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구독자 20만 명 이탈…확대되는 OTT와 구독 경제 위기론


‘세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은 넷플릭스에도 해당된다. 누적 구독자 수가 2억2000만 명인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 Over-the-Top) 사업자 넷플릭스의 최근 경영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우선 2022년 1월 초 597달러(약 76만원)였던 넷플릭스의 주가는 6월 7일 197.03달러(약 24만7700원)로 70% 가까이 폭락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증시도 하락 국면을 맞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하락 폭이 크다. 설사가상으로 주가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넷플릭스를 상대로 증권 사기 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 나섰다.

넷플릭스의 구독자 증감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22년 1분기 동안 무려 20만 명의 구독자가 이탈했다. 넷플릭스 구독자 감소는 11년 만의 일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시장 철수로 인한 약 70만 명의 구독자 손실의 영향이 컸다. 올 초 50만 명의 신규 구독자가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2분기에 200만 명의 구독자가 추가로 감소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단지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 조짐은 내부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5월 들어 15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는 구조 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제프 스미스의 코믹북 시리즈인 ‘본(Bone)’을 포함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던 사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도 대거 취소되고 있다. 도대체 넷플릭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OTT 왕국을 건립한 넷플릭스, 구조 조정까지 나서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배송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친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기반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거대 미디어 왕국을 건설한 글로벌 OTT 사업자다.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고객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등 미디어업계의 혁신을 주도해 온 게임 체인저이기도 하다. 특히 월정액만 내면 정기적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구독형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현재 전 세계 OTT 산업의 45%와 미국 전체 TV 시청률의 6%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 같이 볼래(Netflix and Chill)”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고 심지어 “넷플릭스가 재채기를 하면 할리우드는 심장마비가 온다”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가정에서 동영상 시청이 증가하면서 넷플릭스의 기업 가치도 덩달아 올랐다. 대표작인 ‘하우스 오브 카드’, ‘위쳐’, 기묘한 이야기’ 이외에 최근 공전의 히트를 한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수면 시간밖에 없다”고 할 정도였다.경쟁 심화와 가입자 유지 비용 상승으로 추락
이런 넷플릭스의 위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 무엇보다 OTT 시장의 포화와 경쟁 심화가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OTT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이 시장을 두고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 HBO 맥스, 애플 TV 플러스 등 쟁쟁한 OTT 사업자들이 가세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인도에서 출범한 디즈니플러스핫스타(Disney+Hotstar)에 이어 2022년 6월 중동에서 서비스를 출범시킨 디즈니 플러스는 저가 요금으로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의 가입자를 기반으로 넷플릭스를 위협하는 최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디스커버리와 워너미디어도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양분하고 있는 OTT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올 4월 합병하고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를 출범시켰다. 글로벌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자사 OTT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 3월 약 85억 달러(약 10조6000억원)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MGM을 인수하기도 했다. 한국도 기존의 웨이브나 티빙 이외에도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 원이 OTT 경쟁에 가세하며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쟁 심화는 결국 가입자 유치 비용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도 신규 가입자 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2020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올 1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월 구독 요금제의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용 상승과 구독료 인상은 전 세계적으로 가중되고 있는 물가 상승과 함께 OTT 구독이라는 사업 모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계속되는 넷플릭스의 가격 인상은 가입자들로 하여금 넷플릭스가 제공하고 있는 고객 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고 이는 결국 고객들의 합리적인 지출 선택으로 이어지게 한다.

알루마인사이츠(Aluma Insights)의 최근 조사에 따르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password sharing) 금지와 월 3달러의 추가 요금을 부과한다면 가입자의 13%가 해지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딜로이트컨설팅도 미국 고객의 25%가 OTT를 취소하고 1년 안에 다시 구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콘텐츠 투자 비용도 논쟁거리다.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할리우드 제작 콘텐츠 위주의 편성으로는 기존 미디어와 차별화하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왔다. 넷플릭스가 올해 콘텐츠 비용에 쏟아붓는 금액만 무려 180억 달러(약 2조5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오리지널 콘텐츠는 현재의 넷플릭스의 성장을 이끌고 기존 미디어 사업자와 차별화한 핵심 동인인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가 반드시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2019년에도 포브스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은 실패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제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포브스는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 콘텐츠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고 가입자 증가가 신규 콘텐츠 비용을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한 바 있다.넷플릭스 위기, OTT 시장의 위기일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최근 몇 가지 대응 전략을 내놓았다. 우선 자사 구독자 감소를 줄이기 위해 사용자 간 계정 공유를 금지했다. 그동안 넷플릭스의 가입 증가에 큰 역할을 했던 것 중 하나가 계정 공유라는 점에서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넷플릭스는 승인되지 않는 계정 공유 사용자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넷플릭스는 월 2.99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면 암호 계정을 공유할 수 있는 ‘추가 회원 추가’ 유료 기능을 적용한다는 복안이다.

광고가 들어간 저가 구독 요금제도 도입한다. 그동안 넷플릭스가 자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광고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행보다. 넷플릭스의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광고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와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OTT 시장의 움직임이 유료 기반의 구독형 모델에서 광고 기반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AVOD : Aadvertising VOD)와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FAST : Free-Ad-supported Streaming TV) 등 광고 기반 서비스 모델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넷플릭스의 주가 하락과 가입자 감소에 대해 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은 단순히 넷플릭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OTT 시장 자체에 대한 위기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넷플릭스에 이어 월트 디즈니도 주가가 32% 하락했고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도 지난 4월 430억 달러(약 53조원) 규모의 합병 이후 주가가 25% 하락했다.

특히 그들은 시청자들이 기존의 프로그램을 편성해 보여주는 전통적인 선형 TV(Linear TV)에서 OTT로 불리는 비선형 TV(Non-linear TV)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OTT 시장 자체가 막대한 투자를 회수할 만큼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이번 넷플릭스의 위기는 넷플릭스가 주도한 구독 경제 모델에 대한 회의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동안 구독 경제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형태의 변화에 따라 글로벌 비즈니스 표준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독 경제는 구독이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만큼 해지하기도 쉽다는 단점이 공존하는 모델이다. 또한 구독은 자동으로 갱신되므로 소비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돼 왔다.

최근 하루 구독자가 1만 명도 안 돼 말도 많았던 유료 구독형 뉴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CNN 플러스’가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돼 폐지됐다는 소식은 이러한 주장에 기름을 붓고 있다. 더욱이 넷플릭스와 함께 대표적 구독 경제 모델인 홈 트레이닝 시장의 대장주 펠로톤(Peloton)이 구조 조정 중이라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넷플릭스의 위기가 OTT, 나아가 구독 경제 모델의 위기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