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한덕수·최상목·추경호,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EDITOR's LETTER]
“문화가 반드시 우리의 운명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우리의 운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한 말입니다. 그는 1994년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와 유명한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해 봄 리 총리는 미국 정치학술지 포린어페어스와 인터뷰했습니다. ‘문화는 숙명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그는 “민주주의는 서구의 문화적 토대에서 발전했다. 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에 비춰보면 서구적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 부적합하다”고 했습니다.

야인이었던 DJ는 이에 대한 반론을 겨울호에 게재했습니다. “민주주의에 가장 큰 장애 요소는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지도자들과 변명을 하려는 이들의 저항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도입한 나라는 부유를 누리는 반면, 민주주의는 빼고 자본주의만 채택한 남미 국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는 근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운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이 말을 떠올렸습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도 아니고 허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민주주의가 왜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했을까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아마도 민주주의가 정치의 시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정치 시장에서 상품은 후보자와 정책입니다. 득표율과 지지율은 시장점유율이라고 보면 됩니다. 상품성을 내세워 소비자와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원리도 같습니다.

지난 총선 때로 잠깐 돌아가 보지요. 여당은 패배했습니다. 후보자와 각종 정부 정책, 그리고 대통령과 그 가족을 둘러싼 문제로 정치 소비자들은 야당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야당의 64%라는 의석 점유율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야당은 상품의 효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대한 권력을 활용했습니다. 너무 탄핵을 많이해 염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일각에서는 ‘입법 폭주’라는 비난도 합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20번이 넘는 거부권을 사용했습니다. 양측이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이 또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 시장이 작동하는 논리입니다.

선거가 없을 때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효능감을 표현합니다. 이는 또 다른 원리를 만들어냅니다. 대화와 타협입니다. 교착상태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신의 것을 내주며 일부 원하는 것을 얻는 정치적 타협 또한 정치 시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이런 시장에서 최근 판을 엎어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표현대로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그것입니다. 자기 물건 안 팔린다고 남의 가게에 쳐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그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는 동행하는 한국 자본주의에도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원화 자산을 매도하라”, “한국으로 여행 가지 말라”,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통령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의 신뢰도는 떨어졌습니다. 여전히 후진국이란 인상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계엄 사태 이전에도 한국 경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트럼프가 등장하면 불확실성의 시간으로 진입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관세전쟁, 중국의 반격, 한국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맞물려 2025년은 ‘완벽한 불확실성의 시기’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한국 경제에는 국제 신인도 추락이라는 보이지 않는 타격까지 더해졌습니다.

이제 정치 컨트롤타워 붕괴는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경제 컨트롤타워는 붕괴되면 안 된다는 게 여론입니다. 정치는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복원이 가능합니다. 경제는 다릅니다. 한번 미끄러지면 복원이 쉽지 않습니다. 글로벌 시장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굶주린 하이에나들로 가득 찬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경제관료 출신인 한덕수 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이미 그들은 사실상 계엄에 동조한 우를 범했습니다. 앞선 경제관료 중에는 외환위기를 수습한 장관도 있고, 외환위기를 불러온 장관도 있습니다.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생을 파탄시킨 부역자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