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출시등 사업 다각화로 1분기 매출액 32% ‘껑충’…패션 시장 트렌드 이끌어
[비즈니스 포커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패션 시장의 트렌드는 ‘원 마일 웨어’가 장악했다. 집 근처 1마일 내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지만 스타일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런 장점을 두루 갖춘 ‘요가복의 샤넬’ 룰루레몬이 패션 피플들의 옷장을 본격적으로 차지하기 시작했다.원 마일 웨어의 인기 덕분일까. 미국이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룰루레몬의 1분기 실적은 ‘순항’했다. 올 2~4월(회계연도 1분기) 룰루레몬의 매출은 16억1000만 달러(약 2조1000억원)로 지난해 12억3000만 달러(약 1조6000억원)보다 32% 증가했다. 순이익은 1억9000만 달러(약 2477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소비 시장이 침체됐지만 온라인 판매를 포함한 단일 점포의 매출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 증가했다.
이러한 룰루레몬의 선전은 레깅스 판매량에만 기댄 것이 아니다. 그간 룰루레몬은 애슬레저룩을 넘어 다양한 아이템 확보로 고객층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급변하는 시장의 트렌드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능성 원단 적극 사용해 ‘요가복의 샤넬’로 성장
지금이야 요가나 필라테스를 시작하면 ‘레깅스’부터 구매하는 게 당연시됐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기능성 애슬레저의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면 소재로 만들어진 요가복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런 옷은 땀에 쉽게 젖고 움직이기도 불편했다. 캐나다 출신의 사업가 칩 윌슨은 1998년 기능성 소재를 더해 땀이 손쉽게 마르고 운동할 때도 편안한 요가 팬츠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룰루레몬의 시작이었다.
룰루레몬이 ‘요가복의 샤넬’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기존 요가복들에 비해 상당히 고가이기 때문이다. 룰루레몬의 레깅스는 한 벌에 10만원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루레몬 레깅스의 탁월한 착용감은 ‘돈 값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번 룰루레몬 레깅스에 입문하면 쉽게 다른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힘들다는 후기도 많다.
이는 룰루레몬이 기능성 원단을 직접 제작해 제품의 질을 높였기 때문이다. 땀 흡수력과 탄력성이 좋은 주 원단 ‘루온’과 분비물 살균과 항균 효과가 있는 ‘실버센트’는 룰루레몬이 자체 개발한 원단이다.
애슬레저 브랜드들이 연일 도입 중인 ‘체험형 매장’도 룰루레몬에서 시작된 것이다. 룰루레몬은 사업 초기부터 요가복 판매와 함께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고 요가 클래스와 명상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경험’을 확장해 왔다.
칩 윌슨 창업자가 룰루레몬의 정체성을 다졌다면 2018년부터 룰루레몬을 이끌고 있는 캘빈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룰루레몬의 체질 개선 효과는 1분기 실적을 통해 가시화됐다. 맥도널드 CEO는 1분기 실적 간담회에서 “레깅스와 스포츠 브라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수요가 꺾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룰루레몬이 최근 시도해 온 사업 다각화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음을 말한다.
그간 2030 여성을 공략해 온 룰루레몬은 남성복 라인도 내놓았다.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한 것이다. 1분기 룰루레몬의 실적 향상을 이끈 것도 새로 시작한 남성복 라인의 호조 덕분이었다.
동시에 룰루레몬은 레깅스와 티셔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테니스와 골프 등 운동복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 3월부터는 북미·영국·중국 등 온라인에서 여성용 러닝화를 판매 중이다.
그간 여성용 운동화는 남성용 신발의 더 작은 버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의 증가, 애슬레저룩 등의 유행으로 여성들 역시 기능이 뛰어난 운동화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룰루레몬은 이러한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이들의 신발 시장 진출은 나이키·아디다스 등 기존 스포츠 브랜드를 긴장시키고 있다. 룰루레몬이 여성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임과 동시에 온전히 ‘여성의 발’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 때문이다. 맥도널드 CEO는 지난 3월 성명을 통해 “그간 충족되지 않았던 시장의 필요, 즉 여성만을 위해 고안한 운동화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부터 신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제 실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홈 트레이닝 이어 중고 거래 시장도 진출
CNBC는 룰루레몬의 사업 확장에 대해 ‘신발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산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룰루레몬의 사업 다각화는 시장의 흐름을 미리 포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룰루레몬은 그간 시장 상황을 고려한 결정을 꾸준히 해 왔다. 2020년 6월 가정용 운동 플랫폼 업체 ‘미러’를 5억 달러(약 65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01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홈 트레이닝 기업 미러는 벽걸이 거울처럼 보이는 플랫폼 기기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자에게 맞는 운동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기기를 통해 강사의 시연 모습과 자신이 운동하는 모습이 보여져 마치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룰루레몬은 2019년부터 미러에 꾸준히 투자했다. 때마침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홈 트레이닝 시장이 성장하던 시기였다. 맥도널드 CEO는 미러 인수에 대해 “우리가 판매하는 요가복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홈 트레이닝 관련 산업의 잠재력을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홈 트레이닝은 그간 룰루레몬이 강조해 온 ‘체험형 마케팅’과도 맞닿아 있다.
홈 트레이닝에 이어 룰루레몬이 눈을 돌린 것은 중고 시장이다. 룰루레몬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고객을 시작으로 시험 서비스해 온 ‘라이크뉴’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라이크뉴는 자사의 중고 상품 판매 서비스로 상태가 좋은 상품을 보상 판매·재판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객은 룰루레몬 홈페이지 내 별도로 개설된 코너에서 중고 룰루레몬 제품을 살 수 있다. 108달러에 판매되던 여성용 크롭 후드티는 4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이 또한 현재 시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5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률은 1981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8.6%를 기록했다. 이처럼 모든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와중에 비교적 고가로 분류되는 룰루레몬이 자사 상품의 중고 판매를 주선함으로써 소비자들을 묶어 두는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는 ‘자원 재생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어필할 수도 있다.
동시에 룰루레몬은 직원이 다니기 좋은 직장을 만드는 것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룰루레몬은 북미 지역에서 직원들의 최저 임금을 올리고 정신 건강과 리더십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력에 구인 구직 및 직장 평가 사이트 ‘글래스도어’가 발표한 2022년 일하기 좋은 10대 직장에서 룰루레몬은 소매 업체 중 가장 높은 순위인 9위에 올랐다.
글로벌 기업들이 엔데믹(주기적 유행)과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룰루레몬은 공격적인 성장 목표를 세웠다. 2026년까지 2021년 매출의 두 배인 125억 달러(약 16조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남성복과 온라인 부문이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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