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같은 유형물이냐, 디지털 파일 같은 무형물이냐에 따라 결과 달라져

[지식재산권 산책]
자신이 구매한 책, 마음대로 다시 팔아도 될까[김우균의 지식재산권 산책]
A 씨는 서점에서 두꺼운 소설책을 한 권 샀다. 다 읽은 다음 중고 물품 판매 사이트에 올려 반값을 받고 팔았다. 별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법적으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설은 ‘저작물’이므로 저작권이 적용된다. 저작권에는 배포권, 즉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을 공중에게 배포(양도 또는 대여)할 권리’도 포함돼 있다.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공중에게 저작물을 배포하면 배포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면 A 씨의 소설책 재판매 행위도 배포권을 침해하는 행위일까. 답은 ‘아니오’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이 당해 저작 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배포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저작권법 제20조 단서).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다시 팔아도 배포권 침해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를 ‘권리 소진의 원칙’ 또는 ‘최초 판매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저작자는 최초 판매에 의해 이미 자신의 창작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점, 소설책을 구입해 책을 소유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소유권에 따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만들어진 원칙이다.

A 씨의 사례를 보자. 소설책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서점을 통해 A 씨에게 판매됐다. 따라서 A 씨의 재판매 행위는 권리 소진의 원칙에 따라 배포권이 미치지 않게 돼 비로소 적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A 씨가 ‘전자책’을 되팔 때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

‘종이책’은 유형물이고 ‘전자책’은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다. 그런데 배포권은 ‘원본’이나 ‘복제물’과 같은 유형물에만 적용된다는 것이 한국의 판례와 다수의 견해다. 그렇다면 ‘전자책’을 공중에게 재판매할 때 배포권이 미치지 않으므로 적법한 것일까. 그럴 것 같지만 답은 이번에도 ‘아니오’다.

‘전자책’, 즉 디지털 콘텐츠를 되팔기 위해 A 씨는 필연적으로 ‘복제’와 ‘업로드 또는 구매자에 대한 송신’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행위들은 ‘복제권(저작권법 제16조)’과 ‘전송권(저작권법 제 18조, 제2조 제7호, 제10호)’의 규율 대상이다. 그리고 복제권과 전송권에는 ‘권리 소진의 원칙’과 같은 예외가 없다.

따라서 A 씨가 디지털 콘텐츠인 ‘전자책’을 공중에게 재판매하는 행위는 복제권과 전송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사법재판소도 중고 전자책 온라인 마켓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네덜란드 회사가 자신이 구입한 전자책을 위 웹사이트 이용자들에게 재판매한 사례에 관해 이와 같은 행위는 ‘배포’가 아니라 ‘공중 전달(한국 법상 전송)’에 해당하고 권리 소진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소설’이라는 동일한 저작물인데도 그 매체가 종이와 같은 유형물이냐, 디지털 파일과 같은 무형물이냐에 따라 규율이 달라지는 것은 왜일까.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디지털 파일은 원본과 완전히 동일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차이점 때문이다. 종이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되므로 중고책 말고 새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도 계속 생겨난다.

하지만 전자책의 재판매가 허용된다면 사람들은 모두 더 싼값에 ‘중고 전자책’을 구입하려고 할 것이고 누구도 ‘새 전자책’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작자는 전자책을 통해서는 수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전자책 발행을 중단할 것이고 결국 사람들은 편리한 전자책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전자책의 재판매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결국 저작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저작자의 이익을 충분히 보호해야 저작자의 창작 유인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마냥 부당한 일이라고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