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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터, 비주류로 산다는 것[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따듯한 줄 알고 길을 나서면 싸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파고 듭니다. 날 좋아지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느 순간에 일상 속에 침전된 나를 발견합니다. 무언가 북적거리지만 결과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개인적인 봄에 대한 단상은 그렇습니다. 매년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봄의 질감은 서걱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기만적이기도 한가 봅니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봄이 갖는 이 불협화음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샘추위는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추위를 견딘 꽃의 향과 색은 더 짙어집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봄 같은 혼란이 마무리되면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 있음을 확인합니다. 일상에 침전된 자신을 깨닫는 순간, 또다시 탈출을 향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발 나아갑니다.이런 봄의 질감은 마치 비주류의 결, 그것과 비슷합니다. 주류의 세상은 따듯하고 안정적이지만 비주류의 세상은 서늘하고 불안정합니다. 주류의 세상은 평평하지만 비주류의 세상은 울퉁불퉁합니다. 화사한 승자의 계절인 것 같지만 봄은 저항하고 의심받고 흔들리면서도 판을 뒤집는 비주류의 속성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불안정성은 그렇게 비주류에게 변화의 에너지를 공급합니다.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판을 뒤집은 비주류의 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사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분야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는 아카데미라는 주류 권력이 주도하는 판을 뒤집었습니다. 모네, 르누아르 같은 청년들이지요. 주류가 ‘무엇을 그릴까’에 집중할 때 그들은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중했습니
2026.03.02 0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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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강남 아파트, 신분이 된 욕망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설탕이 귀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각설탕이 나왔을 때는 어머니 몰래 한 통을 통째로 먹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말은 회초리 세례였습니다. 어릴 적 설탕은 작은 욕망의 대상이었던 듯합니다.오랜 시간이 지나 설탕의 역사를 알고 약간은 위안이 됐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설탕은 중요한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영어에 ‘black teeth’란 단어가 있습니다. 16세기에 나온 말입니다. 당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설탕애자였습니다. 모든 음식에 설탕을 뿌려 먹었습니다. 그의 치아는 검게 변했습니다. 그때부터 검은 치아는 부의 상징이 됐습니다. 귀한 설탕을 마음껏 사 먹을 만큼 부유하다는 증거였으니까요.이런 설탕에 대한 욕망이 자본을 만나 ‘플랜테이션’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17, 18세기 유럽 자본은 아메리카에 설탕수수 농장을 지었습니다. 설탕이 백색황금으로 불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욕망은 수요를 만들고 수요는 이익을 창출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의 수익률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비극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예가 되어 사탕수수 농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유럽인들은 설탕과 아프리카인의 목숨을 바꾼 셈이지요.19세기 사탕무의 발견과 증기기관과 압착기술의 발전으로 설탕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1970년대처럼 후진국들은 오랜 기간 설탕에 대한 욕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납니다. 현재 작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작물은 옥수수도 밀도 아닌 사탕수수입니다.그럼에도 설탕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욕망을 꺾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이후 설탕중
2026.02.24 0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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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의 빅 사이클, 새로운 씨를 뿌려야 할 시간[EDITOR's LETTER]
[EDITOR's LETTER]1978년 9월 26일 충남 태안군 안흥시험장. 굉음을 내며 미사일이 발사됐습니다. 3분간의 적막. 그리고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180km 거리의 목표지점(무인도)에 정확히 떨어졌다는. 현장에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눈시울을 붉혔고, 연구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백곰 1호’로 불리는 한국의 첫 탄도미사일 발사 순간은 이렇게 기록됐습니다. 세계 7번째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됐지만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미국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북아 군비 경쟁을 우려한 미국은 한국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첨단 기술 전수’를 명분으로 ‘한·미 미사일 협정’이 체결됩니다.사거리는 180km, 탄두 중량은 500kg으로 제한했습니다. 서울에서 쏘면 딱 평양까지만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사거리 제한은 42년간 이어졌습니다.한국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사거리를 줄이면 탄두 무게를 늘릴 수 있다는 협정 개정 때 조항을 활용했습니다. 탄두 무게를 엄청나게 키운 비정상적(?) 미사일을 개발했습니다.탄두가 무거우면 파괴력이 커집니다. 무게를 버티며 발사하는 기술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 ‘현무-5’로 불리는 탄도미사일입니다. 재래식무기 중 전술핵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한국의 방위산업은 이렇게 견제를 뚫고, 변형과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했습니다.방산뿐 아닙니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조선, 원전, 자동차 그리고 뷰티 산업도 다른 나라의 것을 가져다 혁신의 힘을 보태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K팝이 이끄는 K컬처에도 조합, 변형, 혁신이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등장합니다.그런 한국의 주요 산업이 2026년 현재 동시에 빅 사
2026.02.09 06: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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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은값 폭등과 폭락은 무얼 말하는가[EDITOR's LETTER]
[EDITOR's LETTER]‘가난한 자들의 금, 악마의 금속, 민중의 돈.’은을 부르는 별칭입니다. 금과 비교해 소외됐던 은의 역사가 담긴 단어들입니다. 은에 대한 기억도 그렇습니다. 돈 없던 대학 시절 금반지를 못 사는 연인들은 은반지로 커플링을 맞췄습니다. 집안 어딘가에 있는 검게 변색된 어머니의 은수저도 생각납니다.하지만 은은 금본위제 이전까지만 해도 대단한 위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세까지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의 공식 화폐는 은화였습니다. 16세기 스페인이 남미에서 대규모 은광을 발견한 후 8리알 은화는 세계의 공식 화폐가 됐습니다. 아편전쟁도 은화로 인해 발발했습니다. 영국이 청나라로 유출되는 은을 ‘아편 밀수’로 다시 회수하려다 발생한 전쟁입니다.19세기 들어 은은 화폐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은의 추락을 말할 때 단골로 소환되는 동화가 ‘오즈의 마법사’입니다. 한 소녀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타지로 날아갔다가 힘든 여정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스토리. 이 동화에는 은의 비극이 녹아 있습니다. 금융자본의 대리인이었던 미국 정부는 1873년 화폐주조법을 만들어 금본위제를 채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공급도 충분한 은을 화폐의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 이를 통해 미국 금융자본은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1873년의 범죄’라 불리기도 합니다.동화에서 소녀 도로시는 평범한 미국 시민을, 마녀는 금융자본을 상징합니다. 도로시가 신고 다니는 은 구두는 은본위제, 도로시가 걷는 노란 벽돌길은 금본위제, 도로시와 함께한 허수아비는 농민, 양철 나무꾼은 도시 노동자에 대한 비유입니다. 마
2026.02.05 06: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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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의 시대, 복리의 마법[EDITOR's LETTER]
[EDITOR's LETTER]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하루에 22.6% 폭락했습니다. 블랙먼데이라고 부릅니다. 이날 미국 펜실베이니아 밸리 포지에 있는 자산운용사 뱅가드 사옥에는 갑자기 스위스 국기가 내걸렸습니다. 뱅가드 창업자 존 보글의 지시였습니다. 그는 시장의 혼란에 휩쓸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중립국 스위스 깃발을 게양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시장의 광기에 흔들리지 말고, 고객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시 모든 자산운용사에는 펀드 환매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운용사들은 전화 응대를 포기했습니다. 뱅가드는 달랐습니다. 보글은 임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나서 고객의 전화를 받도록 했습니다. 자신도 한자리에 앉아 전화를 받았습니다. 보글은 평소에도 투자자들에게 “시장의 소음에 휘둘리지 말고 갈 길을 가라(Stay the course)”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합니다. 위기 속에서 뱅가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 신뢰는 뱅가드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뱅가드의 고객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한 장면일 뿐입니다. 앞서 뱅가드는 1976년 최초로 일반 투자자용 인덱스펀드를 판매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상장지수펀드(ETF)는 인덱스펀드를 상장한 것입니다. 보글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려 하지 말고 건초더미를 통째로 사라”고 했습니다. 종목을 고르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시장을 통째로 사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면에는 펀
2026.01.26 07: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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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방의 성행,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어느 겨울밤. 주황색 가로등이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늦은 퇴근길, 집 앞 골목 귀퉁이에 있는 작은 술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가게 안에 손님은 중년의 남성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TV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은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다 눈 오는 창밖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남성에게 왠지 모를 슬픔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그의 사연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 같은 게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외환위기의 잔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며칠 전 산책을 위해 밤늦게 집을 나섰습니다. 한 상가 건물에 또 인형뽑기방이 생겼더군요. 작년부터 눈 돌리면 하나씩 생기는 게 인형뽑기방이란 생각을 하며 가게 앞을 지나쳤습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길옆 인형뽑기방을 쳐다보니 한 젊은이가 검정 롱패딩에 큰 가방을 메고 인형을 뽑고 있었습니다. 겨울밤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듯합니다. 문득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1990년대 말 술집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젊은이가 인형을 잘 뽑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인형뽑기방의 유행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경기 변두리 길거리 한 블록에는 두세 개씩 있는 곳도 있습니다. 불황의 징표입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사업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되자 비용이 적게 드는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입니다. 별도의 인테리어도 필요없습니다.자영업의 몰락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무인 인형뽑기방은 상가의 가치를 떨어뜨
2026.01.19 08: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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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애널리스트는 무엇을 할 것인가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02년 미국에서 ‘밀레니엄 챌린지’란 군사 시뮬레이션 게임이 진행됐습니다. 국방부의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블루팀과 레드팀으로 나뉘어 벌인 가상 전쟁이었습니다. 미군을 상징하는 블루팀은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슈퍼컴퓨터 분석시스템과 최첨단 통신망으로 무장했습니다. 가상의 중동 독재국가인 레드팀에는 첨단 장비는 없었지만 베테랑 지휘관들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등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밴 라이퍼 장군이 팀을 이끌었습니다. 누구나 블루팀의 승리를 점쳤습니다.실전 경험이 많은 라이퍼 장군은 변칙을 동원했습니다. 통신망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전기를 끄고, 이슬람 사원의 기도 종소리를 신호로 사용했습니다. 현장 지휘관들에게 “당신들의 직관을 믿고 즉각 판단하라”고 하고 전권을 줬습니다. 지휘관들은 정규전을 피하고, 비행기와 보트를 이용한 자폭 테러 등 변칙을 활용했습니다. 결과는 레드팀의 승리였습니다. “베테랑의 직관이 시스템과 데이터를 이겼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우리는 AI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한한 데이터와 추론 능력으로 무장한 AI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를 점쳐야 하는 애널리스트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AI 시대, 애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다 밀레니엄 챌린지를 떠올렸습니다. 인간의 경험과 직관은 여전히 AI에 추월당하지 않은 영역이 아닐까.오래전 한 애널리스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업 탐방을 가면 그림이 놓여 있는 위치, 직원들의 표정, CEO의 인상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회사의 미래와 관
2026.01.13 06: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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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형 투자에서 세로토닌형 투자로[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도파민.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 전달 물질 가운데 하나로 성취감뿐 아니라 쾌락에도 관여합니다. 도파민이 쏟아지면 뇌는 각성하고 흥분을 느낍니다.도파민은 2025년 국내 주식시장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상반기 조선·방산·원자력 주식의 상승세는 투자자들의 뇌를 자극할 만했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은 로봇과 바이오주는 더했습니다. 1년간 3배, 5배 오른 종목이 수두룩했으니까요. 텔레그램과 유튜브에는 투자 관련 콘텐츠가 넘쳐났습니다. ‘급등주, 세력주, 내일 상한가 종목’ 등의 단어는 도파민에 중독된 투자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실제 거론된 종목이 다음 날 상한가로 직행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습니다.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반도체였습니다.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가 1년간 250%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움직임도 도파민을 끌어내기 충분했습니다. 과거 삼성전자가 2%만 올라도 급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은 달랐습니다. 12월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에 4% 이상 오른 날이 사흘이나 됐습니다. 이렇게 2025년 주식투자자들 사이에는 도파민이 넘쳐났습니다.이 과정에서 투자 습관이 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주식을 싸게 사서 기다리는 게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고 하루이틀 사이에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기를 반복했습니다. 도파민형 투자의 시간이었습니다.하지만 올해는 2025년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코스피는 작년 4월 2400선에서 연말 4200선까지 쉼 없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조·방·원, 로봇, 바이오, 우주항공, 반도체 등 주
2026.01.05 07: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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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신뢰 모델, 용퇴와 전문경영인 승계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용퇴(勇退).스스로 물러나는 용기와 지혜라는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용퇴란 표현은 현실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기업 CEO나 임원 대부분이 인사발령으로, 즉 타의에 의해 그만둡니다. 오랜 기간 헌신을 감안해 용퇴라는 단어를 써주는 것입니다.진짜 용퇴가 어려운 이유는 권력의 속성 때문입니다. 결정권, 권력은 인간에게 최고의 통제감을 주는 장치입니다. 권력을 내려놓는 것을 상상할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본성과 결합해 권력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용퇴는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올해 대기업 인사에서 ‘진짜 용퇴’가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회장입니다. 그는 실적도 좋았고 자기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물러났습니다.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정통 중공업맨’ 권오갑을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앉힙니다. 정유업계가 큰 어려움에 처했던 시절, 믿을 만 한 사람을 구원투수로 보낸 것입니다. 권 사장은 눈여겨본 후배들을 오일뱅크로 데리고 갑니다. 재무 전문가 조영철과 홍보맨 금석호 등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각각 경영지원과 인사 업무를 맡겼습니다. 이를 두고 “권 회장이 미래 현대중공업 CEO 육성을 시작했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이들은 오일뱅크를 살려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2014년에는 현대중공업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수주절벽과 원가상승으로 엄청난 적자가 났습니다. 현대중공업은 그룹기획실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구조조정과 수익성 회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습
2025.12.22 07: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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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오너리스크'란 단어, 그리고 정의선이란 경영자[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오너리스크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오너의 일탈이 기업경영이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 당사자의 갑질, 자녀들의 마약이나 비행,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심각한 분쟁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두산그룹 경영권 분쟁,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뿐 아니라 오너들의 폭행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너리스크는 경영권의 편법 승계 문제와 맞물려 반기업 정서를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됐습니다.하지만 요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대기업 오너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치 ‘셀럽’을 보는 것과 비슷해졌습니다. 팬덤까지 생겨났습니다. 커뮤니티에는 오너들에 대한 호감도 높은 글들이 올라옵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검색을 해봤습니다. 오너리스크, 반기업정서 두 단어를 집어넣었더니 최근 10년간 볼 수 없었던 낮은 수치가 나왔습니다.이 반전을 해석하려면 과거를 봐야 합니다. 2000년대 초 재벌에 대한 한국인들의 코드는 ‘악당’에 가까웠습니다. 정경유착, 문어발 확장, 황제경영 등이 연관 단어였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국유화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런 정서에 2000년대 중반 두산그룹 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며 오너리스크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갑질 사건과 경영권 분쟁, 마약 폭력 등에 일가가 연루된 사건들의 영향이었습니다. 2014년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은 상징이 됐습니다.이런 분위기는 대기업의 세대교체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재계에는
2025.12.15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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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들 '양복 입은 뱀'이 되지 않는 법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한 동물원에 두 무리의 늑대가 있었습니다. 한 무리는 주도권 경쟁에서 패해 외진 곳에 살았습니다. 경쟁자 무리 때문에 사육사들이 주는 먹이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어느 날 승자 무리가 안 보이는 틈을 타 사육사가 패자 무리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늑대는 씹지도 않고 엄청난 양의 고기를 그냥 삼켰습니다. 곧 승자 무리가 나타나자 패자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아났습니다.그곳에서 늑대는 삼킨 고깃덩어리를 그대로 토해냈습니다. 패자 무리의 우두머리 늑대였습니다. 자신의 무리를 위해 고기를 저장해 돌아온 셈이지요. 이 영상을 보고 리더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했습니다.연말입니다. 기업 인사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팀장부터 사장까지 새로운 리더가 등장하는 시즌입니다. 올해는 살아 있는 리더십 강의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어 별도의 교육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위법적이고 반헌법적인 내란을 일으킨 주범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만 살겠다고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자신의 ‘기괴한 판단’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부하들에게 말입니다.다른 편에서는 수천만 국민의 정보가 해외로 유출됐지만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 김범석 의장, 그는 어떤 언급이 없습니다. 국내 경영자들이 총알받이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권력은 나에게 집중하고 책임은 다른 이들에게 분산하라”고 외치는 듯합니다.얼마 전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은퇴한 한 전문경영인에게 새롭게 리더가 된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답은 “사이코패스
2025.12.08 07: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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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버블 논란, 메타버스·NFT와는 다르다[EDITOR's LETTER]
[EDITOR's LETTER]“AI는 버블일까?” 현재 세계 금융시장과 산업계가 마주한 핵심 질문입니다.2021년을 떠올리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해 세상을 흔든 단어는 메타버스였습니다. 가상의 공간으로 캐릭터가 출근해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고, 회의를 하는 장면은 수도 없이 언론을 탔습니다. 가상공간에서 땅이나 건물을 사고파는, 지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Eath2에 대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바티칸 땅이나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수만 달러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과연 메타버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떤 효용을 제공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자칫 뒤처질까 몇 번 시도해봤지만 포기했습니다. 재미도 의미도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도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비슷한 시기 NFT도 유행했습니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본명 마이크 윈켈만)이 5000일 동안 매일 만든 이미지를 합성한 디지털 파일이 2021년 3월 경매에서 693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0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라고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하나의 JPEG파일에 불과한데 저 정도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이어졌습니다.메타버스, NFT 모두 미래에는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2021년 메타버스와 NFT에 대한 열광은 분명 버블이었습니다. 당시 거래됐던 가상공간의 땅과 NFT 작품의 가격은 추락했습니다.그 추락의 이유는 무엇일까. “서사는 있었지만 가치가 없었고, 기술은 있었지만 삶에 침투하지 못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미래에는 가
2025.12.01 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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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진공 상태’…천장 뚫린 환율, 일본의 길 따라가나?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환율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절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서울주유소에서 휘발유는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섰습니다. 국제 유가가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흐름입니다. 커피값도 뛰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커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4.7%, 9월 대비 2.4% 올랐습니다. 아이를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 보낸 학부모들은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작년보다 체감은 최소 1.5배 더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원·달러 환율 급등이 만들어낸 풍경입니다.이보다 앞서 환율 급등을 경험한 일본의 사례는 앞날을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합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엔화를 마구 풀었습니다. 엔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다 같이 현금을 살포할 때는 티가 덜 났습니다.코로나19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각국은 풀린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가 오르자 금리를 올렸습니다. 일본은 방향이 달랐습니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사후에도 이어져 일본은 저금리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엔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엔·달러 환율은 급등했습니다. 환율 급등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 내부적 요인과 맞물려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올 상반기 “일본인들이 채소 소비를 30년 만에 줄이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2012년 평균 80엔을 밑돌던 엔·달러 환율은 최근 150엔대로 올랐습니다. 엔화 가치가 반토막 났지만 증시는 호황이었습니다. 환율이 오르자 수출기업의 경쟁력은 강화됐고 유동성은 증시로 흘러갔습니다. 2012년 말 1만대였던 닛
2025.11.2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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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5000 시대'를 대하는 기획재정부 태도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는 민주당의 강적 앨 고어 전 부통령을 이기고 당선됐습니다. 비결은 메시지의 간결성과 캠페인의 일관성이었습니다. 부시는 어떤 질문을 받아도 두 가지로 답했습니다. “세금을 낮추겠다. 군비를 강화해 강력한 미국을 건설하겠다.” 캠페인도 이에 맞춰 진행했습니다.간결한 메시지와 일관성 있는 정책,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캠페인. 이는 선거뿐 아니라 정책의 성공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가장 선명한 정책 목표는 ‘주가 5000 시대’입니다. 현 주가만 보면 성공에 가깝게 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의 모습은 일관됨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논란이 대표적 사례입니다.주식투자자들은 두 가지를 목표로 합니다. 주가 상승과 배당. 오랜 기간 한국은 배당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중국보다 배당을 적게 하는 나라였습니다. 이유는 배당 규모를 결정하는 대주주(오너)가 배당받을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세금이 문제였습니다. 배당액이 다른 금융소득과 합쳐 2000만원이 넘으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됩니다. 최고 세율은 45%, 지방세 포함 49.5%가 됩니다. 절반이 세금으로 나갑니다. 배당 대신 다른 선택을 하게 구조가 짜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연봉 등이 그 예가 되겠지요. 배당은 위축되고 한국 주식시장은 오로지 시세차익만 노려야 하는 불안정성을 갖게 됐습니다.그래서 주식시장 안정적 성장을 위해 배당소득을 다른 소득과 분리해서 과세하고 최고 세율은 25%로 낮추자는 안이 나왔습니다
2025.11.17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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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우승과 강팀의 조건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경영자들은 때때로 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습니다.미국의 풋볼 코치 출신 빌 캠벨은 ‘실리콘밸리의 코치’로 불렸습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구글의 에릭 슈밋, 제프 베이조스 등의 경영 코치였습니다.국내에서는 과거 김인식 감독이 기업인들 대상 단골 강사였습니다. 개성 강한 프로 선수들을 원팀으로 만든 경험이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대한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2025년 프로야구가 막을 내렸습니다. LG 트윈스가 우승했습니다. 팬들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 이상의 성과였습니다. LG 트윈스를 통해 강팀의 조건을 살펴봤습니다.“슈퍼스타보다 원팀.”올해 LG에는 슈퍼스타가 없었습니다. 최고의 투수는 한화에, 포수는 두산에, 3루수는 키움에 있습니다.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아 골든 글러브 후보에 LG 선수는 2루수 신민재, 단 1명에 불과합니다. 슈퍼스타 없이 우승했다는 것은 팀워크의 승리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근성, 팀워크, 노력으로 뭉쳐진 이런 팀을 미국에서는 ‘블루칼라 팀’으로 부릅니다.이런 팀워크를 가능케 한 것은 조화입니다. 주장 박해민과 팀의 리더 김현수는 다른 팀에서 온 이적 선수지만 헌신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다른 주전 선수들은 LG가 직접 키워냈습니다. 야수 홍창기, 신민재, 문성주, 문보경, 구본혁과 투수 송승기는 프로 입단 때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타 구단에서 방출된 40세 투수 김진성은 올해도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LG는 다양한 이력이 모인 팀이었지만 그 다양성을 조화의 문화로 바꾼 것입니다. 스타 중심 조직보다 시스템 중심 조직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줬습니다.“믿음보다 데이터.”주전 선수를 선
2025.11.09 10: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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