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과 오만’의 결과…하락장에서 투자자 할 일은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묵묵한 실천’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2022년 5월은 코인 역사에 기록될 한 달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생태계를 확장하던 루나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 USD(UST) 페깅이 깨지면서 루나는 최고점 대비 99% 이상 폭락했다. 1달러에 고정돼 있던 UST 가격도 0.1달러를 밑돌았다.

루나-UST 사태로 인해 시장이 폭락했고 언론은 ‘코인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며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필자에게는 고통스러운 한 달이었다. 왜냐하면 이 사태로 피해를 본 주변 사람들이 많았고 이 여파가 시장에 미치는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침착하게 현 상황을 진단하고 베어장(하락장)을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비관론자 조롱했던 루나 추종자들
‘암호화폐 혹한기’ 이끈 루나, 사기일까 실패일까[비트코인 A to Z]
루나-UST는 분명 주목받을 만한 실험이었다. 루나 생태계는 ‘루나틱(Lunatic)’이라는 열렬한 지지자들을 낳으며 글로벌 코인 시장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무수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UST는 영향력을 확장하며 스테이블 코인 시가 총액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UST 가격 안정을 위해 비트코인을 준비 자산으로 편입하겠다는 선언 이후 필자는 어쩌면 새로운 디지털 화폐 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전율을 느낀 기억이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루나의 황금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UST 페깅이 깨지고 루나가 기하급수적으로 발행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생태계는 완전히 망가졌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너무나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존 루나 생태계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테라 2.0을 선언하며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었다.

‘#루나는UST이상이다’라는 해시태그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두고 무책임한 폰지(다단계 금융 사기)라고 비판하는 반면 누구는 이를 이더리움 하드포크와 비교하며 성장통이라고 본다.
‘암호화폐 혹한기’ 이끈 루나, 사기일까 실패일까[비트코인 A to Z]
테라 2.0 출시의 잘잘못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은 필자의 영역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루나 사태로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었다. 특히 UST의 1달러 안정성을 믿고 앵커 프로토콜(루나 생태계의 은행과 같은 역할. 20%에 가까운 예금 금리를 지급해 인기가 있었음)에 주택 자금이나 대출금을 넣은 사람들의 사례도 결코 적지 않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둘째, 낙관론자들은 비관론자들의 의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았다. 루나-UST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낙관론자들에 의해 첨단 금융 공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뜨기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일부 열성팬들이 루나-UST를 건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태도 때문에 많은 논란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사기와 실패는 다르다는 점이다. 사기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인 반면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다. 혁신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실패에 인색한 사회적 분위기라면 혁신은 결코 탄생할 수 없다. 루나-UST는 사기였을까, 실패였을까.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바라보면 루나-UST 실험은 애초에 피해자를 양산하기 위해 기획된 사기라기보다는 불운과 오만이 낳은 실패한 프로젝트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암호화폐 베어장을 대하는 자세앙드레 코스톨라니는 “두 번 이상 파산하지 않은 사람은 투자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가 사람을 완성시킨다고 믿는데, 이는 투자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동안 10년 넘게 주식과 코인 투자 시장에 참여하면서 파산할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필자는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인생이 끝난 것 같고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은 감사하게도 “허허, 그땐 그랬지”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지금 누군가는 그 당시 필자가 느꼈던 자기 혐오와 후회 그리고 절치부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감히 가늠할 수 없기에 조심스럽지만 비슷한 늪에 빠졌다가 벗어난 사람으로서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투자 사이클은 ‘영원 회귀’를 반복한다. 마치 어둠이 지나면 동이 트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듯이 하락장이 오면 상승장이 온다. 특히 다른 자산군에 비해 코인 시장은 사이클의 주기가 짧고 진폭이 대단히 큰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매우 압축적인 시기에 걸쳐 시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고 승자와 패자의 서열이 새롭게 정리되는 것이다. 아직 실험 단계인 코인 시장에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이를 추종하는 세력과 논란 역시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DYOR(Do Your Own Research) 하고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가설을 의심하면서 위기에 대비하는 것뿐이다. 또한 조급해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베팅하는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존버’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베어장은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례 중 하나는 베어장에서 존버하지 못하고 시장을 떠났다가 다음 사이클 피크에 재진입해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우리는 다음 상승장에서 2022년 5월을 어떻게 기억할까. 참고로 비트코인 반감기는 약 2년 정도 남았다.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