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오바마의 셰일혁명과 유럽의 몰락…한국의 미래는?[EDITOR's LETTER]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셰일 혁명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린 에너지가 화두가 되고 있던 시기였기에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 바이든, 카멜라 해리스 등도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유연했습니다. 미국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가 석유에서 나온다는 것을 간파하고, 셰일 혁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1위 산유국이 됐습니다. 석유에서 자유로워지자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수 있었고, 중국과 패권전쟁을 벌일 여력도 생겼습니다. 이외에도 셰일가스와 오일은 유가를 안정시켰고, 이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기반이 됐습니다.

오바마가 이런 유연성을 기반으로 미국의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할 때 EU(유럽연합)는 반대로 갔습니다. 친환경 에너지에 더욱 집착했습니다. 그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100년만에 가장 뜨거운 올해 여름만 봐도 기후변화 대응은 미룰 수 없는 숙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럽은 대안이 없었습니다. 부족한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해야 했고,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자마자 유럽의 심장 독일부터 흔들렸습니다. 위기에 처하자 유럽은 다시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고 부활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도그마는 그렇게 유럽을 궁핍한 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재정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헬리콥터 벤’이 등장했습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헬리콥터로 달러를 살포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2020년까지도 경제회복을 위해 금리를 크게 올리지 않았지요. 코로나19가 터지자 헬리콥터 벤도 하지 않았던 회사채 인수 등을 통해 다시 무작위 달러 살포에 나섰습니다.

반면 EU는 2010년대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재정위기가 터지자 독일식 정책을 썼습니다. 지원 대신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재정적자 축소를 밀어붙였습니다. 미국 정치평론가 매튜 이글레시아스는 독일이 앞장서 남유럽 국가들은 지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지원하는 대신 높은 실업률이라는 벌을 줬다”고 표현했습니다.

유로화 도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독일이 남유럽 국가 지원에 반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독일은 ‘건전 재정’이란 도그마에 집착했습니다. 최근 전기차 보조금을 전액 삭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집착의 결과는 유럽의 침체와 독일 산업 경쟁력 약화였습니다.

규제에 대한 태도도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설명해줍니다. 미국은 산업이 성장할 때까지 돈이건 규제건 다 풀어줍니다. 충분히 성장한 후 독점의 문제가 발생하면 큰 칼을 휘두릅니다. 반면 유럽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규제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구글이나 애플이 유럽에서 점유율을 높이면 상대할 유럽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나서는 게 아니라 규제로 대응합니다. 유럽이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가 된 배경을 규제에서 찾는 이유입니다.

이밖에 유럽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습니다. 구조적으로는 고령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산업인력 부족뿐 아니라 민감한 소비자들이 줄어들자 산업의 활력이 떨어졌습니다. 난민도 유럽을 흔드는 손입니다. 포용과 박애 정신에 기초해 난민을 적극 수용했지만, 이들이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달랐습니다. 미국에는 불법이민자도 많지만 세계의 인재들이 몰려와 미국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밖에 근본적인 문제는 유로화 시스템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처지가 다른 국가임에도 거시경제정책의 핵심인 통화와 환율 정책을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유로화라는 딱딱한 체제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정책 경쟁에서 유럽은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결과가 지금 누구나 유럽의 몰락의 입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한국 상황은 어떨까. 정치와 정부 정책 모두 굳고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고령화, 규제, 융통성 없는 정책, 도그마 정치 등 많은 부분이 유럽의 실패를 따라가고 있는듯 합니다.

정치와 정책에서 유연성은 결정적입니다. 개혁을 하다 너무 많은 적이 생기면 칼을 놓고 도망가는 게 상책인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초여름 같은 미국, 늦가을 같은 유럽을 보며 노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어 있는 것은 단단하다.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현상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생의 현상이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