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공공 미술로 자리 잡은 ‘해머링 맨’…6월 4일 생일 맞아 이벤트 열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있는 서울의 대표적 공공미술 작품 '해머링맨'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 있는 서울의 대표적 공공미술 작품 '해머링맨'
서울 광화문 주변은 서울을, 아니 한국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600년 전 조선이 시작될 무렵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인근에서 모여 밥 먹고 일했고 잠을 잤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광화문 지역 구석구석엔 역사들이 숨어 있다. 긴 역사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징물들도 곳곳에 있다. 경복궁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 이 상징물들의 주인공은 한국의 역사를 바꾼 ‘거인’들이다. 물론 이들만큼 위대하지는 않지만 역사의 바퀴 속에서 조용히 할 일을 다한 ‘생활인’들의 상징물 역시 광화문에 있다.

2002년 6월 4일 세워져 올해 스무 살 생일을 맞은 해머링 맨이다. 해머링 맨은 광화문 지역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광화문역 6번 출입구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가야 한다.
해머링 맨은 ‘노동의 숭고함과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했다고 한다. 작가 조나단 보롭스키는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해머링 맨을 스케치했다.

실제로 해머링 맨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35초마다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 목을 구부린 채 오른손에 있는 망치를 아래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리치기를 반복하는데 이런 모습이 매일 일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작품에 담긴 의미와 함께 압도적인 크기는 해머링 맨을 한국의 대표적 공공 미술품으로 자리 잡게 했다. 해머링 맨의 높이는 22m, 무게는 50톤에 달한다. 그가 움직이는 오른팔의 무게만 4톤이다. 재질은 산업을 상징하는 철과 알루미늄이다.

‘노동자’ 해머링 맨은 주말과 공휴일엔 쉰다. 그래서 주중에만 해머링 맨의 망치질을 볼 수 있다. 물론 5월 1일 노동절엔 해머링 맨도 쉰다.

20년간 꾸준히 일하고 있는 해머링 맨은 2015년 두 달 간의 장기 휴가를 다녀왔다.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노후 부품을 교체하고 도색도 다시 했다. 설치 후 첫 단장이었다. 2008년에는 건물에서 도로 쪽으로 4.8m 더 자리를 옮겼다.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해머링 맨이 한 걸음 다가면서 늘어난 자리에는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 들어섰다.
35초마다 한 번씩 하는 해머링 맨의 망치질
해머링 맨은 보롭스키 작가가 1979년 뉴욕에서 가진 개인전에 선보인 3.4m 높이의 ‘워커(Worker)’라는 나무 조각에서 탄생했다. 이후 나무 소재를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바꾸며 해머링 맨이라는 새 이름이 됐다. 이후 작가가 연작 형태로 작품을 이어 가면서 해머링 맨은 세계 여러 곳에 형제가 생겼다. 현재 시애틀·프랑크푸르트·바젤·나고야 등에 11명의 해머링 맨이 있다.

해머링 맨은 세계 곳곳에 들어서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권위 있는 미술 행사로 손꼽히는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에 1982년 출품한 해머링 맨은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을 창조하는 신의 손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롭스키 작가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20대 시절에는 당대 주류 미술이던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에 심취했다. 특히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인 솔 르윗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개념 미술에서 벗어나 인체 형상의 작품을 통해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구축했다. 회화든 조각이든 그의 작품엔 인체 형상이 있다. 회화는 베를린 장벽을 캔버스 삼아 그린 ‘달리는 사람(Running Man)’이 대표적이다. 조각은 당연히 헤머링 맨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음악가인 아버지가 들려 줬던 친절한 거인 이야기에서 해머링 맨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의 해머링 맨은 다른 나라의 ‘형제’들과 약간 다르다. 먼저 높이와 무게가 형제들 중 가장 크다. 또 망치질도 가장 빠르다. 해머링 맨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망치질을 1분에 한 번씩 했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때문인지 망치질이 너무 늦다는 의견이 많아 35초마다 한 번씩으로 바꿨다.

현재 해머링 맨은 세화예술문화재단에서 관리한다. 세화예술문화재단은 스무 살 생일을 맞은 해머링 맨을 위해 이벤트를 개최했다. 세화예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세화미술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에 해머링 맨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기면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며 “해머링 맨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며 작품의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광화문의 문화예술 공간 ‘흥국생명빌딩
해머링 맨이 위치한 광화문 흥국생명빌딩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심 문화 공간 중 한 곳이다. 흥국생명빌딩의 한 축은 씨네큐브가 차지한다. 씨네큐브는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 예술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기생충’ 둥 수많은 예술영화들을 상영해 왔다.

씨네큐브는 2개관 365석 규모다. 상업적인 멀트플렉스엔 못 미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증하는 서울 내 가장 큰 규모의 예술영화 상영관이다. 특히 씨네큐브는 연간 전체상영작의 90% 이상을 예술영화로 채운다. 영화진흥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예술영화관으로 인정받으려면 연간 상영작의 60% 이상이면 된다. 그만큼 예술영화에 ‘진심’이다.

씨네큐브는 예술영화 전문관다운 독특한 관람문화로 유명하다. 영화를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또 엔딩 크레딧이 모두 끝난 후에야 상영관의 등이 켜진다. 또 시작 시간도 광고없이 정확한 시간에 시작한다.

씨네큐브는 관련 이벤트도 꾸준히 이어간다. 국내 예술영화관 단독으로 진행하는 행사 중 최대규모의 영화축제인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12월 초)’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작 상영제 ‘씨네큐브 아카데미 화제작 열전(1월~2월)’ 등을 매년 개최한다.

세화 미술관은 흥국생명빌딩 문화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세화미술관은 빌딩 1층 로비와 3층 전체(약 1,000㎡)에서 헤머링 맨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2010 아름다운 강산’(강익중, 2000&2010), ‘아르파치야’(프랭크 스텔라, 2002) 등 국내외 우수한 17점의 미술작품들을 상설 전시한다. 또 세화미술관은 미술전시 이외에도 중견 및 신진작가 지원 등 다양한 예술지원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태광그룹은 문화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2009년 세화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하여, 2017년 세화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