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 침체 여부는 ‘금리 인상 폭’에 달려…캐나다는 이미 주택 가격 하락 개시

[글로벌 현장]
미국 뉴저지주 리버베일에서 분양 중인 타운하우스 모습.(사진=조재길 특파원)
미국 뉴저지주 리버베일에서 분양 중인 타운하우스 모습.(사진=조재길 특파원)
미국 뉴저지 주 리버베일에서 200여 채에 달하는 타운하우스를 분양 중인 크리스 헨슨 씨는 “요즘 주택 시장이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일부 가격을 낮춘 신규 주택에는 ‘금리가 더 뛰기 전에 사자’는 수요가 몰리지만 기존 매매 시장엔 관망세가 짙어졌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주택 경기 둔화의 신호라는 관측이다.

1년 만에 두 배 뛴 주택 금리…“2년 호황 갔다”

미 주택 시장에 대한 경고음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 무엇보다 금리 상승 탓이다.

미 소비자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 대개 전체 매매 대금의 5~20%만 선납한다. 잔금의 80~95%는 최장 30년 동안 나눠 갚는 구조다. 이자는 고정 금리 방식이다. 이 때문에 맨 처음 계약 당시의 모기지 금리가 가장 중요하다. 중도에 금리가 떨어지면 갈아타기(리파이낸싱)할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수수료가 들어간다.

문제는 이 모기지 금리가 급등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 금융 업체인 프레디맥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모기지 금리(30년 기준)는 평균 연 5.8%다. 2008년 11월 이후 13년 7개월 만의 최고치다. 작년엔 연 2.65%로 역대 최저치였다. 1년 만에 두 배 넘게 뛴 것이다. 프레디맥은 “상당수 잠재 수요자들이 여전히 주택 구입을 희망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2년간 뜨거웠던 시장이 급속히 식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각한 물가 상승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고 있는 게 가장 큰 배경이다. Fed는 올 3월 금리 인상(25bp, 1bp=0.01%포인트)을 개시했다. 5월 50bp, 6월 75bp 등 인상 폭을 갈수록 키우고 있다. 7월 말에도 75bp 올릴 것이란 게 시장의 예측이다.
모기지 금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와 주로 연동한다.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주택 판매는 실제 감소세다. 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5월의 기존 주택 판매량은 연율 기준으로 541만 채를 기록했다. 전달(560만 채) 대비 3.4% 줄었다. 올 1월 650만 채를 기록한 뒤 4개월 연속 하락했다.

NAR이 집계한 5월 판매량은 실제로는 3~4월 계약분이다. 계약서를 쓴 뒤 대출 진행 기간과 잔금 납부 사이 1~2개월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3월부터 금리가 뛰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 상승세가 매우 커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주택 판매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시장 둔화를 부추기는 요인은 또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건설 자재비와 인건비가 오르면서 주택의 가격 급락을 막고 있다. 5월 기준 기존 주택 중간값은 40만7600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8% 상승했다. 주택 중위 가격이 40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1999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후 최고치다. 잠재 수요자와 매도(판매)자 간 괴리가 눈에 띄게 커졌다는 방증이다. 월가에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은 뒤 경기 침체 신호가 나오기 시작하면 집값 하락세가 둑 터지듯 본격화할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갑자기 냉각된 미국 주택 시장…경기 침체 앞당기나 [글로벌 현장]

미 중앙은행은 “연말까지 금리 두 배 올릴 것”

주택 시장 침체 여부는 금리 인상 폭이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Fed는 하루빨리 기준금리를 ‘정상화’할 방침이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41년 만의 최고치인 8.6%(작년 동기 대비)에 달했기 때문이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 위원들은 연말 기준금리를 연 3.4%(중간값 기준)로 예상했다. 금리 전망치를 담은 점도표를 통해서다. 내년엔 3.8%로 더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3월 전망치는 각각 1.9%와 2.8%였다. 인플레이션이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금리 전망이 얼마든지 추가 상향될 수 있다는 의미다.

Fed는 1994년 이후 28년 만에 6월 금리를 한꺼번에 75bp 올린 상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앞으로 실업 증가와 경기 침체에 직면할 수 있지만 물가 안정에 모든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시인했다. 물가를 낮추려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모기지 금리가 크게 뛰고 있고 주택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점을 알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이 주택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지만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만약 당신이 잠재적인 주택 매수자라면 과거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주택 시장 거품이 드디어 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금리가 더 오르면 붕괴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고급 주택에서 매수자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부동산 중개 업체인 레드핀에 따르면 가격 상위 5% 이내의 고급 주택 거래는 올 2~4월 18%(작년 동기 대비) 급감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초기였던 2020년 4~6월 23.6% 줄어든 후 최대 감소 폭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고급 주택을 전문으로 거래해 온 도나 올샨 중개인은 “5월 첫째 주에 거래된 43건 중 1000만달러 이상이 하나도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주택 거래가 전무했던 적은 2020년 9월 이후 처음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부동산 중개 업체들이 잇따라 감원에 나서는 점도 이상 신호다. 중개 체인 컴퍼스는 10%, 레드핀은 8%씩 각각 감원한다고 공시했다. 글렌 켈맨 레드핀 최고경영자(CEO)는 “5월 매매 수요가 우리 예상치 대비 17%를 밑돌았다”며 “수년간 주택 거래가 부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리 인상 도미노에 따라 일부 국가에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캐나다다. 최대 도시인 토론토의 주택 가격은 지난 2월 이후 3개월 만에 평균 9% 하락했다. 토론토지역부동산위원회 조사 결과다.

작년만 해도 매달 최고 30%씩 집값이 뛰었던 뉴질랜드에선 올 들어 상승률이 뚝 떨어진 데 이어 아예 하락 전환할 조짐이다. 뉴질랜드중앙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집값의 급격한 하락이 가계 자산과 소비 지출을 동시에 위축시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가격을 낮춘 매물이 늘고 있다. 레드핀에 따르면 올 4월 아이다호 주 보이스에선 가격을 떨어뜨린 매물이 전체의 40.8%를 차지했다. 1년 전엔 이 비율이 10.1%에 불과했다. 레드핀이 매달 추적하는 주택구매수요지수는 6월 기준 121.9로, 1년 전보다 16% 급감했다.

집값 거품이 붕괴되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집값이 하락하고 결국 금융 부실화와 소비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진단이다.

블룸버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등 30개 국가를 대상으로 따져 보니 부동산 붕괴 위험이 가장 큰 나라로 뉴질랜드·체코·헝가리·호주·캐나다·포르투갈·미국 등이 꼽혔다. 각국 가구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과 임대 수익 대비 주택 가격 비율(PRR), 실질·명목 집값 상승률, 대출 증가율 등을 비교한 결과다.

특히 19개 국가의 주택 거품 붕괴 위험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보다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투자은행 노무라의 랍 수브라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주택 붕괴 위험이 비즈니스와 금융 사이클을 동시에 둔화시킬 것”이라며 “장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