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윤 퓨처플레이 전략기획팀 이사

세계인의 평일 평균 수면 시간은 6.9시간이다.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17.1시간 동안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깨어 있는 시간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일에 쏟으며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인간 행동의 기반에는 대부분 이성이 아닌 욕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같은 기업들의 미래 제품군을 개발하는 데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인간의 욕망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갑을 여는 ‘혁신’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의 지향점’과 혁신의 상관관계
욕망이 없다면 일하지 않아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사실 생존에 필요한 기본만 해소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문제는 없다. 영양이 공급되는 캡슐안에 누워 지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욕망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되고 싶은 게, 하고 싶은 게, 먹고 싶은 게, 채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현대인의 욕망은 크게 두 개로 귀결된다. 귀찮은 일 회피(drudgery-aversion)와 부자 되고픔(prosperity-attraction)이다.

귀찮은 일 회피는 귀찮은 일을 모두 피하고 뇌에 즐거운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을 뜻한다. ‘청소는 하기 싫고 아까 하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마저 하고 싶다’와 같은 것들이다. 원래 하고 싶은 것보다 하기 싫은 게 많다. 부자 되고픔은 더욱 명확하고 단순한 욕망이다. 모든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을 꿈꾼다.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지금보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답할 사람은 전체의 90% 이상일 것이다.
삼성의 비스포크 전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FuturePlay’s Signal]
이 두 가지 현대인의 주요 욕망을 기준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대입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욕망의 지향점’이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내 뇌에 즐거운 일만 하면서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피하고 싶은 영역은 <그림1> 오른쪽 하단일 것이다.

대략 <그림1>을 읽어 보자. 집안일은 귀찮은데 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긴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귀찮음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른쪽 하단에 자리한다. 우리의 업무를 나눠 보면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돈이 되는 업무들이 있다. 많은 부분이 그럴 것이다. 이런 업무는 왼쪽이지만 상단에 자리한다. 또는 자아 실현, 만족감을 고취하는 업무가 있다. 그런 업무는 뇌에 즐겁기 때문에 왼쪽에 자리할 것이다. 그냥 노는 행위, 취미 활동은 왼쪽 하단에 자리한다. 그리고 우리는 왼쪽 상단 끝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여기 표시되지 않은 다른 행위도 얼마든지 <그림1>에 대입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 체계 혹은 프레임워크는 우리가 사용하는 서비스, 디바이스, 우리의 평소 행동, 더 나아가 삶을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것을 2차원으로 과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직접적 비교 분석을 위해서는 필수 과정이다.
‘욕망 프레임워크’로 읽어 본 소니·애플·삼성의 미래
이와 같은 현대인의 욕망에 집중한 해석의 구조를 지금은 DAPA 프레임워크(DAPA Framework)라고 부르겠다. 모든 디바이스는 일상에서 우리가 영위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에 대입된다. 청소기는 청소라는 행위, 식기세척기는 식기 세척이라는 행위다. 해당 디바이스로 직접 행위를 행하지 않고 대체하더라도 행동과 행위가 연결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삼성의 비스포크 전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FuturePlay’s Signal]
DAPA 프레임워크에 각 행동 행위에 대입되는 디바이스를 표시해 봤다. 집안일(청소·빨래 등)에 대입되는 디바이스는 같은 곳에 자리한다. 업무를 위한 노트북 등의 생산성 디바이스는 귀찮지만 돈 되는 일에 대입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은 오락성과 생산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어중간하게 넓은 범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저 두 개의 디바이스로 해결한다. TV·게임콘솔은 절대적 오락성, 돈 안 되고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어도비와 같은 서비스는 일종의 돈 되는 취미, 그의 발전된 수익 행위로 확대될 수 있다. 이에 현금성 가치 실현과 즐거움 추구에 동시 적용할 수 있다.

그러면 각 디바이스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상황은 어떨까. 소니·애플·삼성 등 3개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자.

첫째, 소니의 탄생과 함께한 첫 제품이 밥솥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후 트랜지스터 라디오·트리니트론 TV·워크맨·플레이스테이션·아이보·클리에·바이오 등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에 비전을 보여주던 소니는 2000년대 삼성과 애플을 만나며 시장의 선구자로서 빛을 많이 잃었다. PC 사업부의 매각, 폰 사업의 극단적 축소, 콘텐츠 사업의 위기 등 일본의 잃어 버린 20년과 궤를 같이하는 듯했다.

2022년 소니의 최근 행보와 포트폴리오는 위기 극복을 넘어 기대를 갖게 만든다. 최근 전기차 사업 진출 등의 이벤트들은 차치하고 포트폴리오만 보도록 하자. 주요 디바이스는 영상 기기(프로+아마추어)·TV·게임콘솔 등이다. 거기에 1980년대부터 꾸준히 투자해 온 픽처스·뮤직 등의 콘텐츠 사업이 함께 포함돼 있다. <그림2>와 같이 전반적으로 즐거움 추구 쪽에 포진돼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과 PS플러스다. 많은 이들이 PS 사업을 디바이스 사업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플랫폼 사업이다. 플랫폼 저변 강화와 확대를 위해 디바이스 판매에서 손해를 감수한다. 마치 프린터와 카트리지처럼 디바이스 저변을 확대한 후 소프트웨어에서 매출을 극대화한다. 이에 PS플러스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유저끼리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면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처럼 게임을 구독으로 즐길 수 있다. 최근 70년 역사 기업의 근대화가 돋보인다.

둘째, 애플의 디바이스 포트폴리오는 분석이 무의미할 정도로 제품 발표 하나하나가 모든 이의 관심을 받고 화제가 된다. 그래서 굳이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은 짚어 볼 필요가 없다. 사실 집중하고 싶은 영역은 앱스토어·애플아케이드·애플TV+·크리에이티브 프로페셔널 영역이다.
애플의 ‘앱스토어’는 단순한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채널의 기능을 넘어선다. 생산성·오락성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로 진입하는 게이트웨이 키퍼로서의 역할을 한다. 절대 다수가 이 게이트웨이를 인정한다면 개별 서비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모든 앱에서 발생되는 수익의 15~30%를 받아낼 정도다. 애플아케이드는 PS플러스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여기에서도 게이트웨이의 역할과 함께 게임의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애플TV+는 콘텐츠 유통 채널로 애플TV 디바이스와 앱이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직접 콘텐츠 제작까지 시작했다. 애플 오리지널 콘텐츠 코다(CODA)는 2022년 아카데미 취우수 작품상, 남우 조연상, 각본상을 받았다. 제작비 총액 대비 수상 수를 따져본다면 단연 넷플릭스보다 우위일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프로페셔널은 애플의 DNA와 같은 영역이다. 맥킨토시의 포지션의 시초이고 아직도 강자다. 애플 자체 제작 툴인 파이널컷프로(Finalcut Pro)·로직프로(Logic Pro) 등을 사용하기 위해 맥을 구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프로페셔널을 위한 툴이라는 브랜드 스토리는 아이패드·아이폰 등 타 제품군에 전이된다.

마지막으로 삼성이다. 삼성전자는 포트폴리오가 넓고 제품군도 타사 대비 월등히 많다. 하지만 스토리는 훨씬 적은 편이다. TV·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 등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운용체제(OS)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기기들에 형태로 차별을 주기는 더욱 어렵다. 애플과 소니에서 완성된 소프트웨어 플랫폼 영역은 밀크 등 다수의 시도가 있었지만 한국 삼성페이 이외에 튼튼한 근간은 만들지 못했다.

최근 강화하고 있는 가전에서의 비스포크 라인업과 공기청정기 등 모두 매우 훌륭한 제품들이지만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이용할 제품군은 아니다. 너무 아름다운 제품이지만 냉장고를 30분 동안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간을 지배하는 제품군은 이미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집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 기업을 DAPA 프레임워크를 통해 동시에 비교해 보면 3사의 차이는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중심에서 3사의 포트폴리오가 많이 겹치며 삼성만이 귀찮음 감내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의 비스포크 전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FuturePlay’s Signal]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자동화’다. 인간은 자동화를 피할 수 없다. 귀찮은 일 회피라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 만드는 움직임이다. 열심히 해도 돈이 되지 않는 행위부터 자동화로 대체되고 있다. 바로 현재 삼성의 포트폴리오 대부분이 자리해 있는 곳이다. 삼성의 비스포크 전략이 유효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능동적 행위는 결국 욕망의 지향점을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단계적으로는 즐거움 추구 방향으로, 이후 현금성 가치 실현이 높은 방향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자동화 솔루션에도 큰 기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피동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브랜드와의 접점은 점점 옅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다음 혁신이 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대목이다.