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열홍 고려대 교수
2021년 7월부터 렉라자 보험 적용…전체 생존 기간 38.9개월로 고무적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서범세 기자]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서범세 기자]
폐암은 한국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암이다. 암 중에서 사망률이 10년째 1위이고 발병률도 2019년부터 위암을 누르고 2위에 올랐다(국립암센터). 진행이 느리고 완치율이 높은 갑상샘암을 제외하면 사실상 폐암이 암 발병률 1위인 셈이다.

폐암은 전이가 빠른 데다 발병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 10명 중 6명이 암이 전이된 후에야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맞춤형 정밀 치료 시대가 열리면서 폐암 생존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폐암 환자의 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3기까지 진행되더라도 5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표적 치료제와 면역 치료제 등 혁신 신약이 발달하면서 부작용이 줄고 치료 효능이 높아진 결과다.

폐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 중 빈도가 가장 높은 ‘상피세포 성장 인자 수용체(EGFR)’ 변이를 억제하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만 하더라도 1, 2세대를 거쳐 3세대 치료제까지 한국에 허가된 상황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3세대 표적 치료제가 1, 2세대 치료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과 내성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데이터에서 유한양행이 개발한 3세대 표적 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전체 생존 기간 중앙값(mOS)은 38.9개월로 나타났다(2022 아시아암학회 국제학술대회). EGFR 변이가 발생한 환자 76명에게 투약한 결과다. 학계에서는 렉라자의 생존 기간 데이터가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한경비즈니스는 아시아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를 만나 3세대 표적 항암제에 대한 진료 경험을 들었다. 김 교수는 “렉라자 임상 2상을 진행한 대상 환자 76명은 모두 1, 2세대 EGFR 치료제에 대한 내성(T790M)이 발생해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들”이라며 “이 환자들이 3세대 치료제인 렉라자만으로 3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데이터는 앞으로 폐암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의료 현장에서 폐암 환자들을 진료해 온 김 교수는 3세대 EGFR 표적 항암제가 뇌혈관 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어 뇌 전이가 발생한 환자에게도 효능을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폐암이 위암을 누르고 암 발병률 1위에 올랐습니다. 최근 폐암 발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원인은 흡연입니다. 전체 폐암의 80% 이상이 흡연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간접 흡연도 폐암 위험도가 1.5배까지 증가합니다. 하지만 최근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발생하는 ‘비흡연 폐암’ 환자도 늘고 있습니다. 비흡연 폐암은 전체 폐암의 30% 정도를 차지하는데, 특히 흡연 경험이 없는데 폐암을 진단받는 여성 환자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요. 대기 오염이나 일상에서 노출되는 화학 물질,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폐암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폐암에도 종류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폐암은 크게 두 개로 나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세포 크기예요. 조직을 관찰했을 때 작은 세포로 이뤄져 있으면 ‘소(小)세포폐암’, 그렇지 않으면 ‘비(非)소세포폐암’인데 폐암 환자의 85%가 비소세포암입니다. 비소세포암은 또 암이 생기는 위치에 따라 나뉘는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폐에서 체액을 분비하는 선(腺) 세포에 암이 생기는 ‘선암종’입니다.”

-폐암 병기별로 생존율이나 치료법이 어떻게 다른 지 궁금합니다.
“폐암이 폐에 국한적이고 림프절 전이가 없는 경우를 1기로, 폐에 국한적이고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를 2기로 봅니다. 3기는 주변 장기를 직접 침범한 경우이고 간·뼈·뇌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경우 4기로 구분합니다. 폐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 약물 치료가 있는데 1기와 2기는 수술만으로도 완치율이 높습니다. 1기는 수술만으로 85%가 완치되고 2기도 65%는 수술로 완치됩니다. 3기 B병기부터는 전신 항암 약물 치료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부터는 5년 생존율이 30%대로 떨어집니다.”

-폐암은 원인이 되는 다양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자 변이는 무엇인가요.
“아시아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전자 변이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폐암 환자의 50%, 남성 폐암 환자의 25%에게서 EGFR 변이가 나타납니다. EGFR은 우리 몸에서 세포를 성장시키는 데 관여하는 수용체입니다. 세포가 자라나려면 외부에서 성장 신호가 내려와야 하는데 EGFR에 변이가 생기면 외부에서 성장 신호가 오지 않아도 암 세포가 스스로 성장 신호를 내립니다. 이 변이에 의존해 암세포 스스로 성장하고 증식하는 거죠. 일반적인 항암 치료는 세포가 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암세포를 괴롭히고 죽이는 치료였다면 표적 항암 치료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찾아내 그 길을 차단하는 원리입니다.

EGFR 변이를 억제하는 렉라자 같은 3세대 폐암 신약은 이런 EGFR의 성장 신호를 끊어내 암세포의 증식을 막습니다. EGFR 변이 외에도 ALK, ROS1, KRAS 등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폐암의 원인이 되고 있지만 EGFR을 제외한 다른 변이들은 전체 폐암 환자의 1% 정도에게서만 발견됩니다.”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서범세 기자]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서범세 기자]
-렉라자와 같은 3세대 항암 신약은 1, 2세대 치료제와 비교할 때 어떤 특징이 있나요.
“EGFR 변이 차단 약제 개발은 3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1세대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이레사’가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처음 나왔을 때는 ‘기적의 폐암 약’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문제는 내성과 부작용이었습니다. 2세대 치료제 역시 내성을 극복하지 못해 1세대와 2세대를 쓴 환자들은 1~2년 사이에 내성이 발현됐죠. 암세포가 약물에 적응하고 회피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렉라자는 기존 1,2세대 치료제가 가진 독성문제와 자주 발생하는 내성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기대가 높습니다. 특히 암세포가 뇌에 전이된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뇌는 독성 물질을 차단하는 자연적인 막이 형성돼 있는데 이게 치료약제가 들어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렉라자 같은 3세대 EGFR 표적 항암제는 뇌혈관 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어 뇌 전이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임상으로 검증됐습니다.”

-2021년 7월부터 렉라자도 건강보험이 적용됐습니다. 이후 1년간의 처방 경험을 공유해 주세요.
“일단 부작용이 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권하기 쉬워졌어요. 특히 뇌 폐암 전이 환자는 이전까지 방사선 치료를 주로 해왔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정상 뇌에도 어느 정도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환자의 기억력 저하나 두통 등 부작용이 존재했습니다. 이를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산 항암 신약이 폐암 치료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렉라자가 타깃으로 하는 EGFR 변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대만·태국 등 아시아 지역 폐암 환자 상당수에게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입니다. 시장이 커 선두 주자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는 1년에 단독 매출이 6조원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1차 치료제 승인을 위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고 이에 대한 중간 결과를 올해 말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항암제는 홍보나 마케팅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시장입니다. 임상 데이터에만 의존하고 환자들도 모든 연구 결과에 접근할 수 있어 기존 약물의 효과를 뛰어넘는 임상 데이터가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까지 부작용이나 생존 기간 데이터가 타그리소와 비교할 때 뒤처지지 않기 때문에 임상 3상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글로벌 신약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폐암 환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죠.
“과거 폐암 진단은 사망 선고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후가 좋지 않았고 항암제를 사용해도 효과가 미미했죠. 하지만 지금은 정확한 유전자 변이만 찾아내면 4기 폐암도 5년 이상 생존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다음 세대 신약이 계속 개발되고 있어 정복 가능한 병이 되고 있습니다. 암 환자들에게 5년 생존은 의미가 큽니다. 환자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것만 보고’, ‘결혼식 입장하는 것만 보고’ 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거든요. 몇 년간이라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을 늘리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