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없는 분야의 사용은 상표권 침해와 관계없어, 다만 ‘상표의 희석화’로 제한 가능

[지식재산권 산책]
치킨집에서 ‘삼성’이라는 상호 쓰면 상표권 위반일까[김윤희의 지식재산권 산책]
삼성이라는 상표를 반도체에 사용하면 삼성전자의 상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삼성이라는 상표를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면 어떨까. 삼성그룹이 삼성이라는 상표를 요식업 등에 등록해 두지 않은 한 상표법 위반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표권 침해, 즉 상표법 위반이 있기 위해서는 타인의 등록 상표와 동일한 상표를 동일·유사 상품(서비스)에 사용하거나 타인의 등록 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동일·유사 상품(서비스)에 사용해야 한다.

위에서 예로 든 커피숍은 타인(삼성 그룹)의 등록 상표(삼성)와 동일한 상표(삼성)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동일·유사한 상품(반도체 등)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는 음식점 등에 사용한 것이므로 상표권 침해, 즉 상표법 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치킨 가게를 운영하면서 삼성이라는 상호를 사용했다면 삼성그룹은 이런 행위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앞서 예를 든 것과 같이 삼성그룹이 음식점 업종에 대해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상표권 침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삼성그룹이 치킨 가게를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므로, 즉 일반 소비자가 삼성 치킨 가게를 보고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치킨 가게 혹은 삼성그룹과 어떤 관련이 있는 치킨 가게라고 오인·혼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로 규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의 ‘희석화행위’가 적용될 수 있다. (다)목은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상표, 상품의 용기·포장, 그 밖에 타인의 상품 또는 영업임을 표시한 표지(타인의 영업임을 표시하는 표지에 관하여는 상품 판매·서비스 제공 방법 또는 간판·외관·실내장식 등 영업 제공 장소의 전체적인 외관을 포함한다)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거나 이러한 것을 사용한 상품을 판매·반포 또는 수입·수출하여 타인의 표지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다. 타인의 상표의 ‘식별력 손상’ 혹은 ‘명성 손상’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상표의 가치를 ‘희석화’하는 행위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식별력 손상 행위’는 특정 상품과 관련해 사용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표지를 그 특정 상품과 다른 상품에 사용함으로써 신용과 고객 흡인력을 실추 또는 희석화하는 등의 행위다.

‘명성 손상 행위’는 어떤 좋은 이미지나 가치를 가진 주지의 표지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품이나 서비스에 사용함으로써 그 표지의 좋은 이미지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허청이 발간한 해설서에서는 카메라의 저명 상표인 코닥(KODAK)을 피아노에 사용하거나 가전제품의 저명 상표인 소니(SONY)를 초콜릿에 사용하는 것을 ‘식별력 손상 행위’의 예로 들었다. 저명한 담배 상표인 던힐(DUNHILL)을 품질이 조악하고 저가의 안경에 사용하거나 저명한 맥주 상표인 OB를 살충제에 사용하는 경우를 ‘명성 손상 행위’의 예로 들었다.

실제로 희석화 행위로 인정된 사례는 적지 않다. 해외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을 이용한 ‘루이비통닭’을 상호로 사용한 치킨집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 그 외에도 ‘버버리 노래방(1심에서는 노래방 측이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버버리가 승소)’, ‘넷도날드 PC방’, ‘샤넬 스파’, ‘샤넬 비즈니스 클럽’ 사건 등이 있다.

일부 패러디로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은 유명한 타인의 상표를 대가 지급 없이 이용해 결국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이므로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윤희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