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제국의 전쟁, 앞당겨진 세계화의 종말
싫어하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규칙을 만들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그 룰을 갈아엎으려는 부류입니다. 다른 하나는 약자가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힘을 앞세워 응징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강자라는 점입니다. 요즘 국제 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선 미국. 세계화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선택한 전략입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란 책을 통해 세계화에 대한 낙관론을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 이 스토리는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장벽을 없애 경제를 세계화하고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산시켜라. 이 조합은 천국을 만들 것이다.” 이는 이데올로기가 돼 전 세계를 집어삼켰습니다. 거부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스토리를 장악한 자가 시대를 장악했습니다. 미국입니다.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상 최초로 적게 먹어 죽는 사람보다 과식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졌고 범죄와 테러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프리드먼은 위험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는 “세계화의 적은 세계화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적중했습니다.

미국이 펼친 세계화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습니다. 1992년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는 덩샤오핑 주석의 발언 후 중국은 ‘국가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가속화합니다. 수십년 힘을 비축했습니다. 중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미국을 넘어설 야심을 드러냅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은 자신이 만든 룰을 파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중국 기업들을 주식 시장에서 몰아내고 '자유무역의 적'인 관세를 동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에서 시작해 조 바이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종말' 논쟁이 발화된 지점입니다.

중국은 제국의 영예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와 아시아 대규모 투자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왕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은 심기를 건드리는 약자들에게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댑니다. 몇 년 전 롯데그룹을 통해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기지를 빼앗기다시피 내놓은 것을 뻔히 알면서 중국 내 롯데의 자산을 빼앗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해 경고를 날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국과 중국, 두 제국의 전쟁은 세계화된 자본주의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반복된 역사가 등장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강력한 세계화의 물결을 막아선 것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역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 분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전쟁은 자원 민족주의를 가속화하기 충분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세계화의 종말과 관련된 논쟁을 다뤘습니다. 한국은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큰 파도가 모든 배를 밀어올린다’는 케네디의 말처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제조와 문화 강국이 된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문화 강국이 된 것은 세계를 하나로 잇는 미국 기업 구글(유튜브)과 넷플릭스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질서가 통째로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IPEF는 상징적입니다. 미국은 세계화를 접고 블록화에 나섰습니다. 중국은 참지 않겠다며 러시아 쪽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다시 제국의 경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구한말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와는 다릅니다. 4강 틈에 끼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방정식은 조금 더 단순해졌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 전쟁에 체제와 이념, 가치 경쟁까지 더해졌습니다. 한국은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까.

정치권을 돌아봅니다. 대통령이 어디서 자느냐의 문제로, 애들의 논문 문제로,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로, 정치적 감각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다수당 대표의 발언이 맞니 틀리니로 생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오래전 한 관료가 충고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 경제는 우리가 걱정할 테니 김 기자는 가계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후 한동안 국가 경제 걱정에서 좀 멀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가계 걱정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요즘은 다시 두 가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