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기억 강할수록 익숙한 틀에 맞추고 싶어져…항상 ‘까칠한 조언자’ 필요

[경영 전략]
훌륭한 경영자가 멍청한 판단을 하는 이유 [박찬희의 경영 전략]
전략은 크고 중요한, 잘못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일이다. 자칫 그릇된 판단을 하면 기업의(혹은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니 미리 세심하게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 경영 전략의 다양한 기법들은 이런 중요한 결정을 위해 개발됐다.

그런데 정보 수집과 전략 판단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할 수 없다. 전쟁이든 사업이든 멍청한 짓만 덜해도 이긴다는 얘기도 있듯이 세상일은 무수히 많은 실수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 치밀한 정보 판단은 성공의 기록을 포장한 경우가 더 많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멍청한 짓을 덜할 수 있을까. 심리학 분야의 연구들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는 ‘마음의 빈틈’을 보여준다. 아무리 훌륭한 경영자도 자신의 잘못을 맞닥뜨리기 싫고 잘하고 있다는 듣기 좋은 얘기를 찾는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유리한 상황을 가져다 준 ‘운(運)’이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믿다 보면 더욱 과감한(사실은 무모한) 도박에 나서기도 한다. 마음의 빈틈을 찾아 잘못된 판단을 막아 내는 전략의 지혜를 생각해 보자. 카너먼의 ‘체계적 오류’현대 경제학은 인간이 소비나 투자에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 합리성이 정보 비용이나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에 ‘제한된 합리성’을 갖는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는 주어진 상황 조건에서의 합리적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와 달리 인간은(어쩌다 하는 비체계적 오류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편향된 의사 결정을 한다는 점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한평생 경제학의 가정이 틀렸음을 밝힌 카너먼은 그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는데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경제학자”라는 절반승을 얻은 셈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은 그의 연구 성과를 집약해 ‘왜 훌륭한 경영자가 멍청한 전략을 택하는가’라는 특별 노트를 발간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조직의 현실에 비춰 생각해 보자.

첫째, 사람은 세상 흐름을 자기 편한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존의 전략과 방식에 얽힌 이해관계가 더해지면(속으론 알면서도) 뭉쳐서 우겨대는 경우마저 벌어진다.

정장을 갖춰 입는 일이 크게 줄었는데도 한국의 패션업체들의 남성복 라인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그래서 쌓이는 재고를 헐값에 처분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현대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도로 자체가 전시장인데 현대차는 여전히 값비싼 임대료를 내고 매장을 운영한다.

둘째, 사람은 자기 능력이나 처지를 잘못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약해서 자신의 한계나 약점을 인정하는 불편함을 피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현실이 더해지면 이 편향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서로 트집거리만 찾는 사내 정치판에서 자칫 회사의 한계를 얘기하면 “넌 누구 편이냐”는 비난과 함께 충성심을 의심받는다(그래서 ‘우리가 최고’라며 들이대다 같이 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셋째, 일을 하면서 자신이 생기면 ‘내가 하면 된다’고 믿는다. 불확실성을 낮게 보는 편향이다.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하던 프로젝트도 계속 하다 보면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되고 일종의 애착이 생긴다.

이쯤 되면 남들이 반대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확신을 공유하면 일종의 ‘집단 사고(group think)’로 이어지는데 실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어쩌다 발생하는 불운 때문일 뿐 반복되지 않는다는 통계적 확신도 등장한다.

넷째, 안 되는 일은 빨리 접어야 손실을 줄이지만 오히려 불굴의 투지, 필승의 신념을 내걸고 더 과감하게 베팅을 건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여기서 중단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고 하다 보니 약이 올라 될 때까지 우기는 마음도 생긴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거기에서 얻은 운에 대한 믿음도 한몫한다. 여기에 마구 일을 벌여 놓고 “생각해 보니 잘못됐다”고 접기 어려운 조직의 현실도 있는데 어떻게든 버티다 슬쩍 떠넘기는 꼼수가 등장한다.

다섯째, 현실을 자기 편한 방식으로만 보려는 편향도 있다. 복잡한 사안을 원점에서부터 풀어가려면 피곤하다. 성공의 기억이 강렬할수록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익숙한 틀에 맞추고 싶어진다.

이른바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인데 여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지각이 작동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경영자는 자신의 광고 아이디어로 매출이 늘었다고 우기지만 사실은 계절 효과 때문이고 경쟁자의 성과는 훨씬 높을 수도 있다.
악마의 변호인을 활용하려면카너먼이 입증한 체계적 오류들은 사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사업 경험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해 앞뒤 못 가리고 들이대며 혼자만의 상상 속에 울고 웃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쩌다 하는 실수이거나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운이 작용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체계적인 실수라 조금만 객관적으로 보고 까칠한 조언을 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의 역할이다.

경영자 스스로가 잘못과 약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조언도 귀에 들어온다. 공부를 열심히 해 생각의 힘을 기르면 상황을 직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과거의 성공을 넘어서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더 널리(싫은 소리까지) 들으려면 겸허함이 필요하다.

몸을 던지는 참모, 애정 어린 조언은 훌륭한 경영자에게나 통할 뿐이다. 자기 확신에 성공의 기억까지 더해져 겸허함을 잃은 경영자에게는 세상 물정 모르는 짜증나는 소리에 불과하다. 이 틈을 듣기 좋은 아첨이 파고든다.

까칠한 조언이 덧없이 뭉개지면 사람들은 저마다 실리를 챙긴다. 애써 얻은 자리인 만큼 조금이라도 누리려고 들고 몸을 낮춘다는 그럴듯한 변명이 등장한다.

욕심에 잠시 눈이 멀어 ‘나만의 비밀 전략’을 몰래 간직하다 황당한 실패를 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2차 의견(second opinion)’을 구하는데 불행히도 이들 전문가들마저 일거리를 오래 따려고 비위만 맞추거나 회사 안팎에 끈을 만들어 사내 정치에 끼어들며 실리를 챙긴다. 경영자가 잠시만 정신줄을 놓으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젊은 시절부터 친구인 간옹에게 어떤 얘기든 자유롭게 하도록 뒀는데 유비가 금주령을 내려서 관리들이 술 빚는 도구를 가진 부부를 처벌하자 “저 부부가(이미 몸에 성기가 있으니) 음란한 짓을 하려는데 어째서 잡아 가두지 않느냐”는 재치 있는 말로 지나친 행정력 행사를 경계했다고 한다.

간옹은 유비와 한 수레를 타고 다니고 앞에서도 누워서 떠들 정도로 자유분방했지만 정치나 이권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사자(使者)로 가서는 사심없이 유비의 뜻을 전했다니 조언자의 소명을 정확히 알았던 것 같다.

사외이사 1~2년 더하겠다고 까칠한 조언은 고사하고 ‘영혼이 듬뿍 담긴’ 아양과 굴종에 나서다 끝물에는 이권 개입까지 일삼는 세상에 되새겨볼 일이다.

까칠한 조언도 전문가의 지원도 경영자가 정신 똑바로 차릴 때 가능하다. 묵묵히 따라주는 인내심인지 입 다물고 실리만 챙기는 꼼수인지 가려내는 일도 경영자의 몫이다. 몸을 던져 반대할 참모, 꾸밈없이 얘기해 줄 친구를 찾아 ‘성공한 경영자와 눈높이가 달라진’ 그들의 소박한 생각에 귀를 여는 것 또한 경영자의 일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