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 견제, 합종연횡이 난무
美‧中 갈등 심화…한국이 칩4 불참 선언하면 한국 제외하고 뭉칠 가능성 높아

[경제 돋보기]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견제·합종연횡이 난무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첨단 산업의 시장 지배력을 결정하고 나아가 첨단 무기를 바탕으로 한 군사력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전망을 모든 국가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첨단 기술의 시대에서 반도체 기술과 생산 시설의 확보를 통해 원활한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 발전, 기술 발전, 나아가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해졌다.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순방 그리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 선언이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아직 IPEF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급망 관련 이슈를 풀어 나갈지 미지수이지만 미국은 IPEF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우방과 함께 무역·공급망·탈탄소·조세 등의 협력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거시적 접근 방법 외에도 미국은 반도체 분야에 특화된 부문별 접근 방식 역시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이 ‘칩4(Chip 4)’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일본·대만과의 반도체 협력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목적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의 칩4 참여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와 같은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부문에서의 보복은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불참을 선언하더라도 칩4가 완전히 무산되기보다는 한국을 제외하고 ‘칩3’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친미 성향이고 자국의 반도체 생산 역량을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어 칩4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방해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철저히 제외됐던 대만에 미국의 제안은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이고 반도체 기술과 생산 역량을 국제 외교 무대에서 발휘할 절호의 기회다. 결국 한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설계 분야의 강점을 지닌 미국, 부품‧소재 분야의 일본, 생산 역량이 우수한 대만이 상호 협력하는 것이어서 한국으로서는 불참의 비용이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칩4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표출할 필요가 있다.

칩4는 어떠한 형태로 구성될까. 지금까지 나타난 내용은 불확실성 그 자체다.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앞으로 칩4라는 협의체를 통해 반도체 협력과 관련된 규범을 만들 수 있는지 파악해 나가야 한다. 협력의 주체가 참여하는 국가의 정부에만 머무를 것인지, 민간 기업을 포함할 것인지, 협력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협력과 관련된 내용을 규범화하고 이를 어기면 어떠한 대응책을 설정할 것인지 등이다. 향후 개최될 예비 모임에서 하나하나씩 규명해야 하고 이러한 논의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단기적으로, 중·장기적으로 파악하면서 참여해야 한다.

수십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쟁취한 반도체 경쟁력이다. 이런 경쟁력을 앞으로 더 키워 나가야 한다. ‘미국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 중에 선택하라면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의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칩4 참여를 통해 미래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대학 학장 겸 국제대학원 원장
한국, ‘칩4’ 참여 안 하면 ‘칩3’ 눈 뜨고 쳐다만 볼 수도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