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트렌드]
제품 브랜드 450개 보유한 유통 기업 아마존…VR 기기 오큘러스 개발하는 페이스북

서울 중구 명동에 개점한 국내 3번째 애플스토어.[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에 개점한 국내 3번째 애플스토어.[연합뉴스]
10만 부의 책을 팔아야 한다고 할 때 이미 100만 부가 팔린 책을 110만 부 파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새로 출간한 책을 10만 부 파는 것이 쉬울까. 전자가 쉽다. 신뢰성 있는 책 콘텐츠, 충실한 팬, 책 유통망이라는 ‘플랫폼’이 이미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플랫폼이 되기가 어렵지 일단 플랫폼이 되고 나면 다음 일은 술술 풀린다. 이런 장점 때문에 많은 사업들이 그냥 사업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이 되고 싶어 한다. 플랫폼이 되고 싶은가. 성공하려면 3가지를 주목하라. 1. 고객 최접점을 사수하라무조건 고객 최접점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가공되지 않은 고품질의 고객 빅데이터를 바로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빅데이터가 더 수집되면 수집될수록 머신 러닝이 고도화되기 때문이다. 고객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을 더욱 더 잘 알게 된 컴퓨터는 플랫폼을 더욱 스마트하게 해주기 때문에 빅데이터가 중요하다.

플랫폼 기업이 고객의 최접점 위치를 사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두 가지를 먼저 알아보자. 첫째, ‘하드웨어 출시’다. 하드웨어처럼 물성이 있는 오프라인 매체는 온라인으로도 알 수 있는 고객의 기본적인 데이터 외에 살아있는 정보, 감정적인 정보, 앞뒤 맥락이 있는 콘텍스트 정보를 풍부하게 준다.

아마존은 하드웨어 출시 후 평가가 좋지 않으면 빅데이터만 얻고 바로 상품을 시장에서 과감히 철수하기도 했다. 아마존고 등 오프라인 매장을 굳이 운영하는 이유도 빅데이터 입수 때문이다. 수익이 목적이 아니다. 애플은 어떤가. 애플워치를 가지고 헬스케어 영역 데이터를 얻는다. 애플카드는 소비자의 구매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고객 접점을 차지하려는 매개체다. 애플카드로 직접 회사의 수익과 영업 이익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둘째, ‘구독 서비스’다. 플랫폼 기업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도 중요하지만 플랫폼에 가입한 회원도 중요하다. 확실한 회원은 나이·성별·지역·시간·선호 취향에 대한 빅데이터를 플랫폼에 넘겨준다. 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플랫폼은 양질의 고객 취향 저격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구독료를 받은 만큼 더 쾌적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플랫폼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무료일 때는 귀찮은 광고를 넣을 수밖에 없지만 유료일 때는 광고 없이 ‘회원 정보’ 빅데이터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만 쏙쏙 고객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영상을 보면서 동시에 메시지를 전송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영상을 저장해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볼 수 있게 해주지 않는가. 이 서비스를 경험한 고객들은 플랫폼에 더 만족하게 되고 확실한 충성 고객이 된다. 그래서 이런 회원을 착실히 붙잡을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플랫폼 기업에 필수다.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선보인 커피 구독 서비스 고객은 일반 고객보다 6배 더 많이 매장을 방문한다. 충성 고객이 되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플랫폼 체류 시간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구독 모델은 그래서 디지털 플랫폼에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준다. 빅데이터를 가진 회원 수가 확보되면 다음 달 수익, 다음 달 이벤트, 다음 달 주요 아이템, 다음 세일 주기를 기업이 정교하게 예측해 기획할 수 있다. 기업과 고객이 직접 연결된 상태에서 사업이 기획되므로 기업과 고객 사이에 드는 제조·유통·마케팅 시간과 비용 낭비도 없어진다. 고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만큼 고객이 이 플랫폼에 계속 모이게 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구독 모델은 플랫폼이 강력한 힘을 가지게 해준다. 2. 즉시성을 유지하라구글은 안드로이드12에서 머티리얼 유(Material You)라는 기능을 소개했다.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파란 바다로 바꾸면 스마트폰 사용자 환경(UI)도 그에 어울리는 파랑 계열 색상으로 알아서 세팅된다. 폰트·굵기·사이즈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 자기 마음대로 버튼과 메뉴, 아이콘의 모양과 위치, 각진 정도나 둥근 정도를 세팅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색상과 사이즈를 기준으로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디자인도 머티리얼 유가 추천해 준다. UI를 바꾼 즉시 말이다. 이런 커스텀 UI는자신의 취향도 반영하면서 동시에 전문가의 의견도 살짝 얹어주기에 특별하다. 플랫폼에 ‘팬’을 만들어 낸다.

특정 플랫폼에서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경기를 보고 있는 자신의 회원 정보에 있는 성별·나이·지역·상품 구매 취향 정보가 플랫폼에 취합된다. 플랫폼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제품이나 연관 서비스를 경기 화면 하단에 바로 뿌려준다. 운동화 광고라든지, 다음 축구 경기 일정이라든지, 월드컵 관련 행사 이벤트들을 말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플랫폼의 즉시성·신속성에 반응한다. 꼭 구매와 이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관심사가 될 법한 정보,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이 바로 바로 자신의 화면에 나타나면 소비자들은 만족한다.

플랫폼은 항상 최신으로 업데이트된 상태여야 한다. 항상 신속하게 고객의 질문에 반응해야 한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이라면 더 하다. 최신 제품이 즉시 업데이트돼 보여야 한다. 오프라인 매장 전단지나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다. 고객들이 플랫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세계 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 가지는 것이 신속하게 바로 되기 때문이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좋아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하트 표시를 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친구에게 메시지도 보내고 선택했다 취소했다 다시 검색하는 행동 자체를 재미있어 한다. 꼭 구매가 목적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신속하게 댓글이 달리고 반응도 해주고 관련 쿠폰도 보내 주는 플랫폼이 ‘내게 잘 맞는다’, ‘나를 이해한다’고 느낀다.3.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라플랫폼 기업은 반드시 고유한 자체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 마치 넷플릭스가 자체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몰두하는 것처럼 말이다. 콘텐츠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보여주고 유통하는 장치 역할만 하면 진정한 플랫폼이 아니다. 단순 중계만 해주는 꼴이 된다. 사람들은 편하고 재미있는 플랫폼도 좋아하지만 ‘내가 꼭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는 플랫폼’을 좋아한다. 힙한 콘텐츠가 꼭 그곳에만 있다면 아무리 불편한 플랫폼이라도 간다.

애플이 앱스토어에 입점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들에 이윤에 대해 일정한 높은 이율을 애플에 내도록 당당히 요청하는 것도 애플이 플랫폼과 콘텐츠 양쪽을 다 장악해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단순히 콘텐츠를 전송만 하는 채널이 아니고 소프트웨어 콘텐츠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플 고유의 단독 하드웨어 아이폰·아이맥·아이패드·애플워치 등도 있기 때문이다.

고유 콘텐츠는 꼭 소프트웨어 콘텐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글 역시 스마트 스피커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글래스, 스마트 워치 등 구글 안드로이드를 심은 단독 하드웨어를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즈폰을 만들어 애플·구글과 모바일 운영 체제(OS) 판 장악을 위해 열띤 경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여러 사유로 모바일 OS 시장을 포기했는데 나중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이를 가장 후회하는 결정 중 하나라고 밝힌 적이 있을 정도다.

자기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자기만의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자. 애플은 어도비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표면상의 이유는 안전성과 보안 문제였다. 사실은 고객들을 애플 생태계에만 묶어 두고 싶은 전략 때문이었다. 플래시는 기기를 가리지 않고 작동한다. 애플·안드로이드·맥·윈도 가릴 것이 없다. 플래시로 만든 콘텐츠는 모든 기기에서 다 구동돼 아이폰 만의 특수성을 없앤다. 애플은 애플만의 콘텐츠는 애플 기기에서만 보도록 고객들을 락인(lock in)시키기 위해 이런 환경 전략까지 세팅할 정도였다.

게임 산업도 한 번 보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는 모두 게임기 판매에 따른 수익 자체는 크지 않다. 고퀄리티 게임을 위한 하드웨어 품목을 볼 때 오히려 저가 정책에 가깝다. 그래도 이들이 게임기 콘솔 사업을 유지하는 것은 게임 플랫폼 사업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게임이라는 최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이자, ‘덕후’ 산업이자, 언택트(비대면)와 클라우드 최대 수혜자인 게임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고유 콘텐츠를 계속 유지하는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마존이나 쿠팡 역시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제품을 직접 제조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존이 보유한 자체 브랜드는 2020년 기준 450개다. 쿠팡도 자체 브랜드를 12개 보유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를 통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의 종류와 특징을 파악한 후 경쟁력이 좋은 제품을 출시할 수 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업이다.

쿠팡은 한 발 더 나아가 네이버에서 쿠팡 상품이 검색되지 않도록 상품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었다.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대한 견제다. 네이버가 커지는 것을 저지하고 쿠팡 스스로 플랫폼이 돼 직접 고객을 모집하겠다는 의지였다. 쿠팡만의 콘텐츠는 쿠팡에서만 찾을 수 있게 해 다른 플랫폼으로 고객들이 눈을 돌리는 것을 아예 막는 전략이다. 이는 여러 플랫폼에서 시도했었던 방식 중 하나다.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 2는 2020년 4분기에 200만~300만 대가 팔렸다. 이는 아이폰 초기 판매량과 비슷할 정도로 좋은 성적이다. 페이스북은 VR 하드웨어 기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편리한 기능을 재빠르게 선보였다. VR 기기를 연결할 때 다른 중간 기기 없이 무선인터넷만으로 에어링크를 지원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진짜 먹거리는 ‘애프터 마켓’이다. 페이스북은 이 편리한 VR 기기를 매우 싼값에 판매하고 있다. 일단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운 뒤 페이스북의 VR 플랫폼에 다른 기업의 소프트웨어도 입주시킬 목적이다. 페이스북의 VR 소셜 앱인 호라이즌이 베타테스트 중이다. 아바타로 VR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앱으로, 지금까지 나온 페이스북의 기능을 집대성했다. 페이스북만의 단독 콘텐츠 시장을 공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잘나가는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과 고유 콘텐츠 양쪽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첫째, 그래야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고 둘째, 고객을 더 만족시킬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순인 '당신이 잊지못할 강의'저자·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