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은 기업‧가계 부채 증가시키고 투자‧소비 위축 위험 있어
금리 인상 속도 조절 논의 필요

[경제 돋보기]

미국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이미 들어섰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은 2분기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이면 통상적으로 경기 후퇴로 진단하는데 지난 1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1.6%를 기록했고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8.8%로 40년 만에 최고치에 달하면서 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이 한 번 더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본격적인 경기 둔화 우려에 따라 긴축 속도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금값이 지난 3월에 비해 급락했다. 치솟던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미 장기 국채 금리가 단기 국채 금리를 밑도는 금리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인플레이션보다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무너진 공급망이 회복되기도 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초 예측과 달리 장기화 양상을 띠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에너지 수입을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전쟁이 길어지면 유럽의 경기 침체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 봉쇄령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이 불확실한 가운데 글로벌 경제의 비용을 상승시키면서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복합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의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고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진화하는 가운데 상반기 경제를 위협해 온 리스크가 하반기에도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태그플레이션보다 경기 침체 강도가 약한 상태를 의미하는 슬로플레이션, 강도가 더 강한 상태를 의미하는 슬럼플레이션 모두 물가 상승과 경기 하강이라는 딜레마의 방향은 일치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7월 13일 빅 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인상했다. 지난 6월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6% 올랐기 때문이다. 1998년 11월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한 것이다. 하반기에도 잡힐 것 같지 않은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글로벌 긴축 기조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자본 유출을 막기 어렵고 금융 시장의 불안이 확대될 것이다.

만약 금리 인상을 비롯한 긴축 기조가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건드리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대응책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그치게 되면 경기의 경착륙을 유도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기업의 생산비 증가는 임금 상승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물가 상승의 악순환에 진입하게 된다.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증가시키고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게 된다.

민간 경제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 조정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미래 신성장 산업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 경제의 체질 개선과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고통 분담 이외에 딱히 묘수가 있을까.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딜레마 [차은영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