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브리핑- AI 기술로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ESG 리뷰]
경북 영양군에 있는 GS풍력발전의 발전시설 모습. 사진=GS 제공
경북 영양군에 있는 GS풍력발전의 발전시설 모습. 사진=GS 제공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 중 한 명인 마크 앤드리슨은 2011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인상적인 칼럼을 기고했다.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는가(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글에서 그는 유통·통신·금융 등 다양한 산업에서 소프트웨어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한 사례를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는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부담이 없어 초기 비용이 낮고 온라인 서비스로 시장이 크게 확장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위험 없이’ 기존 산업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10년간 다양한 산업군이 이 같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가장 뒤처진 분야는 에너지 산업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은 미디어 산업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간단하게 월 구독료를 내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하는 구매 및 이용 경험은 환상적이다. 그에 비해 에너지를 생산·전달·소비하는 방식은 수십 년간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마크 애드리슨이 칼럼을 기고한 후 10년이 지난 현재 소프트웨어는 마침내 에너지 산업에 도전하고 있고 가상 발전소(VPP : Virtual Power Plant)는 그 선봉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전소를 소유하지 않은 발전업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최근 유명세를 치른 ‘RE100(기업의 재생에너지 100% 사용)’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흐름은 이미 대세가 된 지 오래고 한국의 주요 대기업도 앞다퉈 동참을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은 온실가스 감축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화석 연료나 원자력을 활용하는 발전 방식은 소수의 대용량 발전소가 지역적으로 밀집해 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연료전지 같은 발전원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데다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어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정보기술(IT)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만 태양광 발전소가 1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발전소에 모두 ‘안전관리자’가 상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발전소에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부착하고 초고속 통신망으로 자료를 수집해 인공지능(AI)이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저렴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소규모 분산 전원을 IT로 상호 연결하고 관리하는 서비스가 VPP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이고 이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핵심인 영역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른 유럽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10대 용량인 10GW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관리하는 회사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에어비앤비나 우버에 빗대 발전소를 소유하지 않고 발전업을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재생에너지는 날씨나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에너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가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상황도 소프트웨어가 해결할 수 있다. AI 기술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하고 에너지 공급이 모자라는 시점에 맞춰 설비나 가전제품의 전력 소모를 줄이는 서비스는 이미 한국에서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향열 한국남동발전 사장(왼쪽 두 번째)이 가상발전소 기술을 적용한 관제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국남동발전 제공
유향열 한국남동발전 사장(왼쪽 두 번째)이 가상발전소 기술을 적용한 관제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국남동발전 제공
엘론 머스크가 주목한 미래 에너지 사업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가 있다면 바로 테슬라일 것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에너지 사업도 추진하고 있고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이 자동차 사업만큼 커질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테슬라는 호주와 미국에서 에너지 저장 장치(ESS)를 활용한 VPP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인상적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실 전기차 자체가 대용량의 ESS다. 자동차는 주차장에 있을 때는 쓸모가 별로 없지만 전기차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전기차가 매우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데 전력망에 연결된 수십만 대의 전기차로 구성된 VPP는 미래의 에너지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역시 소프트웨어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아직도 많은 규제로 혁신적 시도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VPP와 관련한 다양한 에너지 비즈니스가 가능하지 않거나 많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에너지 분야의 혁신 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중소혁신기업협회가 설립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규제 완화를 통해 다양한 혁신 기회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만큼 정부와 민간이 상호 협력해 에너지 산업에서의 큰 흐름을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82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