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로 시작해 광복 후 희석주로 바뀌어…초기 36도에서 16.5도까지 낮아져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고단한 하루를 달래는 데 소주만한 술이 없다. 가격도 싸고 근심을 잊게 빨리 취할 수 있다.

한국 자본 소주의 역사는 100년이 다 돼 간다. 첫 소주는 1924년 나온 진천양조상회의 ‘진로’다. 도수는 무려 35도였다.

1965년 알코올 도수가 30도로 낮아졌다. 41년 만이다. 기술력이 발전하며 알코올 도수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제조 방식도 변했다.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하면서 희석식(알코올을 물에 희석)으로 제조 방식이 바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주 가격은 360cc 한 병에 41원으로, 꽤 고가였다. 같은 기간 라면 가격이 개당 16원이었는데 2.5배 차이가 났다.

1970년대부터 소주가 대중화됐다. 도수는 5도 더 낮아진 25도였다. 25도 소주가 ‘국민 술’이 되면서 소주 업체 간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1976년 결국 정부가 ‘1도 1사 원칙(자도주법)’의 칼을 빼들었다. 시·도별로 1개의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고 생산량의 50%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이때 살아남은 업체들이 수도권에선 진로, 부산은 대선, 강원은 경월, 경남은 무학, 경북은 금복주, 전남은 보해 등 10개사다. 지역별 소주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다.

이후 소주의 지역별 판매제는 1992년 사라졌다가 3년 만에 다시 부활했고 1996년 시장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면서 완전히 폐지됐다. 소주 시장이 다시 무한 경쟁 시대에 던져진 셈이다.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지역별 소주를 소개한다.
서울‧경기 하이트진로 ‘참이슬’
서울·경기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주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1998년 10월 출시됐다. 당시 참이슬 도수는 23도. ‘소주=25도’라는 등식을 깨며 독한 소주의 이미지를 바꿨다.

참이슬은 쌀·보리·고구마·타피오카·사탕수수 등에서 발효 증류한 알코올만 정제해 사용한다. 대나무 숯 여과 공법을 도입하고 잡미와 불순물을 제거해 부드럽고 깨끗한 맛을 극대화했다. 현재는 20.1도 참이슬 오리지널과 16.5도 참이슬 후레쉬 등 두 개 브랜드가 있다.

1933년 설립된 하이트맥주는 2005년 진로를 인수하고 2011년 9월 하이트진로라는 단일 법인으로 통합했다. 하이트진로는 2020년 12월 고(故) 박경복 창업자의 손자이자 박문덕 회장의 장남 태영 씨와 차남 재홍 씨를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1978년생인 박태영 사장은 유력 후계자로 꼽힌다.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를 졸업하고 경영 컨설팅 업체인 엔플랫폼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다. 2012년 하이트진로 경영관리실장(상무)으로 입사 8개월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경영전략본부 본부장, 부사장 등을 거쳐 8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강원도 롯데 ‘처음처럼’
‘처음처럼’은 2006년 두산이 참이슬의 독주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소주다. 20도의 저도 소주로 당시 여심을 파고들었다. 대관령 기슭의 암반수로 만들어 술맛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다. 출시 다섯 달 만에 판매량 1억 병을 돌파하면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2007년 도수를 19.5도로 낮췄다. 이후에도 17.5도, 17도 등으로 도수를 낮추며 저도주 시대를 열었다. 현재 17도의 처음처럼과 16.5도의 처음처럼 순한, 20도의 처음처럼 진한 등 세 종류가 있다.

처음처럼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6년 강릉에 강릉합동주조가 설립되면서 ‘경월’ 소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1993년 두산에서 인수했고 2009년 롯데가 품에 안았다.

이후 롯데는 2011년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주류 합병했다. 같은 해 충북소주를 인수하며 서울·경기, 강원, 충북지역을 아우르는 지역기반을 갖췄다.
부산 대선주조 소주 ‘대선’
대선주조는 부산 지역 소주 시장점유율 50%를 차치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선주조의 대표 상품으로는 도수 19도의 ‘시원’ 소주와 올해 1월 리뉴얼한 16.5도의 ‘대선’ 소주, 2021년 출시한 16.9도 소주 ‘다이아몬드’ 등이 있다.

리뉴얼한 소주 대선은 나트륨, 탄수화물, 당류, 지방, 트랜스 지방, 콜레스테롤, 단백질 등이 전혀 첨가되지 않아 잡미가 없고 기존 제품보다 열량이 낮은 게 특징이다. 출시 1년 만에 부산지역 소주 시장 업소 점유율 6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누적 판매량은 8000만 병을 기록했다. 당시 소주 대선의 캐치프레이즈는 ‘대선으로 바꿉시다’였다.

대선주조는 부산에서 창업해 92년의 역사를 이어 온 대표적인 향토 기업이다. 2011년 조선 기자재 업체 BN그룹이 인수했다. 현재 수장은 조우현 대표다. 조 대표는 40대의 젊은 경영인 2세다. 그의 부친은 BN그룹 조성제 회장이다.
경남 무학 ‘좋은데이’
경상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는 무학의 대표 브랜드 ‘좋은데이’다. 무학은 2006년 16.9도인 좋은데이를 선보였다. 좋은데이는 지리산 지하 320m 암반수를 사용한 자연 알칼리수 소주다. 72시간 산소 숙성과 10단계 여과로 부드러운 소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1년엔 도수를 기존 16.9도에서 16.5도로 낮췄다.

경남 창원은 예로부터 술로 명성이 높은 도시다. 무학은 1929년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소화주류공업사로 출발해 1965년 고(故) 최위승 무학 명예회장이 인수한 후 무학양조장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무학’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최위승 명예회장은 6월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차남인 최재호 회장이 1994년부터 대표에 취임해 지금까지 무학을 이끌고 있다.
광주·전남 보해양조 ‘잎새주’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소주는 잎새주다. 잎새주는 2002년 보해양조에서 출시한 주력 상품이다. 처음 19.8도로 선보였으나 2016년 18.5도, 2017년 17.8도로 점차 도수를 낮췄다. 2019년 말부터 현재까지 17.3도를 유지하고 있다.

1950년 설립된 보해양조는 소주, 과실주, 리큐르, 탁주, 일반증류주, 위스키, 식음료의 제조 및 판매 회사다. 38년 만인 1988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2015년부터 임지선 대표가 취임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임 대표는 30대의 젊은 경영인 3세다. 그는 보해양조 창립자인 고(故) 임광행 회장의 손녀이자 임성우 창해에탄올 회장의 장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