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헬리콥터·멀티콥터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전용 비행장 확보도 유리

한화시스템은 미국 오버에어와 함께 UAM 개발에 나섰다.[한화시스템]_
한화시스템은 미국 오버에어와 함께 UAM 개발에 나섰다.[한화시스템]_
지하철·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타고 출근할 날이 머지않았다. 하늘을 나는 시내용 교통수단, 이른바 ‘에어 택시’라고 불리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산업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시내 교통용 항공기로는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고 있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엔진이나 날개를 수평·수직으로 회전시키는 독특한 구조의 항공기다.

UAM은 그동안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새로운 도심용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많은 기업들은 UAM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항공 기술들을 접목하고 있다.

UAM의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1970년대부터 꾸준히 개발돼 온 유형은 단거리 이착륙(STOL : Short Take-off/Landing)형이다. 단거리 이착륙형 UAM들은 자동차에 펼치거나 접을 수 있는 가동형 날개를 장착한 자동차와 비행기의 하이브리드형 항공기라고 할 수 있다. 날개 달린 자동차와 유사한 모습의 단거리 이착륙형 UAM은 테라퓨지아의 트랜지션, 에어로모빌의 에어로모빌 4.0 등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수직 이착륙(eVTOL : Electric Vertical Take-off Landing)형 UAM이다. 수직 이착륙형 기체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개인용 드론들처럼 4개, 6개, 8개 등 짝수의 로터들로 양력과 추력을 동시에 만드는 멀티콥터(또는 멀티로터)형 기체다. 멀티콥터형 UAM은 한국 서울의 공공 행사에서 시범 비행하기도 했던 이항(EHang)의 모델 184, 216 등이 있다.

비록 멀티콥터형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아직 낮지만 성능이나 시장성 측면에서 큰 잠재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것은 또 다른 수직 이착륙형인 틸트(Tilted)형 기체다.
틸트의 비밀, 엔진과 날개에 있다

틸트형 기체는 외형상으로나 구조적으로 여타 항공기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헬리콥터·멀티콥터·비행기 등 기존의 항공기들은 날개와 엔진의 방향을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비행기는 날개의 위치가 반드시 동체와 수평을 이루도록 만들어져 있고 엔진의 위치도 추진력이 기체의 뒤쪽을 향하도록 한 상태로 고정돼 있다. 반대로 멀티콥터는 여러 개의 로터 달린 엔진들의 추진 방향이 모두 기체의 아래쪽, 즉 지면을 향한 채로 고정돼 있다. 하지만 틸트형 기체는 주동력원이 되는 엔진이나 엔진을 장착한 날개가 기체와 수평을 이룬 상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임의로 회전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엔진이나 날개가 기체와 수평을 이루도록 회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체의 하부를 향하도록 회전할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UAM 사업을 맡고 있는 슈퍼널의 전기 수직 이착륙항공기(eVTOL)인 ‘S-A1’ 콘셉트 모델이 영국 코번트리에 있는 에어원에 전시돼 있다.[현대차]
현대자동차의 UAM 사업을 맡고 있는 슈퍼널의 전기 수직 이착륙항공기(eVTOL)인 ‘S-A1’ 콘셉트 모델이 영국 코번트리에 있는 에어원에 전시돼 있다.[현대차]
이러한 틸트형 항공기의 독특한 외형은 이착륙 과정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이륙할 때는 엔진 또는 엔진이 부착된 날개가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한 다음 엔진에서 나오는 추진력을 이용해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이륙한다.

또한 일단 이륙하고 나면 엔진이나 날개의 방향을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회전시켜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모두 추력으로 전환해 비행한다. 이때 비행기의 동체를 띄우는 양력은 전통적인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날개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 착륙할 때는 다시 엔진이나 날개의 방향을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회전시킨 다음 엔진의 힘을 이용해 수직으로 착륙한다. 틸트형 기체는 추진력의 방향을 수직·수평으로 전환할 수 있어 헬리콥터처럼 제자리 비행도 할 수 있다.

독특한 설계 덕분에 틸트형 기체는 비행기(고정익기)의 장점과 헬리콥터·멀티콥터(회전익기)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틸트형 기체는 멀티콥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훨씬 먼 거리까지 비행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개발하고 있는 S-A1과 버티칼 에어로스페이스(Vertical Aerospace)가 개발하고 있는 VX4의 최대 속도는 각각 시속 290km, 320km이고 항속 거리도 100km, 160km에 달하는 데 반해 멀티콥터형인 이항(Ehang) 216, 볼로콥터(Volocopter) 2X의 최대 속도는 시속 160km, 100km, 항속 거리는 각각 16km, 27km에 불과하다. 운반할 수 있는 중량(payload) 측면에서도 틸트형 기체가 멀티콥터에 비해 훨씬 우수하다. S-A1과 VX4의 탑승 인원이 5명인 반면 이항 216과 볼로콥터 2X의 탑승 인원은 각각 2명, 1명 수준에 그친다.

전용 비행장 확보 측면에서는 틸트형 기체가 비행기보다 유리하다. 틸트형 기체는 짧은 활주로에서 또는 멀티콥터처럼 제자리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지만 비행기는 훨씬 긴 활주로가 있어야 이착륙할 수 있다. 또한 틸트형 기체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멀티콥터처럼 제자리 비행도 할 수 있다. 물론 틸트형 기체는 우수한 성능 못지않게 단점들도 안고 있는 기술이다. 틸트형 기체는 복잡한 구조로 인해 개발 난도가 높고 정비도 까다로운 편이며 그만큼 가격 측면에서도 비행기나 멀티콥터 등에 비해 비싸다.
틸트윙·틸트로터·틸트제트 등 파생형도 다양틸트형 기체는 엔진과 날개 중 무엇이 회전하느냐에 따라 틸트로터·틸트제트·틸트윙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UAM으로 가장 많이 개발되는 유형은 틸트로터형이다. 틸트로터형은 로터(프로펠러)의 회전으로 추진력을 만드는 엔진만 회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틸트로터형 UAM은 현대자동차의 S-A1, 조비 에이비에이의 모델, 버티컬의 VX4가 있다.

틸트로터형은 미군이 현재 운용 중인 V-22 오스프리의 상용화를 통해 시장의 성능 평가를 거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틸트로터형 기체는 순수 한국 기술로 개발된 바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 시제기 개발에 성공한 틸트로터형 기체 TR-100은 최대 속도 400km, 항속 거리 200km 이상, 최대 중량 1톤급의 기체다.

틸트제트형은 회전하는 엔진이 제트 엔진인 경우를 지칭한다. 릴리움이 개발하고 있는 UAM 모델인 릴리움 제트는 DEVT(Ducted Electric Vectored Thrust)라고 명명된 소형 전동식 덕트팬 엔진들이 병렬식으로 부착된 날개의 일부가 회전하는 틸트형 기체다. 틸트제트형 기체도 틸트로터형과 마찬가지로 UAM에 적용되기 전에 충분한 시장의 검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영국 호커 시들리가 개발해 미군과 영국군이 지금도 운용하고 있는 전투기 ‘해리어’는 동체에 부착된 엔진의 출력 노즐을 회전시키는 틸트형 기체다.

틸트윙은 엔진이 부착된 날개 전체를 회전시키는 틸트형 기체를 말한다. 2019년 개발 프로젝트가 종료된 에어버스의 A3 바하나가 대표적인 틸트윙형이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