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난 곳에 반려견과 함께 씨앗 뿌리는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

[인터뷰]
4월 30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서 열린 '산타독 프로젝트'에 참여한 강아지가 씨앗을 뿌리고 있다. 사진=AHA 제공
4월 30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서 열린 '산타독 프로젝트'에 참여한 강아지가 씨앗을 뿌리고 있다. 사진=AHA 제공
#. “보리, 베로, 젤리, 주디, 별이, 햇살이, 두툼이…. 씨앗 받아 가세요!”

4월 30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의 한 마을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을회관 앞에 소형견·중형견·대형견 등 반려견 40마리가 그들의 보호자와 함께 자리했다. 타 버린 산을 위해 산을 타는 강아지, 이른바 ‘산타독’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반려견이다.

산타독 프로젝트는 대형 산불로 황폐해진 산에 반려견이 씨앗 주머니를 매달고 뛰어놀면서 도라지 씨앗과 꽃씨 등을 뿌리는 일이다. 개들에겐 그저 드넓은 산을 뛰어노는 일이지만 이 작은 일이 상당한 효과를 낸다. 화마가 할퀴고 간 지역 일대의 산림 복원의 일환이자 주민들에겐 농가 소득을 보전해 주는 일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이하 AHA) 대표는 2017년 칠레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난 뒤 반려견에게 씨앗 가방을 매달고 산불 피해 지역을 누비도록 해 성과를 낸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2020년부터 산타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황성진 대표는 “산타독 프로젝트는 반려견·반려인뿐만 아니라 지자체 지역 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 공헌 프로젝트”라며 “앞으로도 사회 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업들과 함께 산타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따분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재치 있게 풀어낸 황 대표를 6월 6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AHA 사무실에서 만났다.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어떻게 산타독 프로젝트를 시작했나요.

“최근 들어 산불이 잦아진 것은 기후 변화에 큰 원인이 있잖아요. 그런데 ‘기후 변화’, ‘산림 복원’ 하면 어때요, 듣기만 해도 재미없죠. 탄소 중립이나 넷 제로 이런 이야기는 너무 어렵고 따분해요. 우린 이 메시지를 재밌게 풀고 싶었어요.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이 행복하기를 바랐죠. 그렇게 산타독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일단 달려보자, 산에서’라고 말했죠.”

-프로젝트 주체가 ‘개’란 점이 신선해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반려 가족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선 대형견을 키우는 반려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입마개에 짧은 목줄을 매야 하고 뛰어놀 곳도 없죠.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거나 외딴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견주들을 많이 봤어요. 견주와 개 모두가 재미있게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캠페인을 찾다 보니 2017년 칠레의 사례가 눈에 들어온 거예요. 산불로 황폐해진 산림을 울창하게 하는 데 최소 30년이 걸리는데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심는 일은 굉장한 노동이거든요. 그런데 개들은 씨앗 주머니를 매달고 신나게 뛰어놀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씨앗을 뿌릴 수 있어요. 한국식으로 ‘산타독 프로젝트’를 풀어야겠다 싶었죠.”

-반응은 어땠나요.

“개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무척 행복하게 뛰어놀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견주들 역시 행복해 했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반려견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고 의미 있는 일까지 하니 언제든지 참여하고 싶다고 해요. 이번 강릉 산타독 프로젝트에서는 총 40팀을 모집하는데 신청을 받자마자 120팀이 지원했어요. 마을 어르신들도 굉장히 좋아해요. 처음엔 외지인들이 오니 경계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도라지 씨앗을 뿌려 달라’, ‘더덕을 뿌려 달라’고 해요. 발아한 씨앗이 자라면 상품 작물로 수확할 수 있어 주민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거든요. 지자체에서도 러브콜이 계속 와요.”

-기업들도 후원사로 참여했더군요.

“이번에도 많은 기업들이 후원사로 참여했어요. 반려동물 전문 업체도 있고 아닌 업체도 있죠. 유수의 기업에서 산타독 프로젝트를 임직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제안도 왔어요. 특히 ‘탄소’ 문제에 관심을 가진 기업이라면 산타독 프로젝트를 통해 ESG 경영을 실천할 수 있어 관심이 높아요. 최근 ESG가 화두가 되면서 탄소 문제에 원죄가 있는 기업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잖아요. 산타독은 기업으로서도 재미와 의미 그리고 기업의 ESG 경영까지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프로젝트죠.”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기업이 참여해 얻는 효과가 있나요.

“ESG 경영이 화두에 올랐지만 사실 시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고루해지기 쉽거든요. 시민 참여형 플랫폼이 아니면 지속 가능하기 어렵죠. 시민은 소비자이자 투자자이자 우리 회사의 임직원이에요. 시민이 만족하지 못하면 우리 제품을 사지도 않을 것이고 주식에 투자하지도 않을 거예요. 임직원 역시 만족도가 낮아지겠죠. 가을엔 김장하고 겨울엔 연탄 나르고 이제 그런 사회 봉사 활동은 한계에 닿았어요. 특히 주요 소비자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뻔한 게 너무 싫은 거죠.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제대로 된 ESG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에 구현해야 하는데 기업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탄소 중립과 넷 제로를 이해시키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산타독 프로젝트와 같은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는 아주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요.”

-올해도 산타독 계획이 또 있나요.

“하반기에는 더 판을 키워 볼 생각이에요. 현재 강릉·안동·밀양에서 산타독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데 지역마다 각각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해요. 강릉은 한국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도와 함께 유기견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해요. 통계적으로 8월 여름휴가철에 유기견이 가장 많이 버려지거든요. 경포대가 그 오명을 썼죠. 강릉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강릉시보호소 유기견들과 함께하는 산타독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보호소의 유기견들은 제 몸 하나 간신히 뉠 수 있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요. 이 유기견들을 씻기고 사회화 훈련을 시킨 다음 타 버린 산에 씨앗을 뿌릴 거예요.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겠죠. 사람들은 그럴 거예요. ‘너무 예쁘다’,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다.’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에 추가할 메시지는 이거예요. ‘여러분이 예뻐하는 그 친구들이 사실은 유기견입니다’, ‘사지 말고 입양 합시다’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에요. 재미있는 캠페인으로 유기견들도 반려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일이죠.”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반려동물은 산불 등 재난이 닥쳐도 안전하게 피할 곳이 없어요. 재해구호법 제3조는 구호 대상을 ‘이재민, 일시 대피자, 이외 재해로 인한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거든요. 견주들은 가족이 된 반려견을 지인에게 맡기거나 보호소에 보내거나 아니면 유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시보호소는 개체 수가 늘어나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이런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죠. 저는 이렇게 문제를 풀어보고 싶어요. 시군구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임시보호단’ 연락망을 만들어 두는 거죠. 만약 A지역에서 불이 나거나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인근 지역 임시보호단 연락망과 연결해 유기 동물을 이동시키는 거예요.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ESG 경영의 일환으로 뛰어들면 이동망도 확보할 수 있죠.”

-대표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의 목표가 ‘유기 동물이 없는 세상’이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유기 동물이 없게 하려면 궁극적으로는 건전하고 행복한 반려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 문화를 만들어 내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미 유기 동물을 주제로 기획한 아이디어가 20개가 넘어요. 산타독 프로젝트는 그중 하나일 뿐이죠. 시민들도 기업들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열의는 있는데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거든요. 선의가 선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어요.”

☞황성진 쏘셜공작소 대표 겸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는…

마케터로 활약하다가 어느 날 사회 공헌에 눈을 떴다. 사람을 끌어오는 일은 자신이 있으니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과 도움이 필요한 비정부기구(NGO)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자 했다.

이 무렵, NGO들을 도와주다가 개농장에서 자궁이 다 튀어나온 유기견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개판’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유기 동물을 없애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한국유기동물보호협회 대표이자 사회적 문제를 발칙한 미션으로 해결하는 쏘셜공작소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