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S 고도화 등 중금리 대출 시장 공략…기관투자가 연계 투자 등이 ‘성장 열쇠’
[비즈니스 포커스] 제도권 편입 2년 차를 맞은 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업(온투업)이 심상치 않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와 차입자를 연결하는 대안 금융 서비스를 일컫는 온투업은 2020년 8월 ‘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 시행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 금융 산업이다. 시행 후 1년간 등록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첫 온투업 등록 업체가 발표된 후 1년여가 지난 현재 온투업 등록 업체는 총 48곳으로 늘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온투업 업체들은 2022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온투업, 대출 규모 빠르게 증가
온투업의 성장세를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지표는 누적 대출액의 증가 추세다. 금융결제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중앙기록관리기관에 따르면 6월 7일 기준 온투업 업체 42곳의 누적 대출 금액은 4조986억원이다. 지난해 말(2조5039억원)과 비교해 60% 이상 증가한 규모다.
제도권 내 편입 이전에 온투업을 일컫는 명칭은 P2P(개인 간) 금융이었다. 온라인을 통해 대출과 투자를 연결하는 테크핀 서비스를 말한다. 2005년 영국 P2P 금융 업체인 ‘조파(ZOPA)’에서부터 시작해 렌딩클럽(Lending club)과 소파이(SoFi) 등 미국 테크핀 업체들이 성장을 이끌었다. 현재 미국 신용 대출 시장의 10%를 P2P 금융이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와 비교해 한국의 P2P 금융은 성장세가 더딘 게 사실이었다. 2014년 한국 1호 P2P 업체인 8퍼센트를 시작으로 렌딧·테라펀딩·어니스트펀드 등의 P2P 업체들이 ‘소액 투자 대안 상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담보 대출 상품의 연체 문제 등 위험성이 부각되며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P2P 금융 산업 전체가 휘청거릴 만큼 타격을 입었다.
신뢰를 잃은 업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제화’라는 카드를 내걸었다. 온투업이 새로운 금융 산업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금융 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는 제도권 금융으로의 편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 2019년 11월 ‘온투법’이 제정됐다. 한국은 P2P 금융이라는 새로운 금융 산업과 관련해 단독법을 제정한 세계 첫 사례가 됐다.
지난 2~3년간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던 온투업 업체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시장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은 특히 ‘1.5금융’을 표방하며 중금리 시장을 선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자는 낮지만 문턱이 높은 1금융권과 문턱이 낮은 대신 이자가 높은 2금융권 사이의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의미다.
중금리 대출 시장은 그동안 리스크가 큰 데다 신용 평가가 어려워 시중 은행들조차 시도하기 어려웠던 대표적인 시장이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 기조와 함께 대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인터넷 전문 은행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금리 대출 수요를 잡기 위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온투업 업체들은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용 평가 모델(CSS)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15년 설립 이후 ‘개인 신용 대출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렌딧은 신용 평가 모형 등 초기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만 300억~400억원을 투자했다. 사기 정보 공유 데이터와 직장 정보, 상환 정보는 물론 통신 정보, 부동산 정보 등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해 기존의 신용 정보만으로는 판단하지 못하는 리스크를 가려낼 수 있는 CSS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한국의 1호 P2P 업체로 잘 알려진 8퍼센트는 개인 신용 중금리 대출뿐만 아니라 사업자에게도 공급하고 있다. 8퍼센트는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지닌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머신러닝 기반 자체 평가 시스템(E-Index)을 발전시켜 왔다. 1개 채권당 500여 개의 정보를 활용해 중신용 고객에 대한 리스크를 판단한다.
렌딧·8퍼센트 등과 함께 한국 1세대 P2P 업체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어니스트펀드 또한 지난해 8월 온투업 업체로 등록한 이후 최근 3년 만에 개인 신용 대출 서비스를 재개했다. 이를 위해 어니스트펀드는 지난해 신윤제 전 나이스평가정보 솔루션팀 리더를 인공지능랩장(CDO)으로 영입했다. 신용 평가 등급 점수 외에 직장 이력과 금융 심리 데이터, 온라인 행동 패턴 등을 적용해 CSS 고도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인·소상공인 등 특화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의료인 특화 온투업 업체인 모우다는 의료 기관 공공 데이터와 병원·의원 매출 데이터 등에 기반한 독자적인 심사 평가 모형을 구축하고 의료인을 위한 다양한 대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소상공인 전문 온투업 업체 펀다는 음식점 등 소상공인의 빅데이터를 수집해 미래 매출을 머신러닝으로 예측하는 자체 신용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소상공인들에게 신용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8퍼센트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확산에 대응해 배달·청소·재능 거래 등의 플랫폼에 종사 중인 노동자들에게 특화된 대출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홈 클리닝 플랫폼 ‘청소연구소’와 제휴하고 청소연구소가 보유한 데이터를 통해 은행권에서 소외된 청소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중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관투자가 참여가 온투업 성장의 관건
‘1.5금융’을 표방하는 온투업은 대출자들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도 대안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신용 평가 모형을 통해 리스크가 적은 대출 채권을 투자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투업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온투법이 제정되기 이전 일부 P2P 업체들의 사기 횡령과 부실화 논란 등으로 이미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법제화를 통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업체들을 관리하고 감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온투업 업체들의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업계 내부에서도 가장 먼저 꼽히는 선행 과제가 기관투자가들의 온투업 연계 투자다. 최근 온투업 업체들에 대한 대출 수요가 몰리고 수익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커지는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성장이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대규모 투자 자금이 필수적이다. 실제 미국과 같은 해외 P2P 금융은 개인보다 금융회사 투자자들의 투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특히 2011~2012년 무렵 P2P 금융에 대한 검증이 어느 정도 됐다는 판단 아래 대형 금융회사들이 P2P 금융 시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금융 자본이 온투업계에 흘러 들어오면 소비자 신뢰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다면 온투업 업체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매서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온투법에 따르면 온투업 업체의 부동산 담보 대출 연계 상품은 모집 금액의 20%, 그 외 상품은 40%까지 금융회사의 연계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온투법 제35조는 ‘여신금융기관 등은 연계 대출 모집 금액의 100분의 40 이내에서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계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금융업권법의 적용을 받고 있어 사실상 온투업 업체 연계 투자가 막혀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금융회사가 온투업 업체에 연계 투자하는 행위를 ‘대출’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선 자체적으로 대출 신청인에 대한 여신 심사를 해야 한다. 이때 온투업 업체들은 금융회사에 신청인의 신용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온투법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차입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관 연계 투자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금융회사들은 유권 해석을 내놓는 데 소극적이다. 임채율 온라인투자연계금융협회장은 “기관투자가들의 연계 투자는 온투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라며 “규제 완화와 관련해 당국과 신뢰를 쌓으며 단계적으로 협의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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