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재생에너지와 RE100
[ESG 리뷰] RE100은 국제 비영리 기구인 기후 그룹(The Climate Group)이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DP)와 파트너십을 맺고 운영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CDP한국위원회 수석연구원으로 2014년 이니셔티브 론칭 이후 한국 기업의 RE100 참여를 위한 활동을 담당해 온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CDP한국위원회 역할을 겸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2017년부터 그린 프리미엄, 전력 구매 계약(PPA) 등 기업 재생에너지 구매 정책 도입을 위한 정책 관여 활동을 시작했고 관련 입법과 정책 수립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다. 김 연구원은 “재생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RE100이 존재한다”며 “재생에너지가 넘치는 상황에서 RE100은 그린 워싱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기후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에 적극적인 배경은 무엇입니까.
“기업들의 행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관련 이니셔티브의 권유나 압박이 아닌 기업 스스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도 대부분이 RE100에 직접 가입하든지, 가입하지 않더라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RE100 신청 기업이 늘어 내부적으로는 스크리닝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기업들은 인력을 갖추고 재생에너지 조달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아직 산업용 전력과 가격 차이가 크지만 장기적 흐름에서 전략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 재생에너지 가격을 어떻게 예상합니까.
“재생에너지 가격은 크게 3가지를 봐야 합니다. 전력 가격, 재생에너지 가격, 배출권 거래제 가격입니다. 재생에너지 가격에서 전력 가격을 빼면 격차가 나오는데, 한국에선 스코프 2(전력·열 생산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를 배출권 거래제에 포함하기 때문에 배출권 거래제 가격을 한 번 더 뺄 수 있습니다. 배출권 가격은 전력 평균 배출계수(전력 1kW를 사용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의 2분의 1로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PPA가 kW당 180원에 거래됐다면 현재 전력 평균 가격이 110원으로 70원 더 비쌉니다. 여기에서 배출권 가격이 톤당 4만원이라고 할 때 kW당 20원 정도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70원에서 20원을 빼면 일반 전기 요금과 50원의 차이가 나는 셈이죠. PPA는 장기 고정 가격으로 계약하는데, 향후 20년간 180원이 유지된다고 하면 갈수록 산업용 전기 가격은 오르고 배출권 거래제도 5년 뒤부터는 큰 폭으로 오를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녹색 금융을 위한 중앙은행과 감독기구 간 글로벌 협의체인 녹색금융 협의체(NGFS)가 ‘1.5℃ 시나리오’에 따른 배출권 가격 전망 자료를 냈는데, 1.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까지 20만원이 올라야 하고 보수적으로 봐도 10만원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20만원이라면 kW당 100원의 절감 효과가 생기는 거죠. 어느 시점에는 재생에너지가 일반 전력과 가격이 같아지고 2030년 전후로 오히려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재생에너지는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점차 경제성을 찾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 재생에너지가 기업의 탄소 중립에 얼마나 기여합니까.
“철강·시멘트·화학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스코프 2 배출량이 70% 이상입니다. 정보기술(IT) 기업은 95%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삼성전자도 스코프 2 배출량이 80%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스코프 2 배출량을 줄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재생에너지 사용입니다.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설비를 모두 바꿔야 해요. 설비를 기존 설계 수명보다 빨리 바꿀 때만 감축을 인정해 주거든요. 효율성을 높여 스코프 2를 줄이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 데다 비용도 많이 들기에 스코프 2 배출량을 관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재생에너지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전동화가 많이 이뤄지고 스코프 2 배출량이 늘어나요. 그래서 배출권 거래제 대응에서도 재생에너지가 필수 요소입니다.”
- RE100을 앞서 주도한 기업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애플이나 구글도 처음부터 확신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현지 정부와 정책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있다고 파악한 뒤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 요구했다고 봅니다. RE100 초기 멤버 중에는 B2C 기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B2C 기업이 RE100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때문입니다. ‘어떤 감축 활동으로 온실가스 몇 톤을 줄였다’보다 ‘재생에너지를 100% 썼다’라고 하면 전달이 명확하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필요하기도 했지만 기업의 활동을 소비자에게 쉽게 전할 수 있어 B2C 기업이 앞서 시작했죠. 최근 스코프 3(협력 업체는 물론 물류, 제품 사용, 폐기 등에서 발생하는 총 외부 탄소 배출량)에 대한 전방위적 요구가 늘고 있어요. 공급망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뭔가를 바꿔야 한다면 이때도 재생에너지가 가장 수월합니다. 공급망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전력 비율이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 왜 그렇습니까.
“산업마다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중소기업은 거의 조립 공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노동 집약적이고 대부분 부품 업체죠. 이러한 공급망을 관리하려면 결국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청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스코프 1(생산 과정의 직접 탄소 배출량)은 직접적으로 공정과 관련이 있잖아요. 공정에 투입되는 에너지원을 전환하면 공급받는 제품의 품질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전력은 어떤 전원이든 품질이 똑같아요. 재생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드를 바꾼다는 게 아니라 개념적으로 권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공급받는 제품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쉬운 방법인 거죠. 공급망을 관리할 때도 그래서 재생에너지 목표 수립 및 전환이 기본 패키지로 묶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최근 고객사들의 요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급망 안에서도 경쟁이 생기잖아요. 잘 대응하는 쪽이 비교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겠죠.”
- 중소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군요.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급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연합(EU) 공급망 실사 제도가 본격화되면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사도 분산되는 반면 소기업은 규모가 작을수록 한 개 고객사에 대한 의존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지죠. 납품이 끊어지면 생존이 힘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에 더 취약한 구조인 것 같습니다.“
-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의 약 7%로 낮은 수준인데 수요 기업은 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까요.
“확보할 수 있는 양이 적죠. 이것이 RE100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는 공급 정책만 있었습니다. 발전 차액 지원(FIT) 제도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죠. 그러면 딱 정부 보조금만큼 재생에너지가 늘어나요. 정부의 공급 계획에 따라 보조금 예산을 책정하고 그만큼만 공급되는 시장이었는데,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달라집니다. 시장에 자발적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갈 테고 그러면 추가 공급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정상이고 부족하기 때문에 RE100 이니셔티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정부 예산에 따른 공급 중심의 정책은 경직성이 있잖아요. 가장 안정적인 한두 개 모델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시장에서 더 효율적인 방법이 나오는 것을 저해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더 싸게 조달하고 싶은 게 당연하고 새로운 금융 기법을 계속 고민하고 만들어 내게 되죠. 기존의 비효율적인 것들을 제거해 나가고 좀 더 창의적인 방법을 만드는 역할을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 앞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데 생각처럼 공급이 뒤따르지 않으면 재생에너지 확보 전쟁이 빚어질까요.
“그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봅니다. 물론 한국의 재생에너지 조달 환경이 해외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있죠. 상대적으로 한국은 지대가 높기 때문에 해외보다 가격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주민 수용성이 걸림돌입니다. 주민 수용성이 낮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시장의 수요만큼 공급이 빨리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이에요. 한국에서 허가권은 지자체장들이 가지고 있는데, 정무적 판단을 하게 되고 지역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다 보니 허가가 지체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여건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기업들의 힘이라는 거죠. 어느 나라든 기업이 잘되고 경제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한국은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진영이 기업 친화적 경향이 있잖아요. 한국의 조달 환경이 해외에 비해 열악하지만 이러한 환경을 바꾸는 데 기업이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거죠.”
-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이 더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든 국가에서 재생에너지가 어느 지점까지는 다른 전력원에 비해 비쌉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그만큼 정부가 예산을 더 많이 지원했다고 보면 됩니다. 절대적으로 예산 지원 규모가 큰 것도 있고요. 차액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보니 그 지역의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에 따라 지원 폭이 결정됩니다. 한국은 예산 지원 폭도 적고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높다 보니 더디게 진행됩니다. 어느 나라나 특정 부분까지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다는 것은 정책적으로(정치적으로) 어떤 구호를 외쳤는지와 무관하게 결국 돈을 적게 썼다는 것입니다.”
-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원자력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하는 배경에는 ‘우리는 재생에너지 100%를 씁니다’라는 한 문장에 엄청난 마케팅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자력을 100% 씁니다’라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이슈가 됐는데 재생에너지로 정치적 대립을 하는 곳은 해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비자 대부분이 재생에너지를 100% 쓴다는 것을 좋게 인식하는 거죠. 기업들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주요 소비층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세대에게 특히 원자력을 강조하는 것은 자살골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원자력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따져보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공사 계획부터 준공까지 시기를 앞당길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기후 변화 대응은 속도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는 수명 주기가 있기 때문에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기준 45% 이상 감축할 것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 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어요. 기후 변화 대응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2030년까지입니다. 원전 한 기를 새로 짓는 데는 10년이 걸리거든요. 이 관점에서 원자력이 2030년 이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다고 봅니다. 또 고준위 폐기물 처리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의 영구 처분 시설 부지를 확보하거나 건설 중인 곳은 스웨덴과 핀란드가 유일합니다.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 것은 2가지 팩트로 볼 수 있습니다. 원자력이 포함됐다는 것이 한 가지고 또 한 가지는 EU 택소노미 기준대로 하면 사실상 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 2030년 이전까지 재생에너지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까.
“외부에서도 기업이 돈이 샘솟듯 나와 무한정 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너무 비싸면 못 사겠죠. 그러면 기대하는 바는 싸게 만들 수 있도록 정책적 관여를 해야 합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부나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일단 기업은 시장에 장기적으로 시그널을 보내 주는 게 필요하겠죠. 그래야 공급이 장기적으로 따라올 겁니다. 지금 많은 기업이 계획을 수립했거나 수립하는 과정입니다. 재생에너지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조달 환경을 바꾸기 위해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봅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387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