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과 노동자 간 구체적 업무 지시가 쟁점
대법 “포스코의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강부에서 생산된 슬래브 옆에서 방열복을 입은 포스코 직원이 표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강부에서 생산된 슬래브 옆에서 방열복을 입은 포스코 직원이 표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대법원이 포스코에서 근무하는 협력 업체 노동자 59명을 포스코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포스코의 지휘와 명령을 직접 받아 일했기 때문에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이 아니라 ‘불법 파견’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11년 만의 소송 끝에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파견과 하청, 어떤 차이가 있나?

이번 사건을 알기 전 우선 파견과 하청 사이의 차이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파견과 하청의 방법으로 기업들이 직접 채용 없이 노동력을 얻을 수 있게 해뒀다. 둘 다 직접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파견은 한 회사의 ‘노동자’를 다른 회사가 제공 받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파견은 경비 업체 등이다. 파견 노동자들은 원래 소속된 업체의 지시와 현재 소속된 기업의 지시를 둘 다 받을 수 있다.

하청은 파견과 달리 기업 대 기업의 계약에 가깝다. 원 기업이 수행해야 할 일의 일부 혹은 전부를 또 다른 ‘업체’에 맡기는 일이다. 이에 하청을 준 기업(원청 업체)과 받은 기업(하청 업체) 사이에는 계약만 존재할 뿐 업무 지시 등의 일은 할 수 없다.

기간과 업종의 차이도 있다. 파견은 파견법에 제시된 32가지 직종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최대 2년까지만 가능하다.

무기한으로 파견을 가능하게 해두면 같은 회사 내 직고용된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 사이에 불합리한 임금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한 지 2년이 넘은 파견 노동자는 현행 법에 따라 이용하고 있는 기업이 직고용해야 한다. 하청은 계약 기간이나 가능 업종 등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런 개념 차이에 따라 한국 산업·노동계는 항상 ‘불법 파견’ 대 ‘하청’을 두고 노동자와 기업이 대립한다. 노동자는 불법 파견 노동자로 인정받으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

반면 기업은 노동력에 쏟는 비용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원청과 노동자 사이에 구체적 업무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게 법정에서의 쟁점이 되곤 한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의 플래카드가 부착돼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의 플래카드가 부착돼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광양제철소 노동자 ‘근로자성’ 인정 안 한 1심

이번 사건의 노동자들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부에서 근무하던 계약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포스코 협력 업체 소속 직원들로, 철강 제조 과정에서 크레인 운전 등을 담당해 왔다. 그들은 하지만 자신들이 사내 하청 노동자가 아닌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크레인 작업 수행은 각각의 작업 모두 포스코 직원의 업무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며 “포스코가 크레인 작업 인원, 일정, 내용 및 협력 업체 직원들의 노동 시간, 휴일까지 결정하고 있고 징계에까지 관여해 이 사건 협력 업체들은 업무 수행상 독립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즉 광양제철소 안에서 근무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사실상 ‘불법 파견 노동자’이고 파견 최대 기간인 2년을 넘겼기 때문에 정규직 지위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5명은 2011년, 44명은 2016년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일반적인 도급 계약 관계에서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종속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협력 업체는 독립된 사업 주체로 독자적인 사업을 운영하는 등 포스코의 지휘·명령을 받아 포스코를 위한 근로에 종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협력 업체, 사업주 실체 미미” 항소심에서 뒤집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은 노동자들과 포스코 사이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원 고용주와 파견 노동자의 관계를 살필 때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지휘·명령이 있었는지, 근로자의 작업, 휴게 시간, 휴가, 근무 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전산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전달받은 바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다”며 “이는 포스코가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관리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포스코는 협력 업체가 수행할 업무, 노동자 수, 작업량을 실질적으로 결정했다”며 “협력 업체는 대부분의 매출을 피고에 의존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기존 판례 법리에 기초해 원고들과 피고가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돋보기]
엇갈리는 ‘특고직’ 노동자성 인정 판결…‘회사 개입도’가 핵심

노동자성을 놓고 다투는 것은 하청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직) 역시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해 달라며 매번 다투고 있다.

특고직은 근로 계약이 아닌 개인 사업자 형태의 노동자로 근무한다. 다만 실질적으로 특고직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특고직을 가장한 노동자인지를 두고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판결이 나온 ‘타다 드라이버’와 ‘코웨이 방문 점검원(코디)’의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났으나 정반대의 결론이 내려져 이목을 끌고 있다. 쏘카의 자회사인 VCNC는 차량 호출 서비스인 타다를 운영하기 위해 운전사들과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

하지만 타다 서비스가 불법이라는 유권 해석이 나오면서 인원 감축을 위해 2019년 7월 A 씨를 비롯한 운전사 70여 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운전사들은 프리랜서 계약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VCNC의 감독을 받는 노동자였다며 부당 해고를 주장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유환우)는 타다 드라이버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운전사들이 취업 규칙이나 복무 규정을 적용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 역시 쏘카 측에서 지정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운전자 단체는 VCNC 측이 2019년 4~5월 운전사들을 상대로 보수 교육을 하고 별도로 성 인지력 교육을 했다며 지휘·감독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참석이 강제되지 않았고 균일한 서비스를 위한 것으로 지휘·감독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운전자 단체는 1심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코웨이의 코디들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2019년 11월 이들로 구성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는 2020년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코디를 별도 교섭 단위로 분리해 달라고 신청했다.

재판부는 코웨이가 상당한 수준의 지휘·감독을 통해 코디 업무에 개입한 점에 주목했다. 코디는 고객 방문 일정과 업무 시작·종료 시간, 업무 내용 등을 코웨이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에 실시간으로 입력했다.

고객 응대 화법과 작업 방식, 복장 등을 매뉴얼로 만들어 따르도록 했다. 이와 함께 코웨이는 코디의 업무 성적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해 등급별 혜택을 각각 달리 적용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코디가 코웨이에서 지급 받는 수수료도 업무 시간에 비례해 받는 보상으로 노무 제공에 따른 대가라 볼 수 있다”며 “코디가 노동조합을 통해 코웨이와 대등한 위치에서 위임 계약의 조건, 관리하는 계정 수의 분배 기준 등을 교섭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