴벌리-클라크도 비슷하다.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올해 매출 전망을 종전 대비 상향 조정했다. 당초 올해 1~2% 성장할 것이라고 봤지만 이번에 2~4% 성장으로 바꿨다. 킴벌리-클라크의 마이크 슈 CEO는 “비용 증가 요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가격을 계속 올리면서 마진을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강 업체인 뉴코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수요를 다 맞추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뉴코는 “올해 매우 강력한 실적 및 현금 흐름을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제 지표 역시 개선되는 분위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59.7로 집계됐다. 7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서비스업 PMI는 54.7로 3개월 만의 최저였지만 역시 50을 웃돌았다. 이 지수가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을 의미한다.

미 상무부가 발표하는 소매 판매 지표를 놓고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3월 지표는 전달 대비 0.5% 증가했다. 2월(0.3%)보다 증가 폭이 커졌다. 동유럽 전쟁이 터졌는데도 소매 판매가 증가했다는 게 특기할 만하다. 다만 그 배경에 인플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휘발유·식료품·자동차 등 가격이 급등했지만 소비자들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여행 부문에서 먼저 나타난 미국의 ‘하키 곡선’ [글로벌 현장]

월가에서도 기업 실적 전망 낮추는 중

기업 CEO들은 하반기 경기가 지금과 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침체 전조기에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것이란 우려다.

코카콜라의 제임스 퀸시 CEO는 1분기 실적 발표 행사에서 “폭풍 구름이 다가오고 있다”며 “본격적인 불황이 닥치기 전에 가격을 더 올릴 것”이라고 공개했다. 소비 여력 덕분에 저항이 적을 때 선제적인 가격 인상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코카콜라의 1분기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주당순이익(EPS)이 64센트로, 시장 예상(58센트)을 웃돌았다. 다양한 포장재 전략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이겨냈다. 하지만 하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퀸시 CEO의 설명이다.

신용카드 업체인 아멕스의 스쿼리 CEO 역시 “당분간 소비가 더 늘겠지만 연말 침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경제 재개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월풀 역시 서둘러 가격을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회사 측은 “올 초만 해도 연간 순매출이 최대 6% 증가할 것이라고 봤지만 이번에 2~3% 증가로 수정했다”고 전했다.

특히 철강 합성수지 등 원자재 값이 지나치게 많이 뛰는 게 문제다. 월풀은 “올해 비용이 1월 예상보다 6억 달러 늘어난 총 18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회사의 마크 비처 CEO는 “지난 2년간 고통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공급난을 겪었다”며 “올해 내내 원자재와 부품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 업체인 갭은 올드네이비 사업부의 낸시 그린 CEO를 최근 경질했다.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그린 CEO의 경질과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갭은 “(올드네이비 때문에) 올해 전체 실적이 부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도 경기와 기업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려는 분위기다.

투자은행 JP모간의 두브라브코 라코스-부자스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 실적과 투자 심리는 작년 하반기가 정점이었던 것 같다”며 “물가 상승과 함께 기업 마진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하반기 증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파이퍼샌들러의 마이클 캔트로위츠 최고투자전략가는 “미 중앙은행(Fed)이 역대급으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 비슷한 속도로 긴축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가 서서히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주택 시장 둔화→공장 주문 감소→기업 실적 악화→실업률 상승 순으로 불황이 찾아올 것으로 봤다. 기업들의 부정적인 실적 가이던스가 늘고 있는 점도 하반기 먹구름을 예고하는 또 다른 신호다.

니콜라스 콜라스 데이터트렉 창업자는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기업 실적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며 “매우 큰 불확실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Fed가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것이란 점에서 증시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