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인기 교양 강좌 ‘여성과 미술’이 책으로
미술사 내 누드, 악녀, 모성 등 다양한 주제에 의문을 던지다

[서평]
미술관 속 누드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 | 1만9000원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여성 미술가의 작품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장 작품 중 85%는 여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이다.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여성주의 미술 단체인 게릴라 걸즈는 장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의 머리에 고릴라 가면을 씌운 패러디 작품을 만들어 이러한 일상적인 차별점을 고발한다.

이 책은 저자인 이윤희 교수가 이화여대에서 진행했던 인기 교양 강의, ‘여성과 미술’ 과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게릴라 걸즈의 의문에서 더 나아가 꾸준히 질문을 던진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은 왜 자연스럽게 미술의 주제가 되었나’, ‘왜 늙은 남성은 기품있고, 늙은 여성은 추악하게 그려지는가’. 저자는 여성과 미술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의문, 시선, 누드, 악녀, 혐오, 허영, 모성, 소녀, 노화, 위반’이라는 10개의 키워드로 엮어간다. 당시 미술사에서 길이 회자되던 작품을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여성과 미술의 관계를 조명한다.

왜 미술가는 여성의 누드에 집착했나. 남성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였던 미술계에서 여성은 타자화된 관찰대상이었다. 주요 관객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누드는 그들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제작됐다. 저자는 남성의 누드는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제작되나 여성의 누드는 수동적이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을 들어 남성 관객들이 여성 누드 문화의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지적한다.

시기가 달라져도 남성주의 시각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19세기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면서 그와는 상반된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에 대한 이미지가 유행했다. 저자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경멸과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이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의 이미지를 강화한 것으로 본다.

어머니라는 심볼에 대한 타자화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고요하고 자애로운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현실과는 다르게 매혹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진 부셰의 비너스 작품, 성모마리아를 표현한 작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근대 이후 여성 미술가들이 실존적인 경험을 담은 임신과 출산을 그려낸 방식과 있는 그대로의 여성이 반영된 작품을 소개한다. 거대한 거미처럼 표현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출산의 고통을 표현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 등을 보고 나면 미술에서 바라보는 여성과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뚜렷해진다.

미술사 내에서 여성과 여성의 미술은 비주류에 속했다. 정당한 교육 기회와 평가를 받기 쉽지 않았고,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그들의 작품이 아닌 외모에 있었다. 현대의 여성 미술가들은 과거의 여성 미술가에 비하면 그 기회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미술관에 전시된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작품을 보며 껄끄럽고 불편함을 숨겨야 교양이 아니라는 저자의 응원에 힘입어 작품을 보는 시선을 역전하면, 여성 미술가들이 그리고자 했던 새로운 미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